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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 동안 부대찌개만 끓였어”

만화 食客이 찾은 맛집 ② 부대찌개 처음 만든 ‘오뎅식당’ 허기숙 할머니

들쩍지근한 햄 맛과 시큼한 김치 맛이 어우러져 제3의 맛을 만들어 내는 음식 부대찌개. 국적불명의 음식 운운하지만 부대찌개는 우리 민족의 뼈아픈 과거사가 녹아 있는 음식이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60년대 초 주한미군들이 먹는 부대고기를 몰래 구해다 만든 찌개. 그래서 당시에는 ‘부대찌개’라는 명칭을 못 쓰고 ‘명물찌개’라 불렀다.
부대찌개 개발자 허기숙 할머니(74세)를 만나러 ‘오뎅식당’을 찾아갔다. 의정부찌개거리 입구에 있는 오뎅식당은 화려하고 세련된 인근 식당들과 달리 후줄근했다. 이 자리에서만 48년째인데 간판도, 내부 인테리어도 20년 전 개조한 그대로라고 했다. 점심때를 피해 오후 3시쯤 갔는데도 역시 만원이다. 가게 면적의 다섯 배가 넘는 전용주차장에 차가 빼곡하다.

“사장은 무슨 사장? 그냥 할머니라고 불러”하며 반갑게 맞는 할머니에겐 48년 부대찌개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한 손님이 “할머니, 나 17년 만에 왔어요” 하자 할머니가 “왜 그리 안 왔어? 섭섭하게” 한다. 대여섯 명의 종업원들은 오뎅식당과 함께 늙어 할머니들이 다 됐다. 허기숙 할머니는 인터뷰 중에도 돈 받는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연신 왔다 갔다 하며 손님에게 아는 체하느라 바쁘다. 먹고 가고 싸가는 사람들이 낸 지폐 무게 때문에 앞치마가 축 처졌다.

이곳 부대찌개는 서울의 걸쭉한 부대찌개와 달리 고추장 맛이 강하고 개운한 것이 특징. 두툼한 햄에서는 햄 특유의 향과 단맛이 강하게 났고, 적당히 발효된 김치의 시큼한 맛이 살아 있었다.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따끈한 조밥에 부대찌개 한 숟가락을 끼얹어 먹으니 일품이다. 점심 먹은 지 얼마 안 된 기자와 사진기자는 금세 부대찌개 2인분을 거의 다 비웠다.

허영만 작가는 만화 《식객》의 취재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의정부의 오뎅집에 가보기 전까지 나는 부대찌개를 좋아하지 않았다. 벌겋기만 한 국물은 얼큰하지도 개운하지도 않고, 남은 재료를 이것저것 집어넣어 끓인 잡탕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집 부대찌개를 맛본 순간 난 부대찌개와 사랑에 빠져 버렸다. 경이로운 맛이었다.’

안 그래도 북적거리는 식당은 《식객》에 등장한 이후 손님이 더 늘었다. 만화에 나온 걸 모르고 있다가 손님이 책을 보여줘서 알았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드라마 《식객》을 찍기 위해 촬영팀이 다녀갔다며, “50명도 더 왔어. 우리 집 쓰러질 뻔했어” 한다.

이 집만의 비결이 뭘까. 넓적한 쇠쟁반에 소시지와 햄, 다진 쇠고기로 만든 뭉텅이 고기와 신 김치를 넣고 다진 마늘, 고춧가루, 고추장, 후추를 넣는 것까지는 여느 식당과 다를 바 없다. 비밀은 맑은 육수에 있다. 할머니에게 육수는 뭘로 만드느냐고 묻자, 눈을 살짝 흘기며 “그건 내가 알아서 해. 그렇게 왔다 갔어도 아무한테도 안 가르쳐 줬어” 한다.

“재료는 한 가지라도 좋은 걸 써야 해. 쌀은 양주골 쌀만 쓰고, 배추는 연천에서 계약재배를 해. 고추도 계약재배를 하고. 그걸 손님이 다 알아. 손님은 못 속여. 옛날 단골들이 내가 만든 부대찌개를 먹으러 멀리서들 오는데 어떻게 속여?”

곁들이는 반찬은 깍두기와 일 년 묵은 김치, 3년 묵은 무짠지가 전부다. 시큼털털한 맛이 나는 무짠지는 젊은 세대에겐 인기가 별로 없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어릴 때 먹던 맛’이라며 열광하는 반찬이라고. 매년 가을이면 일 년 동안 먹을 김치 3만 5000포기를 담그는데, 시골에 내려가 2박 3일 동안 담근단다.

“이건 젓갈을 안 써. 젓갈을 넣으면 벌레가 생기거든. 소금에 절여가지고 고춧가루하고 마늘만 넣어서 조금 짭짤하게 해. 이듬해 4~5월 되면 아주 먹기 좋아.”

오뎅식당에는 오뎅이 없다. 달랑 부대찌개만 있다. 48년 전 이 자리에 포장마차를 열어 오뎅을 팔았는데, 그때부터 오뎅식당이 됐다. ‘부대찌개식당’으로 바꿀 생각이 없냐고 장난스레 묻자 “그걸 왜 바꿔? 안 바꿔. 전국에서 다 알고 와. 와서 오뎅 파냐고 묻는 사람 아무도 없어” 하고 답한다.



부대고기로 볶음 만들다 찌개로 발전

그가 부대찌개를 처음 개발한 건 1961년. 그때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다.

“내가 안 해본 게 없어. 군고구마 장사도 해 보고, 냉면도 팔아 봤어. 그러다 포장마차를 했는데, 의정부에는 미군부대가 많잖아. 미군들이 먹고 남은 부대고기를 배춤에 몰래 숨겨 와서 나한테 팔았거든. 그걸 가지고 부대고기볶음을 했지. 그런데 손님들이 밥하고 같이 먹을 수 있게 국으로 만들어 보라는 거야. 그래서 김치랑 부대고기랑 넣어서 끓여 봤지.”

가업을 이을 손자 김민우 씨와.
그는 부대 외부로의 반출이 금지된 부대고기 때문에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세관과 경찰서에서 수시로 검문을 나와 장롱을 열어 이불을 들춰 보고, 옷장을 홀라당 뒤졌다. 감춰 놓은 부대고기를 들키는 바람에 수갑을 차고 경찰서로 연행돼 차디찬 철창 방 안에서 밤을 지새기도 했다. 벌금을 왕창 물고 일수 얻어서 장사하기를 수차례,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의 부대찌개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손님들 때문에 그만둘 수 없었다 한다. 그는 “고생한 생각하면 지금도 지긋지긋해”라고 회상한다. 단속이 풀린 건 1988년, 88올림픽을 기점으로 쇠고기 수입이 허용되면서 그의 부대찌개는 의정부 명물로 떠올랐고, 전국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넓적한 쇠쟁반 역시 그가 개발했다 한다.

“그때는 스뎅(스테인리스)에 했었는데 눌어붙고 맛이 안 나. 할아버지(12년 전 작고한 그의 남편)가 연구를 했지. 솥뚜껑을 빨갛게 달궈서 손잡이를 잘라서 썼더니 맛이 기가 막혀. 돼지기름, 들기름 칠을 해서 길들이니까 손맛도 나고 눌어붙지도 않는 거야.”

아무한테도 안 가르쳐 줬다는 육수의 비밀을 전수해 준 사람이 있다. 손자 김민우 씨(26세)다. 할머니의 가업을 잇는 민우 씨는 오뎅식당에서 할머니 외에 손님들에게 돈 받는 게 허락된 유일한 사람이다.

“경찰대학교 간다는데 내가 꼬셨어. 나하고 이거 하는 게 더 낫다고. 우리 손자가 부지런하고 머리도 좋거든. 잘할 거야.”

김민우 씨는 “세상에서 할머니를 가장 존경해요. 외길만 고집해서 어려움을 딛고 부대찌개라는 음식을 전 국민이 즐기는 음식으로 만들어 내셨으니까요”라고 말했다.

허기숙 할머니는 오뎅식당에서 붙박이처럼 산다. 식당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가는 날이 많다. 이곳은 아침 8시에 문을 열어 밤 10시에 닫는다. 의정부찌개거리에 있는 식당 중에서 가장 빨리 열고 가장 빨리 닫는다. 그는 “내가 나이가 들어서 늦게까지 못 열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저 하루 자고 나면 손님맞이하고, 손님들이 맛있다 그러면 기분이 좋은 거야. 내 일과가 이거여. 6ㆍ25 때 결혼해서 신혼여행도 못 갔어. 여행가자는 사람이 많은데 난 그런 것도 싫어. 살아 있는 날까지 여기서 이렇게 손님맞이하면서 부대찌개 팔 거야.

사진 : 장성용
  • 200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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