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으로 최고의 하모니카 연주자 되다 전제덕

사진 이창주
전제덕의 하모니카 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바비킴의 노래에서다. 솔(soul)이 느껴지는 바비킴의 웅숭깊은 목소리와 하모니카의 쓸쓸한 선율이 기막히게 어울렸다. 그리고 전제덕이 하모니카로 재즈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 ‘아니, 하모니카에서 저런 음악이 나오다니’ 놀라웠다.

전제덕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이다. 어릴 적에는 지독하게 가난했다. 허드렛일을 하며 그를 뒷바라지하던 어머니는 지난해 11월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주로 ‘감동과 눈물’로 포장된다. SBS는 그의 이야기를 5월, ‘가정의 달’ 특집 드라마로 방영한다.

이영훈 추모공연이 있던 3월 2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제덕 씨를 만났다. ‘시각장애를 이겨낸 인간승리의 주인공’이 아니라 ‘하모니카 연주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음악인’으로서였다. 그와의 대화는 유쾌하고 즐거웠다. 어떤 질문에도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에게 음악은 무엇일까?

“어릴 적부터 어떤 장난감보다 더 좋은 놀잇감이었는데 그게 습관이자 생활, 일이 됐어요.”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그의 어린 시절, 집에는 오디오도 라디오도 없었다. 유일하게 문짝이 양쪽으로 열리는 텔레비전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오동잎 한 잎 두 잎~”이나 “인생은 나그네길~” 같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기자가 웃으며 “왜 나이에 맞지 않는 노래를 들었냐?”고 묻자 “엄마 아빠가 좋아하시는 노래였던 것 같다”고 한다. 텔레비전의 외화 시리즈나 드라마에 삽입된 음악 등 뭐든 음악소리가 들리면 그의 귀는 예민하게 움직였다. 열 살쯤 되자 채널을 어디로 돌리든 조용필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가 음악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은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인 인천 혜광학교에 들어가면서다. 멜로디언과 큰북, 작은북 등을 연주하는 학교 밴드에 들어갔다가 밴드가 해체된 후 사물놀이를 시작했다. 선생님에게 기본 가락과 장단을 배운 후에는 스스로 터득하며 연습을 거듭했다. 그리고 1989년, 친구 세 명과 함께 사물놀이 팀을 만들어 제1회 ‘세계사물놀이겨루기한마당’에 출전,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인 1993년에도 이 대회에 출전해 대상을 수상한 후 김덕수 산하 사물놀이패로 활동했다. 그는 “사물놀이의 휘몰아치는 장단에 뭔가 있는 것 같았다. 클래식이나 정악보다 자유롭고 활달한 사물놀이나 재즈, 세계 민속악에 끌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슬픔도 명랑하게 표현하는 음악이잖아요? 라틴이나 집시 음악을 듣다 보면 신나는 템포 속에 애잔함이 느껴지죠? 그게 좋아요”라고 말한다.

사물놀이를 하면서 재즈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할 기회가 많았는데, 1996년 그는 다시 귀가 번쩍 뜨였다.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하모니카 연주자 투츠 틸레망의 연주를 들은 것. 미국에서는 블루스를 연주할 때 하모니카는 빼놓을 수 없는 악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투츠 틸레망의 음반들을 어렵게 구해 듣고 또 들었다.

“처음에는 긴장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듣기 시작했죠. 수없이 되풀이해 들으니 어느 순간 단락 단락이 완벽하게 파악되더라고요. 하나하나 분석하고 해체했죠.”

하모니카 연주법도 독학했다. ‘어떻게 하면 저런 소리가 날까?’ 이렇게도 연주해 보고 저렇게도 연주해 봤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모니카를 입에 달고 살기에 그의 입가는 항상 부르터 있다. 그런 그를 알아보고 연주자로 불러낸 사람이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 씨. “같이 공연하자”는 김광민 씨의 제안에 그는 ‘나쁠 게 없잖아?’라고 생각했다 한다. 욕먹을 때 먹더라도 한번 해보자는 심정이었다고. 실제로 욕도 먹었다. 즉흥연주를 하는 부분에서 김광민 씨는 “왜 주저주저하느냐?”, “음악이 까칠까칠하다”, “자연스럽지 못하고 인위적이다” 라며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지적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보다 조금이라도 잘난 사람과 부딪혀 봐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어요. 잘난 사람을 만나면 항상 내게 부족한 것을 지적해주고 이야기해 주잖아요? 그 가운데 나 자신을 다듬어 갈 수 있어요. 사물놀이의 김덕수 선생도 그랬고, 광민이 형도 그랬죠.”


‘시각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로 포장되는 건 싫어요

|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 가수 BMK와 함께 공연하는 전제덕.
전제덕은 서정적인 감수성과 화려한 테크닉을 동시에 갖춘 데다 즉흥 연주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는 평을 들으며 많은 연주자와 가수들이 함께 연주하고 싶은 음악인이 됐다. 새로운 음색의 악기를 찾던 음악계의 요구와도 맞아떨어진 것. 조성모, 박상민, 조규찬, 이적, BMK, 김정민 등 수많은 가수의 음반에 참여했고 <똥개>, <튜브> 등 영화 OST 음반에도 참가했다.

바비킴과 김창완, 이문세에서 박진영까지 각양각색의 음악에 모두 맞출 수 있는 비결이 뭔지 물었다. 그는 “하루 종일, 잠잘 때도 음악을 듣고 있기에 누굴 만나면 그 사람의 음악이 쫙 펼쳐진다. 그렇지만 거기에 묻어 가는 게 아니라 내 색깔이 분명한 연주를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2004년 첫 연주 음반을 낸 그는 2005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부문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하모니카 음악의 독자 영역을 개척한 것.

“재즈가수 말로 씨의 음반 세션으로 참여하면서 JNH의 이주엽 대표를 만났습니다. 녹음이 끝난 후 ‘쫑파티’를 겸해서 술을 마시는데 이 분이 느닷없이 ‘음반을 내자’는 거예요. ‘이 양반이 돈이 많은가?’, ‘뭘 모르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연주 음반을 팔기 어려운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게다가 사람들에게 생소한 하모니카 연주 음반이라니. “어떡하려고?”라는 걱정에 피해 다녔는데, “제덕 씨에게는 뭔가가 있어. 하면 돼”라는 이주엽 대표의 설득에 일을 저질렀다. 스스로 쿨하다는 사람이 음반을 내준다는데 왜 상대방 걱정을 그렇게 했느냐며 “명랑으로 포장한 슬픔처럼 차가움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따뜻한 사람이 아니냐”고 물으니 “그 표현 참 좋다”며 웃는다. 온갖 어려움을 헤쳐 온 그에게 좌절을 느낀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저는 좌절을 느낄 여유가 없었어요.”

기왕 시작한 음악, 배우고 익히고 할 일이 너무 많아 딴 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타고난 음악성과 절대 음감이 재산이 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타고난 것으로 끝내면 한량이 되었을 것입니다. 노력이 99%지요”라고 대답한다. 어떤 악기를 해도 조금 깊이 있게 들어가면 어려워지고, 테크닉이 제대로 안 될 때는 ‘내가 이걸 해야 하나’하는 자괴감이 말할 수 없는데, 그걸 이겨 내야만 다음 경지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했다.

“제 신조가 ‘이 세상 누구도 믿지 말자’예요. 나 자신을 믿어야지. 사물놀이를 할 때도, 하모니카를 불 때도 ‘누가 듣는다고 그걸 해’라고 비웃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니 되잖아요?”

그에게 사람들에게 ‘감동과 눈물’로 포장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좋진 않죠. 내 음악을 봐달라고 하고 싶어요. 그래도 그게 현실이니까. 그냥 하모니카를 연주한다는 것보다 그렇게 포장하는 게 훨씬 멋있어 보이잖아요?”

자비로 음반을 내지 않는 한 대중의 취향을 맞춰야 하는 현실과 음악적 소신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까 항상 고민한다는 그. 누구보다 세상을 잘 꿰뚫어 보는 그가 부쩍 커보였다.
  • 200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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