상단주메뉴

  • cover styory
  • focus
  • lifestyle
  • culture
  • human
  • community
    • 손글씨
    • 1등기업인물
    • 나도한마디
    • 기사제보
  • subscription

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18) | 꽃피는 산골

글 : 이상희 

  • 글씨 더 크게 보기
  • 글씨 더 작게 보기
그림 : 원재길
장난기 많은 어미가 딸아이 방으로 살그머니 들어갑니다. 잠든 딸아이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입술을 벌려 놓고 아침 등산길에 한 줌 따온 산딸기를 하나씩 밀어 넣습니다. 딸아이는 잠결에 입을 벌리고 엉겁결에 산딸기를 오물거리다 신맛에 깜짝 놀랍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후다닥 이불을 뒤집어씁니다. 어미는 혼자 깔깔대다가 문득 서글프게 넋두리를 늘어놓습니다.

“다 놓쳤다, 다 놓쳤어…. 벌써 딸기가 이렇게 맺힐 줄이야. 그 이쁜 딸기꽃을 놓치고…, 한 해에 딱 두 번 열리는 간송미술관 봄 전시도 놓치고…, 놓친 게 그뿐이겠냐…, 그러니 일어나. 너도 버스 놓치지 않게 어서 일어나.”


이불을 둘둘 감은 채 꼼짝도 않는 딸아이를 남편에게 넘기고 주방으로 가보니 식탁 그득히 마가렛꽃입니다. 놓친 딸기꽃을 안타까워할 것 있나요, 하는 듯이. 나무 꽃들이 다 진 뒤인데도 숲골짜기 작은 집들은 여전히 꽃대궐입니다. 개울 건너 우씨 할머니댁은 붉은 자줏빛 함박꽃에 둘러싸였고, 우리 집은 하얀 마가렛꽃에 둘러싸였습니다. 게다가 띄엄띄엄 저 혼자 피고 지는 찔레꽃이며 엉겅퀴꽃 애기똥풀꽃 무리까지, 덩그러니 떨어진 채 쓸쓸했던 집들이 이즈음 얼마나 호화롭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벌들이 붕붕거리며 날아드는 이 꽃들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꽃병에 꽂힌 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곤 합니다. 흙땅을 맨발로 딛고 춤추는 무희 같다고나 할까요? 어여쁜 생명력이 온몸과 마음으로 전해져 옵니다.

“아랫마을 농부들 집도 온통 꽃밭이더군. 농사짓느라 고달픈 데도 꽃 심고 가꾸는 거 보면 참 그 마음이 대단하다 싶어. 우리야, 어머니가 다 심은 거지만.”

농부들도 먹을거리 아닌 꽃을 일부러 가꾼다니, 하고 놀라워하는 것을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듯합니다. 흙땅에 뿌리박고 시시때때 피는 꽃이야말로 전원의 삶이 누리는 천복일 테니 말이지요.

곁에서 듣던 어머님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모도 꽃을 좋아해. 온통 꽃이야. 농사일 틈틈이 여기저기에꽃이란 꽃은 다 심었단다.”

훤칠한 여장부 같은 시이모님과 달리 키도 몸집도 작고 채식만 하는 어머님…, 두 자매는 똑같이 부지런하고 꽃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어머님은 홀로 버스를 바꿔 타가며 이곳 강원도 산골짜기 아들네 집이며, 서울 근교 하남에서 농사짓는 시이모님댁을 번갈아 다니면서 쉬지 않고 채소며 꽃을 가꿉니다. 어머님 손길이 닿으면 모든 것이 파릇파릇 반들반들 윤이 납니다.

“점심들 먹어라. 난 마실 간다.”

어머니 오실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개울 건너 할머니들이랑 골짜기 윗개울에 올라가서 나물전을 부쳐 드시기로 했다고, 휑하니 뜰로 내려서는 모습을 뵌 지 얼마 안 지나서입니다. 어느새 내려오셔서 채반 그득히 오디를 주워 씻어 설탕에 갈무리하고 계십니다.

“참나물 많은 데도 알아뒀는데 그것 뜯으러 가야지, 오디도 더 주워야 하고, 바쁘다 바빠! 참 우씨댁 할머니네서 무 하나, 양파 너덧 개 빌어다 썼으니 잊지 말고 갖다 드려라. 안 줘도 된다지만 그럴 수야 있나.”

어머니 덕분에 할머님들이며 그 아들네들이 우리 가족을 더욱 살갑게 여기는 게 틀림없습니다. 채소 모종 심고 남았으니 갖다 심으라 하고, 나물전 부쳤다고 먹으러 오라 합니다. 나 또한 어머니 친구들이다 생각하면, 한동네 할머니 위하는 마음을 넘어서곤 합니다.

“우씨네서 패랭이꽃도 함박꽃도 얻어다 심었단다.”

어머니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합니다. ‘꽃피는 내내, 이제 멀리서 보면 숲골짜기 집들이 다 똑같아 보이겠구나!’
원재길ㆍ이상희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고등학생 딸 새록과 살면서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08년 07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단메뉴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성동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