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뮤지컬 <샤인> 무대에 올리는 김미희 싸이더스 FNH 공동대표

최고의 영화제작자, 뮤지컬과 사랑에 빠지다

“처음 만났을 때 그러시더군요. ‘왜 뮤지컬을 하려고 하세요? 영화나 하시지’라고.”

한국 최대 영화제작사인 싸이더스 FNH의 김미희 공동대표와 뮤지컬 연출자 김달중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국 영화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1980년대 말 영화계에 들어와 바닥부터 다지며 손꼽히는 영화제작자가 된 김미희 대표. 그는 연출자의 그런 태도가 싫지 않았다.

“저 역시 근성 하나로 살아온 사람이니까요. 근성이 없었다면 영화 일을 계속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 대충대충 넘어가지 않으려는 게 더 좋았지요.”

두 사람의 첫 번째 합작품인 뮤지컬 <샤인>이 11월 2일부터 12월 30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싸이더스 FNH가 이다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제작한 작품으로, KBS TV 〈인간극장〉에 방영된 ‘성탄이의 열두 번째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삼았다. 열두 살 성탄이의 아버지는 거리에서 엿장수 춤을 추는 광대, 어머니는 정신지체 장애인이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돌아와 엄마를 돌보고, 다시 아빠에게 달려가 공연을 돕는 성탄이는 늘 햇살처럼 웃는 아이. 그런데 어린아이를 데려와 앵벌이 시키는 것 아니냐는 오해로 경찰이 들이닥치자 성탄이는 “아빠를 돕는 것도 죄가 되나요?”라며 울먹인다.

“원래 사람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이 방송을 울면서 봤어요. ‘저걸 영화로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는데, 판권을 다른 곳에서 사갔더라고요. 그래서 뮤지컬로 만들기로 했죠.”

심플한 스토리인 만큼 구성은 좀 색달랐으면 했고, <쓰릴 미> 등 독특한 표현의 뮤지컬로 정평이 난 김달중 씨에게 연출을 부탁했다.

“이 작품을 하면서 뮤지컬을 배워 나가는 입장이니까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구체적으로 주문하진 못하죠. 대신 ‘감동’ 부분만은 놓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서울 충무로에 있는 싸이더스 FNH 사옥의 김미희 대표실. 청바지에 큼직한 벨트, 검정색 가죽 재킷, 긴 생머리의 그는 43세라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영화의 주 관객층은 20대 초ㆍ중반. 항상 그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제 정신연령이 어려요. 고등학생, 대학생 조카들과 잘 놀죠. 20대 취향의 만화, 드라마도 좋아하고요. 최근까지만 해도 트렌드를 앞서 가는 데 자신이 있었는데, 40대에 들어서서는 위기감을 느껴요. 게임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조카에게 게임을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360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컴퓨터 그래픽이 정말 대단하던데요.”

영화화되기를 기다리는 수북이 쌓인 시나리오들.
사무실에는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압축되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오른쪽 벽이 과거.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선생 김봉두> <혈의 누> <선물> <재밌는 영화> <밀애> <피도 눈물도 없이> <여선생 vs 여제자> 등 그가 제작한 영화 포스터들이 붙어 있다. 2005년 차승재 대표와 ‘싸이더스 FNH’를 만들기 전 ‘좋은 영화’ 시절 제작한 작품들이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후 1988년 화천공사 카피라이터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그는 동아수출공사, 시네마서비스에서 영화 제작의 실무를 두루 익히다 1998년 독립해 영화제작사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

“대학 시절에는 일 년에 영화를 한 편이나 봤을까? 영화 마니아로 영화계에 입문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죠. 화천공사를 나와 다른 일을 해봤지만 재미가 없더라고요. 돈은 적게 벌어도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영화계를 떠날 수 없었죠.”

매번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작품을 하면서 “항상 새로운 사람과 연애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좋은 영화’가 처음 만든 작품이 양아치 떼거리가 주유소를 강탈한다는 내용의 <주유소 습격사건>. 기성세대는 이해할 수 없는 코드로 젊은 관객층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고 <신라의 달밤>은 전국 400만 관객을 모았다. 작고 아기자기한 이야기에서 각양각색 인간에 대한 이해가 묻어나는 게 ‘김미희표 영화’의 특징이었다. 이력만 보면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 같지만 그는 “근성으로 버텼다”고 자신의 영화 인생을 압축한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하겠다면 뭐든 할 수 있는 게 영화판입니다. 아까운 친구들이 포기하고 나가는 것을 수없이 봐왔죠. 영화는 인생을 바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일을 하면서 제 자신이 바뀌었습니다. 내성적이고 부정적인 성격이었는데 밝고 긍정적이 됐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시나리오는 그의 현재. 제목 밑에 “이게 마지막 수정이 되길 기대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얼마나 고쳤다고 그러냐고 화를 냈어요. 시나리오가 나오면 20대 남녀 모니터 요원들에게 몇 차례 돌려보게 합니다. 그들의 지적과 반응에 따라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여러 차례 반복하지요. 그들의 의견은 편집에도 반영됩니다.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미리 모니터하는 장치인 셈이죠.”

코믹 영화에서 역량을 발휘하던 차승원을 역사 스릴러 <혈의 누>에 캐스팅하거나 염정아를 <여선생 vs 여제자>에 캐스팅해 코믹한 역할을 맡기는 등 그는 배우들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 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시나리오, 캐스팅 단계에서는 이렇게 꼼꼼히 챙기지만 일단 촬영에 들어가면 감독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현장을 감독만큼 잘 알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제작자의 역할은 감독이 150%, 200%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인 감독을 영화계에 뿌리내리게 한 게 가장 큰 보람

김미희 대표는 주로 신인 감독을 기용해 작품을 만들어 왔다. 이름난 감독보다 배우 캐스팅이나 투자를 받는 것이나 몇 곱절 어렵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고 한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 두세 달 동안 틈만 나면 감독과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 한번 만나면 기본 4시간. 그렇게 감독을 속속들이 알아가는 게 그들의 색깔이 묻어나는 영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투자자와 시장의 요구와 감독의 개성, 고집 사이에서 밀고 당기며 조율하는 게 제작자의 역할.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영화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감독들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강우석 감독의 ‘시네마 서비스’시절 시나리오 작업 과정과 촬영 현장, 편집실을 쫓아다니며 영화제작 전반을 익혔다고 한다.

“김상진 감독이나 지미향 필름매니아 대표 등 ‘시네마서비스’ 출신들은 요즘도 강 감독님이 두어 시간 전에 전화해 ‘무조건 오라’고 하시면 만사 제쳐놓고 집합해야 해요.”

책상 뒤편에 놓인 <라이온 킹> 등 세계적인 뮤지컬의 미니어처에서 그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그가 뮤지컬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을 알리는 소품이었다. 영화뿐 아니라 뮤지컬, 모바일, 드라마 등 한 가지 소재로 다양한 문화상품을 만드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use)로 나간다는 게 싸이더스 FNH의 계획. 명성황후와 무사의 사랑을 그린 야설록의 무협만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원작으로, 영화와 뮤지컬 제작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그는 뮤지컬 <샤인>을 먼저 선보였다.

“3년 전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뮤지컬의 매력에 빠졌어요. 영화와 달리 뮤지컬은 편집이 없잖아요? 배우가 실수를 할까 조마조마하더라고요. 그런데 스크린이라는 장치를 거치지 않는 현장감이 매력적이었어요. 마당극이 발달한 한국인의 정서와도 잘 맞는 것 같고요. 제가 처음 영화계에 들어왔을 때의 열기가 느껴지는 듯했죠.”

외국 출장 중 잠시라도 짬을 내어 뮤지컬을 보러 다녔다. 제작자의 관점에서도 전망이 보였다. 그는 “뮤지컬은 혼자 보러 오는 사람이 없더라. 적어도 2~3명이 어울려 오니 표 팔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처음으로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면서 그는 음악, 조명, 무대 등 하나하나를 귀찮을 정도로 캐물으며 학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근성이 뮤지컬에서 다시 발휘될 것 같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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