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트로트 가수 박현빈

아줌마 팬들의 ‘오빠’

트로트 팬들은 쏠림이 없어요. 충성도가 높죠. 새로운 스타가 나와도 쉽게 움직이지 않아요. 식지 않는 뚝배기 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팬들처럼 저도 뚝배기 같은 가수가 되고 싶어요. 쉽게 식지 않는 가수, 한결같은 가수 말이에요. 죽을 때까지 트로트 가수로 남을 거예요.
스물여섯의 신세대 트로트 가수 박현빈이 한국 대중가요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최초의 성악 전공 트로트 가수, 최연소 전통가요 가수 왕 수상 가수, 최연소 남자 디너쇼 가수, 선거 로고송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노래를 부른 가수….

크리스마스 디너쇼를 끝낸 그를 만났다. 강남에서 <전국노래자랑>을 녹화하고 오는 길이라는 박현빈은 얼굴도, 체구도 작았다.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폭발적인 가창력이 뿜어져 나오는지 신기했다.

그는 17대 대선의 로고송을 독식해 ‘로고송 제왕’이 됐다. ‘오빠만 믿어’(이명박), ‘빠라빠빠’(정동영), ‘곤드레만드레’(권영길) 등 그의 3개 히트곡이 모두 선거 로고송으로 쓰인 것. 선거 판에서 으르렁거리던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민노당이 로고송에서는 하나가 된 셈이다. 박현빈에게 “대박 났겠다”고 하자 고개를 젓는다.

“경제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안 됐어요. 통보만 받았죠. 저작권법에 의하면 선거 로고송으로 쓰일 경우, 가수와 소속사에는 돈을 안 내고 저작권자인 작사ㆍ작곡가에게만 음원료를 내거든요. 하지만 거리마다 제 노래가 울려 퍼졌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어요?”

2006년 지자체 선거 때에는 600명이 넘는 후보의 노래를 박현빈이 직접 불렀다. 사흘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하면서 녹음했단다. 자신의 노래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박현빈. 그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밥 먹을 때에도 ‘어떻게 하면 내 노래를 한 번이라도 더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단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 박현빈은 선배 가수 박상철과 듀엣 디너쇼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 1000석이 거의 꽉 차 박현빈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생애 첫 디너쇼라 많이 떨렸어요. 7만~8만 명이 모인 음악회에서도 안 떨렸는데, 이건 달랐어요. 저를 보기 위해 거액의 티켓을 구매하고 오신 분들이잖아요. 그것도 크리스마스이브에. 어떤 분들이 오실까, 격 있는 분들이 팔짱끼고 앉아 박수도 안 쳐주시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됐어요. 그런데 너무 흥겹게 호응해 주시고, 사랑해 주셨어요. 스물다섯 번째 맞는 크리스마스였는데, 제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였어요.”

박현빈은 추계예술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있다. 여섯 살 때부터 10년 동안 바이올린을 배웠고, 피아노 연주도 수준급이다. 그를 만나면 먼저 묻고 싶었다. 성악을 전공하면서 어떻게, 왜 트로트 가수가 됐는지.

“군악대에 지원해서 갔는데 전역하면 한번 찾아와 봐라, 하면서 명함을 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탤런트부터 대중 가수, 팝페라 가수, 뮤지컬 배우를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죠. 한두 번이 아니라 수십 번 듣다 보니 ‘내가 정말 끼가 있나?’ 싶었어요.”

전역 후 명함을 들고 기획사를 전전하며 오디션을 봤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감정을 잡아서 발라드를 부르면 “너 일부러 트로트처럼 부르는 거지?” 하며 비꼬았다고 한다. 댄스곡을 불러도, 가곡을 불러도 트로트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트로트는 내 운명’이라고 생각한 그는 장윤정 씨의 소속사 ‘인우기획’의 문을 두드렸다. 서류와 데모 테이프를 보냈지만 결과는 또 낙방.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기획사를 직접 찾아갔다.

“들어갔더니 장윤정 씨가 오징어덮밥을 먹고 있었어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떨렸죠. 사장님을 찾아가 ‘제가 박지웅(박현빈 본명)입니다’ 하면서 어필했어요.”

그리고 다음날 그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당시 박현빈이 ‘급습’했던 순간에 기획사 사무실에 있었던 정원정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박현빈을 본 순간 되겠구나, 싶었어요. 마스크 좋고, 근성도 있어 보였죠. 무엇보다 기본기가 탄탄한 준비된 가수였어요.”


할아버지 대부터 음악인 가족

박현빈의 가족은 음악인이다. 왼쪽부터 아버지, 박현빈, 형, 어머니.
장윤정이 ‘어머나’를 발표하고 조명을 받기까지 1년 6개월이 걸렸지만 박현빈은 ‘곤드레만드레’ 발표 후 6개월 후에 소위 ‘떴다’. 데뷔 1년 6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한국전통가요 가수왕까지 수상했다.

그의 음악적 유전자는 피 속에 내재돼 있었다. 할아버지는 음악 선생님이었고, 아버지는 색소폰 연주자, 어머니는 노래교실 강사다. 그는 “음악가는 원래 다른 음악인을 잘 인정하지 않는데, 어머니는 제가 최고로 인정하는 음악인이에요”라고 말한다. 두 살 위 형은 경희대 성악과 수석 졸업 후 독일에서 오페라 공부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무명시절 없는 가수, 운이 좋은 가수라고들 하지만 그는 데뷔전에 혹독한 시련을 거쳤다고 한다. 통 큰 아버지가 무리하게 사업을 벌였다 외환위기를 맞아 빚더미에 앉은 것. 온 식구가 음악을 그만둬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이때 박현빈은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노래를 시작했다. “음악은 계속하고 싶은데 기악은 돈이 많이 들어 성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며 “찢어지게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이라고 회상한다.

그는 눈물이 없다. 군대에서 어머니 이야기에 1000여 명 군인들이 다 울었을 때에도 그는 울지 않았다. 눈물을 보이면 약해 보일까 봐서다. 주위에서 ‘독하다’, ‘무섭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그는 데뷔 초 ‘죽을 만큼 힘든 일은 없다’는 각오로 임했다 한다. 기획사 직원은 “박현빈 씨는 섭외가 들어오면 어느 방송 하나 거절하지 않고 머슴처럼 응했어요. 하루 열 개가 넘는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못 자면서도 힘든 내색, 지친 기색을 전혀 안 내비쳐요”라고 말했다.

박현빈은 여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TV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에 종종 출연하는 그는 ‘느끼한 오빠’ 콘셉트지만, 실제로 만나 보니 담백하고 진지했다. 박현빈은 효자로도 이름이 났다. 부모의 빚을 거의 다 갚은데다 형의 유학 자금도 그가 댄다고. “이젠 좀 안정이 됐으니 형도 고생을 그만해야죠” 한다. 기획사에서는 그에게 새해 첫날부터 일주일간 휴가를 주었는데, 부모님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까지 모시고 사이판으로 효도관광을 다녀왔다. 그에게는 열성적인 아줌마 팬들이 많은데, 보약을 종류별로 지어 와 차에 실어 주기도 한다. 물불 안 가리는 아줌마 팬들 때문에 당황스러운 적도 많았다고 한다.

“차에 갑자기 올라타시는 분도 있고, 아들 같다며 엉덩이도 만지고 하세요. 처음엔 불편했지만 지금은 적응됐어요. 저도 그분들에 맞춰서 한 번 안아드리고 하죠.(웃음) 팬들 덕택에 제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거니까.”

어떤 가수가 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또 팬 이야기를 한다.

“트로트 팬들은 쏠림이 없어요. 충성도가 높죠. 새로운 스타가 나와도 쉽게 움직이지 않아요. 식지 않는 뚝배기 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팬들처럼 저도 뚝배기 같은 가수가 되고 싶어요. 쉽게 식지 않는 가수, 한결같은 가수 말이에요. 죽을 때까지 트로트 가수로 남을 거예요.”

사진 : 이창주
  • 200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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