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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수비의 대명사, 명 승부사로 돌아오다

통합 챔피언 오른 신한은행 여자프로농구팀 감독 임달식

꼭 한 번만이라도 프로무대에서 선수로 뛰고 싶습니다.
운동하는 모든 사람들의 꿈이 프로무대예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도 제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지난 3월 23일 여자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이 벌어진 용인체육관. 2007~2008 시즌 정규리그에서 우승한 신한은행이 라이벌 삼성생명을 꺾고 시즌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 그 순간, 시즌 내내 한 번도 웃음을 보이지 않던 한 남자가 누구보다 크게 웃고 있었다. 19년 전 농구코트에서 사라졌던 임달식의 귀환이었다. 1989년 1월 농구대잔치 현대와 기아의 결승 3차전은 농구스타로 촉망받던 한 남자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당시 한국농구 최고의 테크니션인 기아의 허재를 그림자처럼 쫓던 수비수 임달식. 현대가 우승하기 위해 임달식은 허재를 막아야만 했다. 경기장의 열기는 달아올랐다. 선수, 감독, 관중 모두가 흥분 상태였다. 결국 임달식과 허재의 몸싸움이 폭력사태로 번졌고, 임달식에게 1년, 허재에게 6개월의 출장정지 징계가 내려졌다. 그 후 허재는 ‘농구대통령’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했지만 농구인생의 절정을 향해 첫발을 내딛던 임달식은 코트에서 사라졌다.

신한은행 여자프로농구팀 감독에 부임한 지 7개월 만에 팀을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은 임달식 감독을 만나러 안산 고잔역 부근 신한은행 농구팀 훈련장을 찾았다.

현역 시절 거친 수비의 대명사였던 임달식. 그가 감독이 되어 여자프로농구판으로 돌아왔다는 것부터가 의외였다. 사실 그는 여자농구에는 관심이 없었다. 속도감 있고 거친 경기를 선호하던 그의 눈에 여자농구는 느리고,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 생각은 지난해 초, 우연찮게 본 신한은행과 일본 여자농구 챔피언 팀의 경기에서 바뀌었다.

“완전히 달라져 있었어요. 몸을 사정없이 부딪치는 선수들과 헉헉거리는 숨소리. 몸싸움이나 속도감이 남자농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어요. (상대를)팔로 치고, 심지어 발로도 차고… 그 과격함에 순간 매료됐죠.”(하하)

프로농구가 시작되기 전 실업농구 코트에서 뛰었던 그는 감독이 되어 프로무대에 발을 들여놓았다. 감독이 되자 부담감이 밀려왔다. 전주원, 정선민, 하은주 등 한국 여자농구의 스타가 즐비한 팀.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전주원은 무릎수술로 경기에 나설 수 없었고, 하은주는 부상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스타들이 모인 곳이라 조직력은 모래알이었다. 게다가 여자 선수들과 일상을 같이한다는 게 낯설었다.

“먼저 여자선수들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그 후 제 스타일을 선수들에게 주문했습니다. 훌륭한 선수들이기에 잘들 따라 주었습니다.”

그렇게 7개월을 보낸 후 그는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와 챔피언 결정전 통합 우승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여자프로농구 ‘지도자상’까지 거머쥐었다. 도망가듯 떠났던 코트의 ‘잡초’가 화려하게 귀환한 것이다.

과거 얘기를 물으려 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챈 듯 임 감독이 먼저 운을 뗀다.

“아~ 이제 허재 일은 그만 얘기할래요.”(허허)


농구팬이라면 ‘임달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허재와의 충돌이라는 것을 임 감독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에게 물었다.

당시 징계 억울하지 않았어요?

“받아들여야죠. 나만 징계를 받은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반성 많이 했습니다.(하하) 팬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치고받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됐죠. 제가 잘못한 겁니다.”

하지만 아쉬움을 감추지는 않았다. 그는 “그 일로 농구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며 “일찍(28세) 은퇴한 이유가 된 건 사실”이라고 했다. 은퇴 후 그는 골퍼로 변신한다. 1995년 5월, 타고난 운동신경 덕분인지 남들은 빨라야 3년이 걸린다는 세미프로(KPGA 준회원) 자격을 골퍼 변신 2년 6개월 만에 얻었다.


외환위기로 사업 실패 후 대학농구 2부 팀 감독으로 변신

“PGA에 가고 싶었습니다. 취미로 골프를 배웠는데, 2년 6개월 만에 세미프로를 따니까 자신감이 생겼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죽기 살기로 골프만 했어요. 그런데 일이 안 풀리려면 뭘 해도 안 된다고, 전혀 엉뚱한 데서 일이 터지더군요.”

무슨 얘긴가요? 허재 사건 말고 또 다른 일이 있었던 건가요?

“IMF 외환위기요. 역삼동에 한정식 집을 차려 처음엔 괜찮았어요. 그런데 외환위기가 터지더군요. 야, 그게 참…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3년 반 정도 버텼는데… 골프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2001년 7월 그는 조선대 농구 감독이 되었다. 고려대 시절 스승이었던 박한 씨(63세ㆍ한국대학농구연맹 회장)가 추천한 것.

“나중에 알았는데 제 대학 농구 선ㆍ후배들이 ‘달식이형 저렇게 두면 안 된다. 코트에서 다시 뛰게 해야 한다’고 박한 감독님을 졸랐다고 하더군요. 박 감독님도 늘 못난 제자 생각을 하시던 차였고요. 그렇게 해서 조선대가 제게 감독직을 제의한 겁니다.”

감독직을 제의받고 그는 한참 고민했다. 그는 조선대에 농구팀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대학농구 2부 팀이었어요. 열흘 동안 연락을 안 받았더니 ‘오늘까지 통보가 없으면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는 메시지가 와있었어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광주로 내려가 면접과 테스트를 거쳐 조선대로 가게 됐어요.”

휘문고, 고려대, 현대. 한국 최고의 농구팀에서만 뛰었던 그에게 대학 2부 팀 조선대 선수들의 농구실력도, 팀에 대한 지원도 성이 차지 않았다. 임 감독은 “감독을 시작하고 딱 일주일이 지났을 때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시작한 농구인생에서 그는 의외로 빨리 결실을 거두었다. 2002년 3월, 감독이 된 지 8개월 만에 우승컵을 안았다. 2005년에는 1부 대회로 승격하면서 전국체전에서 준우승을 했다. 이름도 모르던 팀을 급성장시킨 것이다.

“나름대로 피 튀기는 승부를 했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전국체전 결승에서 연세대와 만났는데 그때 연세대에는 미국에서 활약했던 방성윤(현 서울SK)이 뛰고 있었어요. 그런 팀을 맞아 우린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불과 1년 전까지 대학농구 2부 팀이었던 우리가 대학농구 판을 주름잡는 팀들을 꺾고 준우승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어느 팀과 경기를 해도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팀이었기에 부족함을 열정으로 채워 나갔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스타플레이어 하나 없는 조선대는 대학농구 무대에서 강팀들을 괴롭히며 ‘고춧가루 팀’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는 그에게 다시 농구의 길을 열어 준 조선대와 그의 제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여전히 애정이 식지 않은 듯 뜬금없이 “어제 연락을 받았는데 조선대가 성대를 이겼대요”라고 말한다.

그에게 “다시 현역 시절로 돌아가면 어떨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의 답이 돌아왔다. “꼭 한 번 만이라도 프로무대에서 선수로 뛰고 싶습니다. 운동하는 모든 사람들의 꿈이 프로무대예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도 제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와 함께 훈련용 반코트에 섰다.

제자들하고 같이 농구하셔도 잘하시죠?

“아이, 요즘은 옛날처럼 못 뛰죠. 처음에 여자라고 별생각 없이 한 게임 같이 뛰었다가 몸 한번 부딪쳤는데 가슴이 부서져 죽는 줄 알았어요. 요즘 선수들 정말 굉장합니다.”

그와의 만남은 이렇게 유쾌하게 끝이 났다.

사진 : 신규철
  • 200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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