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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메랄다는 나에게 운명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헤로인 최성희

지난 2월 20일 수요일 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장。
뮤지컬은 에스메랄다 시신을 안고 울부짖는 콰지모도 노래를 끝으로 막이 내렸다。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드문드문 보였다。 그리고 관객 전원의 기립박수。
커튼콜로 음유시인 그랭구아르의 노래 ‘대성당들의 시대’와 비보이들의 댄스를 선보였다。
평일인데도 2980여 석의 대극장은 빈 좌석이 없었다。

사진 장성용 | 헤어·메이크업 미호·임미현 제니하우스
아시아 최초 로컬버전으로 공연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한국어 버전이 지난 1월 18일부터 2월 28일까지 관객 11만 명을 동원하며 서울 공연의 막을 내렸다. 2005년, 2006년 오리지널 팀이 내한했을 때보다 많은 관객 수다. 호평이 이어지면서 갈수록 관객이 늘었다. 한 달 넘는 장기 공연으로선 드문 현상이다. 3월 15일부터 4월 1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5월 2일부터 18일까지는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이 이어진다.

<노트르담 드 파리> 열기의 중심에 있는 에스메랄다 역의 바다를 만났다. 공연 기간 중의 인터뷰라 조심스러워했다. 두툼한 외투를 걸쳐 입고 나타난 바다는 “원래 몸을 사리는 편이 아닌데, 감기 걸리면 큰일이잖아요”라며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관심이 부담스러운지 “워낙 오리지널 작품이 좋은데다 배우들 기량이 뛰어나고 스태프가 훌륭해요. 제가 잘해서 관객이 많이 든 것처럼 쓰지 말아 주세요”라며 당부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로,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와 그녀를 사랑하는 세 남자(꼽추 콰지모도, 신부 프롤로, 근위대장 페뷔스)를 둘러싼 사랑과 운명을 다룬 아름답고도 슬픈 서사다. 에스메랄다는 극중 내내 맨발로 무대를 누빈다. 옆 라인이 길게 트여 다리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긴 드레스를 입고 춤추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에스메랄다의 화신(化身)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드레스를 휘감아 도는 회전동작의 절제 있는 템포, 뇌쇄적으로 흐느적거리는 팔과 다리, 금방이라도 왈칵 울음이 쏟아질 것 같은 눈망울. 그녀 특유의 비음과 청명한 음색이 에스메랄다 역에 입히면 요염미와 청순미가 배가된다. 매혹적인 춤 한 번으로 경건한 신부를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에스메랄다가 된다.

“발끝만 살짝 닿아도 온몸에 전율을 느낄 수 있어요. 뭐든 상상하면 생생하게 느껴지지요. 자연 속에서 커서 그런가 봐요.”


작은 성당에 살면서 자연을 만끽했던 어린 시절 경험이 자산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경기도 시흥시 도두머리에 있는 작은 성당에서 살았다. 자연에 푹 파묻혀 살던 시절, 주변 과실나무에서 과일을 따먹었고, 조금만 걸어 나가면 닿는 바닷가의 비릿한 냄새를 즐겼다. 그 시절 그는 성당 마당에서 하루 세 시간씩 노래를 들으며 춤을 췄다고 한다. 에스메랄다의 고향이자 동경해 마지 않는 안달루시아. 도두머리가 그녀에게는 안달루시아인 셈이다.

그곳에 간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소리꾼 최세월 씨.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간과 위에 천공이 생기며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치료비 때문에 집도 없어졌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성당. 조립식 건물로 된 성당 한쪽에 얹혀살았다. 학비도 못 낼 정도로 가난한 시절이었다. 집안일도 남에게 맡기던 엄마는 식당일을 하러 나갔다. 그녀는 그러나 이 시절을 “제 인생에서 가장 영화 같고 멋있는 기억”이라고 회상한다.

“가난을 못 느꼈어요. 빈곤은 배고픈 거잖아요. 과일이 지천에 널려 있지, 바닷가에 가 조개 캐먹으면 되지, 동네 어른들이 고구마와 감자를 쪄다 주시니 먹을 게 풍족했지요. 풍요로운 자연 속에 사니 정신도 풍요로웠어요. 대자연은 인간이 넘어설 수 없는 거룩한 대상이잖아요. 대자연이 내 친구라는 게 정말 든든했어요. 그때 느꼈어요. ‘아, 나는 피해의식 없는 어른으로 자라겠구나’ 하고.”

6개월을 못 넘긴다던 아버지의 병은 기적처럼 나았다. 최세월 씨는 지금도 소리꾼 가수로 활동 중이다. 바다는 “우리 아빠가 나 때문에 그 시기에 아프셨나 봐요. 아름다운 추억을 심어 주시려고요”라고 말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한 그는 아픔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아로새긴 듯했다. “제 인생에는 좋은 일만 생겨요.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는데 학교 가면 사랑받는 스타일이었어요. 학비를 못 내 선생님한테 손바닥을 맞을 때도 저만 살살 때리셨어요”라며 웃는다.

가수의 고충과 허망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의 아버지는 딸이 가수가 되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수녀가 되었으면 했다고 한다. 하지만 바다는 자기 안의 에너지와 끼를 주체할 수 없었고, 그 끼를 성당 마당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발산했다. 매일 하루 세 시간씩 6년 동안,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독학을 한 셈이 됐다.

“한겨울에도 땀으로 흥건해져 속옷을 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춤을 췄어요.”

모든 남자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여인이자, 그 사랑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불행한 여인 에스메랄다. 배역의 색채가 워낙 강해 무대에서 내려와도 에스메랄다로서의 느낌이 남지 않는지 궁금했다.

“저는 남들보다 변형이 쉬운 것 같아요. 분자돌이 있죠? 분자 하나로 이걸로 변했다 저걸로 변했다 하는 분자돌이요. 어렸을 때 분자돌이가 나오는 만화를 보면서 막연히 배우라는 게 저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무대에 서는 순간 바로 에스메랄다가 돼요. 타임머신을 타고 500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상상해요. 그때 에스메랄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고요.”




바다의 본명은 최성희다. 바다는 그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지어 준 별명이다. 무한한 자원이 묻힌 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최성희의 가능성을 본 친구들은 바닷가에 사는 그녀를 바다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뮤지컬 배우로 거듭나면서 바다가 아닌 최성희로 살겠다고 선언했다.

“뮤지컬을 할 때 진짜 제 모습을 찾는 것 같아요. 가수로서 ‘바다’는 만들어진 모습이에요. ‘바다’를 벗어던지고 본래의 최성희로 살고 싶어요.”

오디션을 거쳐 <노트르담 드 파리> 에스메랄다 역에 낙점된 바다는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보컬 트레이너 미셀세로나에게 트레이닝을 받고, 오리지널 팀에서 에스메랄다 역을 맡은 나디아 벨을 만나기도 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된 노트르담 성당도 순례하고 왔다. 그에게 성당을 방문했을 때 느낌을 물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가 웬 말일까요? 내가? 아시아 최초의 에스메랄다를 내가? 이만한 물음표인 거예요. 왜 내 인생에는 좋은 일만 생길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성당의 조각상을 보는 순간 나를 기다린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너 왔니? 하고. 정말 신비로운 감정이었어요. 그런데 마침 그 날이 노트르담 성당 생일이라는 거예요. 가이드가 알고 데려간 것도 아닌데.”

| 프랑스에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바다.
에스메랄다 역의 바다 목소리에 대한 평은 두 갈래다. 가늘고 예뻐서 에스메랄다에 적격이라는 평과 특유의 비음이 강해서 거슬린다는 평. 다른 뮤지컬 배우들과 창법이 달라 튄다는 지적도 있다. 그녀에게 보컬 트레이너로부터 코치를 받은 후 무엇이 가장 달라졌는지 물었다.

“솔직히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아요. 준비된 마음을 배웠어요. 전 원래 잘 울지 않는데 코치를 받다가 울었어요. 감정은 알겠는데 목소리가 안 받쳐 줘서. 미셀세로나 선생님은 제 스스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깨우쳐 주셨어요.”

대중가수와 뮤지컬 배우는 발성법이 다르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성당에서 성가대를 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가스펠송을 듣고 불러 왔어요. 대학 때부터는 뮤지컬 음악을 조금씩 했고요. 목으로 흉내 내는 건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요. 깊이는 못 배웠지만.”

옥타브 운운하며 고음 처리방식 등을 꼬치꼬치 묻자 바다는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뮤지컬은 한 판 굿이에요. 저는 무대 위에 설 때 신나게 한 판 놀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올라요. 보시는 분들도 그렇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연기는 제 자신을 결박했던 것을 풀어내는 의식이에요.”

|‘에스메랄다’초석을 다진 다니아 벨과.
바다라는 브랜드에 갇혀 온전한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던 자아, 하지만 늘 내면에 꿈틀거리는, 비상에의 욕구를 떨쳐 버리지 못했던 자아. 그런 그가 뮤지컬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자신을 가두고 있던 껍질 하나를 벗어던졌다. 이 무대에 앞서 뮤지컬 <페퍼민트>(2003), <텔 미 온 어 선데이>(2007)에서 워밍업을 했다. <텔 미 온 어 선데이>에서부터 스스로 옭아맨 결박을 풀어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더 이상 스타로서의 길을 추구하지 않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제껏 화려한 모습만 보여 왔어요. 그동안 받아 온 것을 이젠 무대에서 돌려주고 싶어요. 혼자 취해서 하는 음악이 아니라 관객에게 뭔가 던져 주는 음악 말이에요. 그동안은 너무 나 자신에게 에너지가 집중돼 남에게 나눠 주는 에너지는 형성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는 태안 앞바다 기름띠 제거 자원봉사 현장에 화장기 하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제가 학비를 끝까지 못 냈다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어두워졌을지 몰라요. 그런데 성당의 어떤 분이 무기명으로 두 학기 등록금을 내주셨어요. 그때 세상이 참 따뜻하다고 느꼈어요. 세상으로부터 받은 걸 돌려주고 싶어요.”

그는 태안군민 돕기 콘서트에서부터 시작해 결식아동 돕기 콘서트로 이어지는 자선릴레이 콘서트를 열겠다고 했다. 그것도 죽을 때까지. 도두머리에 살던 시절, 그는 죽은 꿩 아홉 마리를 묻어 주면서 소원을 하나씩 빌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병이 낫는 것, 대학 입학, 가수, 배우…. 꿈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하나하나 맞아 들어가고 있다며 그는 “내 길의 끝점은 없다”고 말했다.
  • 200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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