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주메뉴

  • cover styory
  • focus
  • lifestyle
  • culture
  • human
  • community
    • 손글씨
    • 1등기업인물
    • 나도한마디
    • 기사제보
  • subscription

우리 시대의 고민 담은 판소리 할 것

신개념 판소리 <사천가> 만든 국악인 이자람

“이산 저산 눈이 오니 분명코 겨울이구나.
겨울 찾어 오고 나니 세상사 쓸쓸허더라.
스물 아홉 내 청춘에 모르는 것 투성이로다.

(중략)

근면 성실 착하게 살아간다고
이 한 몸 행복해지지 않으니
내 한 몸 홀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이다지도 어려우냐.”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시면 예, 하고 달려가던’ 이자람, 참 많이도 자랐다. 이자람이 쓰고, 이자람이 노래하고, 이자람이 음악감독을 맡은 판소리 <사천가>. 무대 위에 선 이자람은 때론 처진 눈초리로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탄식하고, 때론 반달 눈매로 관객의 흥을 돋운다. 이런 판소리는 처음이었다. 평균 연령 20대 후반인 7명의 젊은 판소리꾼들이 만들어 내는 판소리의 향연은 생소하고도 신명이 났다. 소리꾼 이자람을 중심으로 세 명의 광대는 어깨 들썩이며 “얼쑤~ 그렇지~” 추임새를 하다가도 벌떡 일어나 무대 위를 휘저으며 배우가 되고, 또 세 명의 악사는 장구ㆍ북ㆍ양금ㆍ박 등 국악기와 젬베ㆍ둠베ㆍ플로어 탐ㆍ스네어ㆍ카우벨ㆍ어쿠스틱 기타 등 양악기를 오가며 신명 나게 연주한다.

지난 11월 30일~12월 2일, 정동극장 ‘아트 프론티어’ 시리즈의 마지막 주자로 무대에 오른 <사천가>는 객석 점유율 80%를 넘어 극장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공연 전 “이 시대 누군가와 판소리로 소통하고 싶다”는 이자람의 작은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리허설 공연을 막 끝낸 이자람과 식사를 하며 인터뷰했다. 무대 위에선 한 맺힌 목소리로 현실 이면의 모순을 무겁게 풀어 내던 그, 무대 밖에선 영락없는 철부지 아이 같다. “고기 시켜도 돼요? 잉~” 하며 눈웃음을 짓는가 하면, 사진기 앞에선 “위에만 찍어 주세요. 다리가 짧아서요” 하며 또 눈웃음이다. 어린 시절 예솔이 이미지와 자연스레 겹쳐진다. ‘예솔이’와 ‘이자람’이 늘 하나의 수식어처럼 붙어 다니는 것을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처음엔 많이 싫었어요. 길 가다가 ‘혹시 그 예솔이?’ 하면 ‘닮았다는 말 많이 들어요’ 하고 도망가곤 했거든요. 왜 그렇게 싫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젠 인정해요. 예솔이 덕분에 관심 가져 주시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거니까.”


이자람표 판소리 <사천가>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원안으로 해서 만들어졌다. <사천의 선인>은 착하게 살아서 신들로부터 많은 돈을 받은 여인이 인간들에게 상처 입고 짓밟히면서 점차 악덕 자본가로 변해 가는 이야기.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연극에 서사적 요소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판소리로 차용하기에 용이하지만 풀어 나가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은 온갖 물음표로 수렴되는 부조리극이었다면, 이자람표 <사천가>는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나가며 ‘그래도 삶은 위대하다’고 긍정한다.

연극과 뮤지컬을 가미한 신개념의 판소리 <사천가>. 이자람은 ‘퓨전 판소리’라는 명칭도,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시도로 만들어졌다’는 표현도 거부한다.

“저는 퓨전이라는 말을 싫어해요. 퓨전은 판소리와 다른 음악과의 접점을 찾는 거잖아요. 저는 그렇게 작업하지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전통 판소리를 가지고 각 캐릭터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서 소리를 낸 거거든요. <사천가>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거라는 기본자세는 맞아요. 하지만 대중들의 입맛과 기호에 맞추려고 하다 보면 흔들리잖아요. 연애랑 비슷해요. 나의 매력은 나에게서 나오는 거잖아요. 상대방에게 사랑받으려고 맞추다 보면 나는 없어지는 것처럼 관객을 신경 쓰다 보면 내 음악이 사라져 버리죠. 제가 하고 있는 음악이 진실되고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대중과도 소통할 수 있다고 믿어요.”

<사천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 시대의 모순을 대변한다. 날지 못하는 비행사는 지식인의 기회주의, 비맹(鼻盲)인 소믈리에 지망생은 서구지상주의, 복부인은 물질 만능, 성형수술로 미녀가 된 연예인 지망생은 이미지 과잉시대를 조롱한다.



거리로 나가 대중과 소통하고파

<사천가>는 스물아홉 이자람의 치열한 고민과 쓰린 아픔의 결과물이다. 그는 이 작품을 “이 시대에 착하게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고 싶어” 만들었다고 한다. 성격이 예민해서 상처도 잘 받는다는 이자람. 이 작품 탄생까지 인생의 굴곡을 털어놓는다.

“제 스승이셨던 은희진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온몸을 치면서 울었어요. 1년간 판소리를 못했죠. 선생님이 곧 나의 판소리이자 또 하나의 아버지였거든요. 선생님이 돌아가시자 판소리를 할 이유도, 기력도 없었어요. 1년 후 차세대 명창전에 나갔는데, 거부감이 들었어요. 잘한다는 몇몇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시험 보는 분위기 같았거든요. ‘이러려면 판소리를 왜 하지?’하는 의문이 일었어요. 묻고 싶었죠. ‘당신들과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서로 더 돋보이기 위함이 아니잖아’라고요. 판소리로 소통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간절해졌죠.”

밤새 울다 지친 이자람은 친구들에게 전화해 ‘소통하는 판소리’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게 국악 뮤지컬 집단 ‘타루’다. 하지만 이 역시 그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예솔이 이자람이 만들었다’는 프리미엄을 달고 올해의 예술상 수상에 이어 서울문화재단에서 거액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하지만 이때부터 애초의 결성 의미가 퇴색하기 시작했다.

“감당이 안 됐어요.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가 돼 버렸죠. 한 친구가 저더러 ‘너 정치가 될래, 아티스트 될래?’ 물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그래서 타루를 나온 거예요. 아티스트 되려고.”

이렇게 따끔하게 충고한 친구는 바로 <사천가>에서 광대 역을 맡은 김소리 씨다. 정동극장 마당에서 사진촬영을 하다가 만난 김소리 씨에게 이자람은 “얘가 바로 그 친구예요” 하며 정겨운 눈빛을 건넨다.

“타루에 돈이 모이지 않았더라면, 매체에 드러나지 않았다면 더 오래갔을 거예요. 매체에서 너무 휘몰아쳤어요. 공연이 잘되는 것까지는 좋아요. 그렇게 돈이 모이니 그 돈을 소유하고 굴리려고 하면서 생기는 문제들 때문에 힘들었어요.”

<사천가> 팀과 함께. 왼쪽에서 네 번째가 이자람 씨고, 다섯 번째가 김소리 씨다.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가장 좋아하고, 밀란 쿤데라와 알랭 드 보통, 아멜리 노통브의 책을 즐겨 읽는 이 사색적인 예술가는 예술가와 돈, 공연과 매체 노출의 복잡한 상관관계를 몸으로 부닥치면서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는 결국 이자람표 <사천가>를 탄생시켰다.

이자람의 작은 소원은 음악을 하는 친구들과 손을 잡고 길거리로 나가는 것. “일부러 공연장을 찾아온 사람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할 때 내가 하는 판소리에 대한 평가가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 역시 간단치 않다. 돈을 주고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는데 무료로 길거리 공연을 하는 건 불공평하지 않은가. 순수한 예술 혼을 간직하고 싶은 이 젊은 예술가는 돈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사천가>가 관객들에게 어떤 공연으로 기억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평생에 남는 베스트 30 안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웃는다. “제가 얘기해 놓고 오만하다는 생각이 드네요”라며 반달 눈매로 또 웃는다. 예솔이 이자람, 몸도 마음도 참 많이 자랐다.

사진 : 이창주
  • 2008년 0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단메뉴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김창기
편집인 : 김창기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성동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