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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패션의 중심가를 공략하는 한국 디자이너 정욱준

미니멀리즘. 남성복 디자이너 정욱준은 최소한의 요소만 살려 스타일을 만든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론 커스텀’ 메인숍에는 간판이 없다. 윈도에 조그맣게 ‘LONE COSTUME’이라고 씌어 있을 뿐. 정욱준이 내민 명함에도 그가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이 반영돼 있었다. 앞장에는 그가 만든 해외 브랜드 ‘JUUN.J’라는 타이포만 가운데 덩그러니 있고, 뒷장 중간에는 연락처만 깨알 같은 글씨로 씌어 있다.

“단순한 게 더 매력 있잖아요.”

이 한마디로 자신이 추구하는 디자인 콘셉트를 압축하는 정욱준. 권상우, 장동건, 연정훈 등 스타들이 즐겨 입으며 요즘 멋쟁이 남성들 사이에 최고 주가를 올리는 디자이너. 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파리가 주목하는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지난해 파리컬렉션 봄/여름 시즌에 데뷔한 그는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 피가로> 선정, ‘주목받는 디자이너 6인’에 꼽혔다. 2008년 가을/겨울 시즌 쇼 후 <르 피가로>는 “준지에 의한 클래식의 전환”이라는 평을 했다.

그가 최근 ‘리복’과 손잡고 자신의 이름을 단 하이톱 운동화 ‘엑소핏 바이 준지’를 내놓았다. 올해 초 파리컬렉션에서 선보여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신발. 스키니 진에도 어울리고, 피트한 정장에도 잘 어울리는 이 신발은 국내에서는 리복 직영점 세 군데와 론 커스텀 매장에서만 판매했는데, 발매 이틀 만에 동이 났다. 이 운동화는 해외의 준지 매장에서 팔린다. 매달 하나씩 새로운 디자인의 신발이 추가된다고 한다. 그는 “어느 정도 자신 있었다”며 탄생 스토리를 들려줬다.

“지난 1월 파리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의상에 어울리는 운동화도 함께 내놓고 싶었어요. 제 브랜드에 맞는 운동화를 생각하다 리복이 딱 떠올랐죠. 그래서 리복에 먼저 제안했어요.”

‘엑소핏 바이 준지’ 운동화는 한국에서는 19만 원에서 30만 원대 후반인데, 유럽에서는 40만 원대에 팔릴 예정이라고 한다. 의상 디자이너가 주업이지만, 그의 디자인 영역에는 경계가 없다. 모토롤라의 휴대전화 케이스나 루이까또즈의 핸드백을 디자인하고, 볼보자동차나 태평양과 손잡고 그 기업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의상을 제안하기도 했다.

정욱준은 네 개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해외 브랜드 ‘준지(JUUN.J)’, 국내 명품 브랜드 ‘론 커스텀’, 중가 브랜드 ‘론 스튜디오’, 홈쇼핑용 중저가 브랜드 ‘론’. 네 가지 모두 정욱준이 일일이 디자인에 관여하지만, 소재와 공정의 차이 때문에 가격 차이가 난다고 한다. 한 땀 한 땀 정교한 수공예 공정으로 이루어지는 준지와 론 커스텀은 슈트 한 벌에 300만 원을 호가하고, 대량생산하는 론 스튜디오와 론은 10만~50만 원선. 이제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그의 옷을 만나게 됐다. ‘준지’가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파리와 밀라노, 빈, 뉴욕, 온타리오, 홍콩, 상하이 등지 ‘셀렉트 숍’에서 팔리게 된 것. 최첨단 유행을 선도하는 편집매장인 파리의 레끌레래르에 한국 디자이너의 제품이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파리컬렉션에 나온 그의 작품을 눈여겨본 세계적인 세일즈 에이전트가 세계 곳곳의 ‘셀렉트 숍’에서 그의 옷을 팔기로 한 것.

리복의 ‘엑소핏 바이 준지’를 신고(왼쪽 두 컷). 정욱준이 디자인한 루이까또즈 백을 들고 워킹하는 모델(오른쪽 두 컷).
론 커스텀은 현재 갤러리아 백화점과 신사동 메인숍, 청담동에 있는 명품 편집매장 ‘분더숍’에서 만날 수 있고, 론 스튜디오는 전국 10개 대리점에서 판매된다.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소비자들과 접하는 디자이너는 그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정욱준 옷은 피트한 스타일이 특징이다. 세련되고 품위 있는 슈트를 기본으로 하되, 일부를 살짝 비틀기. 이게 정욱준식 디자인이다.

“저는 클래식한 아이템을 기본으로 삼아요. 트렌치코트, 재킷, 연미복, 드레스셔츠는 그 자체로 완벽하잖아요. 거기에 뭔가 하나 변화를 주면 새로운 아이템이 나오는, 그런 작업이 재미있어요.”

리복의 ‘엑소핏 바이 준지’.

클래식을 바탕으로 살짝 비틀죠

그는 말하는 것도 그의 디자인처럼 치장이 없었다. 조용조용 낮은 톤으로 정돈되게 말하되, 뻔한 답은 하지 않았다.

그는 영화의상 제작을 즐긴다. 배우가 시나리오를 받아 보고 배역 승낙 여부를 결정하듯, 영화의상 제작 의뢰를 받으면 시나리오를 보며 자신의 옷과 콘셉트가 맞는 영화인지 진지하게 검토한다. 자신의 의상과 콘셉트가 맞지 않으면 거절한다. 영화 〈화산고〉의 교복, 〈유령〉에서 최민수, 정우성 등이 입은 해군복, 〈역도산〉의 설경구가 입은 옷, 〈M〉의 강동원이 입은 옷 모두 그의 작품이다.

“<역도산> 작업이 특히 재미있었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역도산에 대한 사진자료를 찾아봤는데, 참 멋있는 사람이더군요. 일본에 사는 조선인으로서 주눅 들지 않기 위해 자기한테 투자를 많이 한 사람이었어요. 시대에 맞게 디자인하되, 캐릭터의 멋을 살렸죠. 역도산 역을 맡은 설경구 씨가 이런 얘길 했어요. 자기는 원래 슈트를 싫어하는데, 제가 만들어 준 슈트를 입고 ‘어? 내가 멋있네’ 하고 처음으로 느꼈다고. 굉장히 기분 좋았죠.”

아동복 사업을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옷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그가 입어 보고 “이거 좋아” 하면 잘 팔리고, “싫어” 하면 여지없이 안 팔렸다고. 의상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주위의 만류로 미대에 진학한 그는 옷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중퇴, 디자인 스쿨 ‘에스모드’에 발을 디뎠다.

정욱준은 BMW 미니쿠퍼를 위한 의상도 제작하고(왼쪽), 볼보자동차에 어울리는 콘셉트의 패션쇼도 했다.(오른쪽)
그곳을 나온 후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이 ‘쉬퐁’. 그 후 클럽 모나코를 거쳐 닉스 디자인 팀장을 맡으면서 기본기를 다졌다. 그러다 외환위기가 불어닥친 1997년, 돌연 사표를 내고 후배와 단둘이 신사동에 약 15㎡(4.7평)짜리 작은 사무실을 얻었다. 2년 후 ‘론 커스텀’을 론칭한 그는 젊은 세대의 감각을 반영한 슬림하면서 깔끔한 남성복을 선보였다. 그는 시작부터 주목받았다. 서울컬렉션 무대에 처음 오른 2001년부터 정욱준은 화제를 몰고 다녔다.

2007년 파리 무대의 데뷔 역시 그가 적극적으로 개척해 얻은 성과다. 파리에서 가장 명망 있는 에이전시인 토템과 프레신에 직접 연락, 포트폴리오를 들고 파리로 날아갔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에이전시 관계자들은 그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흥분하기 시작했고, 두 곳 모두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토템은 “당신은 우리가 찾던 디자이너”라며 적극적으로 제안을 해왔다. 그에게 디자인 영감을 어디서 얻는지 물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려워요. 어느 순간, 문득 어떤 색이나 디자인이 확 예뻐 보일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 스타일이 곧 트렌드가 되더라고요. 본능적인 더듬이가 있는 것 같아요.”

정욱준이 디자인한 루이까또즈 핸드백.
요즘은 옷에 대한 열정이 점점 강해져 거의 패닉 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인터뷰 전날에도 잠을 제대로 못 잤단다.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요. 발전해야 하잖아요. 그전의 것은 하찮게 느껴지면서 스스로에 대한 잣대가 점점 엄격해져요.”

그러면서 이런 걱정을 했다. “한국 패션은 아직 세계무대에서 걸음마 수준이에요.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뒤를 이을 디자이너가 없다는 게 걱정이에요. 지금 20대 친구들은 인터넷 쇼핑몰 차리는 데만 골몰하죠. 패션은 예술의 세계예요. 기본기를 갖춘 후에야 진짜 자기 실력을 펼칠 수 있는데.”

스물다섯 살 때 한 선배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서른다섯은 돼야 자기 디자인이 나오는 거야”라고 했던 말이 이제야 이해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딱 57세까지만 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향후 패션 트렌드를 전망해 달라고 했다.

“이런 말이 있어요. ‘10년 전의 패션은 촌스럽고, 20년 전의 패션은 아름답고, 30년 전의 패션은 우아하다.’ 지금 30년 전의 패션이 다시 유행하고 있어요. 상의는 헐렁하고, 하의는 슬림한 콘셉트가 4~5년은 더 갈 겁니다.”

패션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체’라고 보는 그는 ‘론 커스텀’을 이렇게 설명했다.

“외모가 출중하지 않아도 멋있는 사람이 있어요. 티셔츠 하나를 입어도 멋지고, 개성이 돋보이는 사람들. 자신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죠. 제 옷은 그런 사람들이 입었을 때 빛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 김선아



▣ 정욱준식 ‘슈트로 멋내기’ 노하우

올해 유행 컬러는 네이비
밝은 네이비는 촌스럽고, 어두운 네이비는 더워 보인다. 중간 톤의 네이비 컬러의 슈트를 고른다. 사이즈는 너무 크거나 작지 않게 입는다. 신체 콤플렉스 때문에 감추려고 하면 실루엣이 흐트러진다. 재킷은 어깨에, 하의는 허리 사이즈에 맞춰서 입는다. 하의 길이는 구두를 신고 섰을 때 구두 굽이 1~1.5cm 나오게.

네이비 슈트에는 컬러감 있는 셔츠를
네이비 슈트에는 아주 밝은 색 네이비 셔츠나 핑키한 셔츠가 잘 어울린다. 밝은 노란색도 좋다.

넥타이는 튀지 않게
셔츠와 관계없이 튀는 넥타이는 피한다. 우리나라 남성들의 가장 큰 실수가 바로 튀는 넥타이. 스트라이프를 하더라도 컬러 톤이 차이가 안 나면서 자연스럽게 배색되는 것으로 고른다.

포켓치프로 포인트를
포켓치프를 어색하게 생각하는 남성이 많지만 포켓치프 하나만으로도 사람이 달라 보인다. 넥타이에 들어간 색 중 한 가지를 골라서 하면 멋이 난다.

마무리는 뿔테 안경으로
네이비 슈트에는 뿔테 안경이 잘 어울린다. 댄디하면서도 클래식해 보인다.
  • 200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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