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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멋있고 싶다

하재봉이 만난 사람 | 돌아온 디자이너 하용수

하용수와 인사를 하게 된 것은 김인식 감독 때문이었다. 김인식을 감독에 데뷔시키기 위해 우리는 함께 만났다. <로드무비>로 데뷔해서 청룡영화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등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았고,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후 김혜수 주연의 <얼굴 없는 미녀>를 만들었던 김인식 감독은, 당시 데뷔 전이었다. 1994년의 일이다.

나에게 김인식을 소개해 준 사람은 유하 감독이다. 영화감독을 하려고 하는 사람인데 소설을 썼으니 한 번 읽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원고를 받아 읽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읽혔다. 문장은 거칠었지만, 캐릭터 구축이 선명했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무서운 힘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내 고등학교 후배였다.

김인식은 내 소설 <쿨재즈>를 영화화하겠다고 투자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때 하용수가 등장했다. 하용수 같은 저명인사가 나서면 투자자를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결국 아직까지도 <쿨재즈>는 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했고, 김인식은 그 후에도 10여 편의 영화가 중간에 무산된 뒤 2002년에야 <로드무비>로 뒤늦게 데뷔했다.

하용수와의 인연은 그 뒤에도 이어졌다. 나는 1995년 동아TV의 일일 드라마 <블루스 하우스>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적이 있다. 스튜디오나 세트 촬영 없이 ENG로만 찍은 실험적인 드라마였다. 회당 20분씩 총 30부작이니까, 600분 분량, 영화로 치면 6편을 찍었다고 생각할 만큼 힘들게 작업했다. 모델과 배우들의 세계를 소재로 신분상승과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비극적 파멸을 그린 드라마였다. 그 작품의 여주인공이 1980~90년대 한국 최고의 모델이었던 박영선이다. 하용수는 박영선의 매니저였다.

당시 하용수는 박영선, 이정재 등의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었다. 심야 촬영장에 이정재와 함께 하용수가 방문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외환위기가 왔고, 하용수가 재정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몰렸다는 말이 들렸다. 한동안 소식을 모르던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지난해 집 근처의 청담동 카페에서였다. 다시 일을 시작했다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한 달 전, 나는 늘 지나다니는 집 근처에서 그의 얼굴이 표지에 실린 그의 저서 《사람, 사람들》이라는 책이 진열된 쇼윈도를 발견했다. 녹슨 철판으로 입구가 가려진 그 부티크는 밖에서 봐도 매우 품위 있고 아름다웠다. 역시 ‘하용수’라는 상호가 보였다.

“그동안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트렌드를 기획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 옷을 내놓고 싶은 의미가 강했다. 트렌드에서 앞서 가려는 젊은 여성들보다 자신만의 완성도 있는 멋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옷을 만들다 보니까 굉장히 긴장된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디자이너 하용수가 다시 자신의 숍을 오픈한 것은 12년 만의 일이다. 2007년 10월 27일 오픈한 ‘하용수’ 부티크는 소수의 고객들을 위한 오트 쿠튀르 숍이다. 그는 마주 앉은 나를 보고 갑자기 “내가 하 감독보다 위죠?”라고 말해서 나를 당황시켰다. 그는 1949년생, 나의 큰형님뻘이다. 그는 한양대 행정학과를 중퇴한 후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년)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한다. 그 뒤 <종점>, <물보라> 등의 영화에 출연했고, 패션 산업에서 일하다가 박중훈, 이경영, 오연수가 주연한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1995년)에 오랜만에 등장해 암흑가의 보스로 멋진 풍모를 보여주었다.

“옷을 처음 시작할 때는 남들이 미친 사람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일에 집중했다. 내 옷은 아방가르드였고 파격이었다. 그게 내 이미지를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용수는 디자이너다. 그리고 최초의 패션 디렉터다. 대중문화 곳곳에 그는 손을 뻗었다. 미다스의 손처럼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황금으로 번쩍거렸다. 항상 트렌드를 앞서 이끌었다. 혹시 1970년대 후반 광교에 있던 ‘템테이션’이라는 카페를 기억하는가. 나는 대학시절 그 카페의 단골이었다. 당시로서는 가장 모던했던 인테리어가 나를 매혹시켰다. 커피 값이 꽤 비쌌지만 여자친구가 생기면 그곳에 데리고 갔다. 류시화, 장석주, 이문재 등의 시인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던 곳도 그곳이다. ‘템테이션’의 인테리어를 했던 주인이 하용수다. 그는 ‘스튜디오 80’이라는 한국 최초의 디스코텍도 만들었다. 또 1980년대 남대문의 ‘페인트 타운’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 유니섹스 열풍을 몰고 왔던 진원지다. 그곳을 기획한 사람도 하용수다.


청담동에 샴페인 바도 열어

“다시 퍼스낼러티를 살리는 오트 쿠튀르를 하는 이유는, 그동안 나를 믿고 지지해 준 분들에 대한 보답 의식도 있고, 트렌드를 좇는 데 싫증이 나 자기만의 색깔을 내고 싶은 고객들에게 부응하려는 의미도 있다. 내 땀이 배어 있는 옷들을 만들고 싶은 옹골찬 욕망이 있었다.”

그는 아침 9시면 숍에 나온다. 청담동 집에서 숍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다. 그의 숍은 검정색과 회색이 지배하는 실내에 손님들을 위한 바까지 갖추고 있다. 그는 아직도 몇 십 년 전 옷을 버리지 않고 옷장에 보관하고 있다. 그 낡은 옷들은 그에게 새로운 영감을 준다.

“나는 옷에서 자신의 색깔이 함유된 품격을 찾는다. 레드 카펫에서 여배우들이 가슴을 드러내는 것만이 섹시한 게 아니다. 우아함이 빠진 섹시함은 의미가 없다. 영화야말로 내 패션의 바이블이다. 나는 옷을 디자인할 때 제일 먼저 영화 속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수십 년 디자인을 해 왔지만 이제야 옷을 알 것 같다.”

그는 2008년 1월, 그의 숍에서 50m쯤 떨어진 곳에 ‘벨벳’이라는 샴페인 바를 오픈한다. 벽은 그에게 영감을 준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사진으로 장식되고, 코코샤넬 시대의 단추가 박혀 있는 커다란 소파가 놓일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구르는 돌 같던 에피소드들을 한공간에 예쁘게 모아 색다른 공간문화를 만들고 싶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주 섹시한 바가 될 것이다. 매일 파티하고 싶다. 최근 인테리어 경향이 여백도 많고 컨템퍼러리한 스타일이지만, ‘벨벳’은 오밀조밀하다. 테이블도 높낮이가 각각 다르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각기 다른 느낌을 주는 바가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샴페인 바일까.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선두주자답게 와인 다음은 샴페인 문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와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샴페인을 즐기는 사람도 늘고 있다. 사람들의 취향이 더욱 까다로워졌다. ‘벨벳’에서는 카푸치노 한 잔을 시키듯 샴페인도 잔으로 주문해 마실 수 있게 하려고 한다.”

하용수는 쳇 베이커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를 좋아하고 미야코 하루미의 엔카도 자주 듣는다. 조용필의 일본 공연 때 의상을 맡았고, 계은숙의 일본 데뷔 시절에도 의상을 담당했다. 그때 발견한 가수가 한국계 엔카 가수 미야코 하루미다. 부다바의 라운지 음악도 좋아한다. 컬렉션한 앤티크 영화를 즐겨 보기도 한다. 결국 그의 삶을 구성하는 이런 부분들이 최종적으로 정리되는 것이 옷이다.

“나는 지금까지 계획된 메뉴를 따라 살지 않았다. 의도한 게 아닌데 지나고 돌아보니 트렌드를 기획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내가 한 일들을 정리해야 할 시점이다. 그것이 이 나이에 깨닫게 되는 성숙이다. 성숙된 내 표현은 무엇인가. 나는 정말 멋있고 싶다.”

하용수가 말하는 멋은 무엇일까. 그 사람의 패션 스타일이나 언어 취향,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우면서도 타인들을 배려할 줄 알고 존경받을 수 있는 품격을 갖추는 것, 이것이 그가 정의하는 멋이다.

사진 : 이창주
  • 2008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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