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에게 선물한 나전칠기 만든 김규장 명장

아랍에미리트 왕세자가 또 주문했어요

‘뭔가 새로운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는 것은 그의 오래된 습성. 작업하고 난 후 버리던 쪼가리 자개를 자개 타일로 활용하는 방법이나 자개를 붙이는 자개 전기인두 등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고, 나전칠기와 매듭을 접목해 문화상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지난해 2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선물한 십이장생도 나전칠기 병풍을 만든 김규장 명장. 그가 또다시 화제를 모았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열린 전시회에 1억 원짜리 장롱, 2000만 원짜리 반닫이 등을 내놓았는데 얼마 안 돼 모두 판매된 것. 2005년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의체) 정상회담이 열린 부산 동백섬 누리마루 APEC하우스의 로비 벽면을 장식한 가로 6m, 세로 2.2m 십이장생도 나전칠기도 그의 작품이다. 십이장생도는 해ㆍ구름ㆍ산ㆍ바위ㆍ물ㆍ학ㆍ사슴ㆍ거북ㆍ소나무ㆍ불로초 등 십장생에 천도복숭아와 대나무를 더한 것이다.

옛것으로 치부되던 나전칠기를 되살려 최고의 명품으로 만들어 낸 명장 김규장 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 중곡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작업실 한쪽 벽면에는 진귀한 재료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소라, 전복, 진주조개 등 각종 조개껍데기들과 상아, 거북이 등딱지(대모), 철갑상어 껍질, 금실, 푸른 형광 빛을 띤 비단벌레(玉蟲)까지. 나전칠기로 가구를 만드는 과정은 목재가구에 보석으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것과 같았다.

종류와 나는 곳에 따라 진주색과 분홍색, 파란색 혹은 공작꼬리처럼 현란한 색을 나타내는 조개껍데기를 알맞은 두께로 갈아 가구에 붙이고 그 위에 옻칠을 반복하는 과정. 옻칠로 나전 재료를 덮어 말린 뒤 하나하나 벗겨내며 정성을 다해 만들어야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상아를 붙여 표현한 학은 금방 날아오를 듯하고, 금실로 한 땀 한 땀 표현한 사슴털은 보송보송하다. 거북이는 실제 거북이 등딱지를 붙였다. 눈이 내리듯 점점이 하얗게 뿌린 것은 달걀껍데기(난각)를 활용했다고 한다. 달걀껍데기는 싼 재료지만, 옻칠한 후 흰 부분을 하나하나 닦아 내야 하는 등 만드는 과정에서 품이 많이 들어 다른 가구에 비해 비싸다고. 그는 “옻칠은 시간을 거듭하면서 은은한 색이 더욱 피어나고, 손으로 만질 때 느낌도 오묘하다”고 한다. 그런 매력에 빠져 그의 나전칠기를 찾는 고객이 많다. 모란이 커다랗게 부각돼 현대적인 느낌이 강한 이층장을 가리키며 “한 고객이 나중에 아들과 딸에게 각각 물려줄 것이라며 두 점을 주문했다”고 한다.

“우리 가구는 대부분 대를 물려 쓰겠다는 생각으로 사들이는 것 같아요.”

장안의 내로라하는 거부들과 정-재계 인사들이 그의 가구를 많이 사갔지만, 그는 이름을 밝히기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워낙 고가라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린다는 것. 작업실에 빼곡히 들어찬 가구들은 한 점도 같은 게 없었다. 모두 그의 실험정신이 발현된 작품들이라, 손님이 팔라고 청해도 남겨 두고 싶어 못 파는 것들도 있다. 누리마루의 벽화는 통일신라 때부터 근대까지 나전칠기의 모든 기법을 동원한, 종합세트 같은 작품이라고 한다. 벽화를 끝낸 후 그는 아들과 딸에게 각각 ‘유산’으로 남길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재료값을 아끼지 않고 심혈을 기울여 만들던 중 먼저 제작된 한 점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줄 선물을 찾던 청와대 사람들의 눈에 띄었고, 북한으로 건너간 것이다.



나전칠기 장인 형 밑에서 기술 익혀

그가 나전칠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어릴 때였다. 그는 9남매 중 막내. 스무 살 차이 나는 큰형이 나전칠기 장인이라 어릴 때부터 형님 공방을 다니며 심부름을 했고, 197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형님한테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형님은 저를 대학 공부시키려고 했는데, 형님이 그 분야에 이미 이름이 나 있어서 1960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선물을 제작했고, 1978년인가 필리핀의 이멜다 여사가 방한했을 때는 인사동 매장에서 저희 제품을 보고 직접 공방까지 찾아와 주문하고 가셨지요.”


그는 형 덕분에 쉽게 일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 재료를 다듬는 실톱은 독일제밖에 없어 초보자는 함부로 만지기도 어려웠는데, 그는 처음부터 실톱을 가지고 작업했다고 한다. 1970년대에는 자개장이 부의 상징이었다. 돈을 싸들고 와서 주문하는 사람이 많았다. 1990년대 초반까지 그는 주문이 밀려 피해 다녀야 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까지 돈은 언제든 생기는 줄 알았다. 그러나 수입가구들이 밀려들고,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나전칠기 가구는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 공장 규모를 그대로 두자니 적자가 거듭됐다.

“자개장을 만들던 사람들의 책임도 컸죠. 수요가 많을 때 너도나도 만들면서 질 낮은 제품이 나돌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순식간에 눈을 돌렸습니다. 나전칠기를 만드는 데 쓰는 상사칼 하나만 들고 나가면 돈 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전에 벌어 둔 돈이 있으니 공장 문을 닫고 여생을 즐길 수도 있었다. 그는 그러나 나전칠기를 떠난 삶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외에는 좋아하는 일도, 취미도 없었다. 돈을 쉽게 벌 수 없게 된 게 그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됐다. 상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 옛사람들은 어떻게 나전칠기를 만들었는지 자료를 뒤지면서 재현하고,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박물관 연구반에도 등록했다. 일 년에 두 번씩 외국으로 여행을 다니며 그곳 박물관에서 나전칠기 제품을 찾아 연구를 했다.

“이집트와 터키에도 나전칠기 제품이 많더라고요. 중국에서 건너간 것인지 터키 왕궁의 박물관에서 많이 봤어요.”

그는 전환기가 된 그때에 대해 “배고픈 사자가 사냥에 나서는 법이잖아요?”라고 설명한다. 어디서 새로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 기법으로 만들었나’ 관심을 쏟았다. 안압지에서 금은평탈(金銀平脫)로 만든 유물이 발견되자 이를 재현해 내기도 했다. 금은평탈은 금판 은판으로 문양을 붙인 후 그 위에 옻칠을 해서 연마하는 기법. 작업실에 금은평탈로 만든 장이 놓여 있는데, 다른 나전칠기 작품들과 달리 금과 은으로만 문양을 표현한 게 청초하면서 우아했다. 도쿄의 국제가구 박람회에 참가할 때는 조개껍데기를 잘게 부순 후 접착해 공작새 꼬리색깔을 표현,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뭔가 새로운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는 것은 그의 오래된 습성. 작업하고 난 후 버리던 쪼가리 자개를 자개 타일로 활용하는 방법이나 자개를 붙이는 자개 전기인두 등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고, 나전칠기와 매듭을 접목해 문화상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요즘 그는 주로 실험성 짙은 대작에 매달리고 있다. “하던 것만 하면 재미없지 않느냐?”면서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 한 점에 1억 원이라면 굉장히 비싼 것 같지만, 재료가 비싼데다 도안을 구상하고 한 땀 한 땀 수놓듯이 만들어 가다 보면 수개월에서 1~2년씩 걸리기도 한다고 말한다. 건칠화병은 100여 차례 옻칠을 되풀이해, 만드는 데 일 년 가까이 걸린다. 천연재료를 쓰기에 처음 머릿속에서 구상하던 것과 실제 만든 완성품 사이에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는 상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사람대접 받는 데 빠졌다”고 한다. 최고로 인정받는 작품처럼 그에 대한 대접도 달라지더라는 것. 누가 사는지 모르던 예전과 달리 작품을 사간 사람이 식사 초대를 하는가 하면, “대를 물려 쓰겠다”며 고마워한다고 말한다. “새 작품 없어요?”라며 찾는 사람도 있다. 2006년 방한했을 때 그의 작품을 사갔던 아랍에미리트연합 왕세자는 “어머니 드리겠다”며 얼마 전 새로 주문을 했다고 한다. 그의 곁을 지키던 아내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작품을 만들다 죽으면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기법으로 제작한 것일까?’ 의아해할 정도로 깜짝 놀랄 작품을 만들겠다고 하곤 하지요.”

사진 : 신규철
  • 2008년 03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