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최성희, 로렌트 페레이라 씨

한국 여자와 벨기에 남자, 서울을 디자인하다

한국 여성 최성희 씨(38세)와 벨기에 남성 로렌트 페레이라 씨(36세). 서로 연결고리가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은 한팀이다. 그것도 예술적 자존심과 고집이 생명인 건축설계를 함께한다. 이들이 처음 일을 터뜨린 것은 2005년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국제현상설계에서 1등으로 당선하면서였다. 한강대교가 가로지르는 노들섬에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같은 문화공연장이 들어선다는 데 관심이 집중됐고,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한 현상설계였다.

“꼭 한국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없었지만 색동저고리에서 볼 수 있는 색상 대비를 통해 전통을 자연스럽게 끄집어낼 수 있었습니다.”

최성희 씨가 한국적 색을 끄집어냈다면, 페레이라 씨는 강 중간에 있는 섬이라는 독특한 성격을 이방인의 눈으로 재해석했다. 서울이란 도시와 그것이 담고 있는 자연, 그리고 건축물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던진 이들의 안이 쟁쟁한 건축가들을 제치고 채택된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삼성미술관 ‘리움’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면서였다. 그 후 로렌트 페레이라 씨는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초빙교수로 한국에 남았고, 2005년 봄, 두 사람은 건축사무소를 함께 운영하자고 뜻을 모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름을 넣은 ‘CHAE-PEREIRA architects’ 간판을 내걸었다. 노들섬 오페라하우스가 이들의 첫 공동작품. 처음 도전한 현상설계에서 당선의 행운을 안은 것이다. 그 후 이들은 SICAF(서울 국제 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전시디자인, 삼청동 한옥 개보수, 이태원 주택 등에서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 사람이 안을 내면 다른 사람은 외부인 입장이 되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에요. 누가 디자인하느냐, ‘CHAE-PEREIRA architects’의 대장이 누구냐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 참 곤란해요.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공동으로 작업을 하니까요. 건축적인 문제에서는 페레이라 씨, 협상력이나 추진력에서는 제가 좀 더 힘을 발휘한다고 할까요.”

두 사람이 개보수한 삼청동 한옥.
최성희 씨는 한국은 팀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한다. 최씨는 연세대 주거환경학과를 졸업한 후 1995년 파리로 떠나 라 빌레트 건축대학을 졸업하고 크리스티앙 드 포잠박 건축회사에서 일하다 2001년 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는 팀원들과 핑퐁처럼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일하는데, 한국은 건축 디자인에 대해 한 사람의 독창적인 작업이라는 생각이 강하다고. 최씨가 건축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다.

“서점에서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집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이렇게 멋진 건물을 짓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대학생이 된 후 개봉영화는 모조리 볼 정도로 영화광인데다 언젠가 직접 소설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마음 깊이 담아 둘 정도로 문학에 심취하기도 했다.

최씨의 이야기를 듣던 페레이라 씨 역시 “어릴 적부터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어릴 적 아버지 고향인 포르투갈 메르톨라를 찾았을 때부터 키워 온 꿈이다.

“제가 살던 벨기에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였죠. 중세 도시인데, 강한 햇빛 아래 흰색 벽과 주황색 지붕이 빛나고 있었고, 미로 같은 길이 인상 깊이 박혔습니다.”

브뤼셀 생 뤽 건축대학을 졸업한 그는 프랑스 파리의 장 누벨 아틀리에에서 5년여 동안 근무했는데, 장 누벨이 ‘리움’의 설계를 맡으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재즈 드럼을 연주하는 페레이라 씨는 ‘서든 마운틴’이라는 그룹을 결성해 공연을 하기도 한다.

외관과 내부 설계 모두 독특한 이태원 주택.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작품처럼 모던한 한옥에 반해

‘CHAE-PEREIRA architects’는 삶의 공간을 예술적 공간으로 만든다는 게 모토다. 그들이 설계한 ‘이태원 주택1, 2’에서 그걸 읽어 낼 수 있었다. 남산 소월길에 있는 이태원 주택1는 올봄 완공한 건물. 외관을 감싸고 있는 밝은 은색의 스테인리스스틸이 눈에 띄었다. 최성희 씨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나무 색깔, 하늘의 변화를 담기 위해 스테인리스스틸이란 소재를 사용했죠”라고 설명한다. 남산이 보이는 계단 창가는 턱을 유난히 넓게 만들어 앉아서 책을 읽거나 사색을 할 수도 있는 공간으로 남겨 두었다.

‘이태원 주택2’는 갈색 빛이 도는 스테인리스 외관 때문에 ‘갤러리’로 오해하고 들어오려는 사람이 많다. “주거공간이 갤러리 같으면 안 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해요”라고 최씨가 설명한다. 도로 쪽에서 보면 등을 돌리고 있는 독특한 외관, 담장도 없앴다.


“우리가 이 건물에서 의도한 것은 ‘연속적인 공간의 놀라움’, ‘순간순간의 놀라움’이에요. 흰 벽이 빛을 받는 데 따라 청색이나 노란 빛이 감돌지요.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면 또 한 번 하프 줄을 연상시키는 계단이 나옵니다.”

삼청동의 한옥 개보수 작업은 이들에게 특별히 의미가 깊었다.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제한적으로 개보수해야 하는 작업. 그런데 문살이 많은 전통 창문이 오히려 탁월한 현대 건축의 요소라는 것을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최씨는 이미 한옥에 익숙해 있던 반면, 페레이라 씨는 좀 더 객관적으로 뜯어 보며 한옥이 가지고 있는 잠재성에 대해 감탄했다.

“한옥은 아주 모던한 공간이에요.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인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건물을 대하는 것 같았어요. 지붕에서 강력한 에너지가, 창호에서 외부와의 소통이 느껴졌지요. 내부와 외부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공간입니다.”

최성희ㆍ로렌트 페레이라 씨의 첫 공동작품인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설계안.
이 두 건축가가 함께 감탄하는 것은 서울의 자연환경. 고층 건물이 들어서기 전까지 아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서울은 건물들이 오브제처럼 각각 세워져 따로 노는 느낌이라고.

젊은 건축가인 두 사람은 계속해서 실험적인 작업에 도전하겠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도 죽이 맞는 동업자다.

“아는 것에 경계를 짓지 말고 끝까지 가라는 니체의 말처럼요.”

그러더니 “산에 올라갈 때 계속 다른 광경이 펼쳐지잖아? 집도 그렇게 만들면 어떨까? 각기 다른 공간이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거야. 르네상스 시대 조각가 베르니니의 조각을 보면 돌로 만들었는데도 옷자락이 유연하게 물결치잖아. 그걸 건축에 접목시켜 보면 어떨까?”

이들의 상상과 토론은 끝이 없었다.

사진 : 김선아
  • 200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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