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얼버튼’ 홍성민ㆍ장현숙 씨

뉴욕의 심장으로 진출한 부부 보석 디자이너

그저 예쁜 돌처럼 보이는 원석이 찬란한 보석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마치 마법과도 같다. 부부 보석 디자이너 홍성민(40)ㆍ장현숙(41) 씨. 이들이 걸어온 길은 자신들의 전공이기도 한, 생긴 모양을 최대한 살려 아름답게 연마하고 가공하는 보석과 닮아 있다.

거의 맨주먹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쥬얼버튼’이라는 브랜드를 공동 운영하기 시작한 때가 1996년 봄. 이들 부부는 지난 11년 동안 국내 보석산업을 디자인 문화 산업으로 승화시키면서 상업성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IMF 외환위기를 ‘맞춤형 실속 커플 반지’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돌파했고, 매해 줄기차게 보석 작품전을 열어 보석 장신구를 일상 속으로 끌어내는 데 일조했다. 처음 둥지를 틀었던 안국동의 23㎡짜리 월세 스튜디오 대신 이제는 갤러리와 작은 카페, 댄스전용 홀이 딸린 부암동의 멋진 4층짜리 사옥이 이들의 일터다. 2년 전 신사옥으로 이전하면서 브랜드 이름도 ‘사랑 이야기를 만드는 사랑의 사람들’이란 뜻을 담아 ‘애족’(愛族-ejoque)으로 바꿨다.

이들은 최근 또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9월 27일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 맨해튼 매디슨 에비뉴에 900㎡ 규모의 단독 매장을 연 것이다. 샤넬, 루이비통, 카르티에, 불가리 등 세계적 명품 숍이 즐비한 이곳에 이만한 크기로 매장을 내는 일에 꽤 긴장했을 법도 한데, 뉴욕 매장 오픈 얼마 전 부암동 사옥에서 만난 이들 부부는 여유 만만이었다.

“사실 저희는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작품 활동하기가 답답하다고 생각했어요. 보석을 통해 과감하게 자신을 표현하기보다는 누구나 편하게 할 수 있는 틀에 박힌 디자인에 대한 요구가 많았거든요.”

이들 부부는 뉴욕에서 마음껏 디자인적 상상력을 펼치며 그에 대한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이라는 세계 패션 일번지에서 검증을 받으면 세계시장으로 뻗어 나가는 일이 한결 수월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 뉴욕 고객을 겨냥해 한국보다 스케일이 크면서 동양적인 신비감이 깃든 작품을 선보인다.

이들이 뉴욕 진출에 이처럼 자신감과 여유를 보이는 까닭은 이미 오래전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보석디자인 콘테스트 입상을 통해 보석 디자이너로 ‘데뷔’한 이들은 일찍부터 해외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했다. 홍씨는 다이아몬드 투데이 그랑프리(1993년, 드비어스 코리아 주최), 제22~23회 국제진주디자인 콘테스트(1994~1995년, 일본진주진흥회) 입상 등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고, 부인 장씨는 다이아몬드 국제대상(1996년, 드비어스)을 받아 이름을 떨쳤다. 국제적으로 알아 주는 큰 상을 받아 시간차를 두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이들은 홍씨가 1995년 겨울, 장씨를 찾아가 동업을 제안하면서 같은 길을 걷게 됐다. 이들은 1999년 봄 결혼했다.

상황이 좀 더 안정(?)되자 이들 부부는 본격적인 해외 진출 모색에 나섰다. 첫 시도로 2000년 봄 일본 도쿄 국제 보석박람회에 참가했다. 홍씨가 일본에서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적이 있고, 장씨 역시 일본의 유명 보석학교 ‘히코미즈노’ 출신이라 부담감이 적었을 것이다.

이들은 일단 관람객들의 이목부터 끌고 보자는 생각으로 기발한 부스를 고안해 냈다. 부스 벽면에 크게 한자로 ‘男’과 ‘女’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이고, 바닥은 쌀을 꽉 차게 깐 석고판으로 장식했다. 이 모험은 대성공이었다고 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화장실인 줄 알고 찾아왔다가 즉석에서 제품을 구입했다.

첫 참가 치고 실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일본 시장은 워낙 유통과정이 복잡한 탓에 뚫고 들어가기가 만만치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듬해 방향을 돌려 백화점 유통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품 이외에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아 서너 달 만에 깨끗하게 정리했다.


정장 즐겨 입는 미국 동부지역 공략

부암동 매장과 작품들.
아예 미국 시장을 개척하기로 하고 숨 돌릴 새도 없이 2002년 라스베이거스 보석전시회에 참가했다. 그 결과 내린 결론은 자신들의 제품이 미국 서부보다 동부지역에 더 적당하다는 것이었다. 서부지역에서 잘 팔리는 아이템은 주로 반지인데, 이들이 가장 자신하는 브로치 종류는 정장을 즐겨 입는 동부지역 사람들에게 수요가 더 많았다.

이후 미국 진출은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2000년대 초부터 일을 도와 온 장씨의 여동생이 2002년 미국으로 건너가 보석감정을 전공했고, 2003년 9월 뉴욕 현지법인을 세우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2004년 7월, 준비를 단단히 해서 참석한 미국 최대의 보석전람회 JA뉴욕에서 이들은 ‘황금사과상’(Golden Apple Award)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이 상은 전 세계에서 참가한 2000여 개 업체 중 가장 디자인이 뛰어난 3개 업체에 주는 상이다. 같은 해 10월에는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전 세계 50여 명의 정상급 디자이너가 가입해 있는 인터내셔널 주얼리 디자이너 길드에 한국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가입했다. 그야말로 불과 수개월 사이에 디자이너 이름과 브랜드 이미지를 사방에 알리는 홍보 마케팅 효과를 거뒀다.

뉴욕 47번가에 있던 뉴욕 현지법인 사무실에는 쇼 케이스를 마련하여 광고도 하고 주문판매도 했다. 인지도가 높아진 덕에 <타운 앤 컨트리(Town & Country)> <더블유(W)> 같은 유명 패션 전문지에 작품이 종종 소개됐다. 보석 관련 홍보 담당자가 이들만 쏙 빼고 패션 잡지사로 가려는데 오히려 담당 기자가 이들 작품을 꼭 찍고 싶다고 연락을 해오기도 하고, 지방의 보통 사람들이 카탈로그에서 봤다며 제품을 주문하고 반년 넘게 기다려 줄 때는 보람을 많이 느꼈다고 장씨는 털어놓았다. 이제는 보석 관계자들과 어느 정도 친분을 쌓아 홍보-마케팅엔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미국에는 편집장이 한 잡지를 10~20년씩 맡아 하는 경우가 수두룩해요. 어느 잡지사 영업직원은 경력이 30년이더라고요. 일단 재능을 인정받고 신뢰관계를 쌓으면 한국보다 오히려 일하기가 수월한 것 같아요.”


이들이 아는 이 하나 없는 외국에서 이처럼 뜨거운 러브콜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보다 끊임없는 디자인 개발이 있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두 사람이 그린 보석 디자인 초안은 2만 장이 넘는단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기호에 맞춰 디자인을 해온데다 봄ㆍ가을로 보석전시회를 부지런히 해온 덕에 이미 확보하고 있는 디자인이 풍부하다. 홍씨의 디자인이 여성적으로 섬세하고 화려한 데 비해 장씨의 스타일이 심플하고 힘찬 것도 그만큼 선택의 폭을 넓혀 주는 요소다.

이들 부부의 다음 목표는 3년 이내에 ‘ejoque’ 뉴욕 2호 점을 내는 것이다. 매장 안에 갤러리도 내고 스위스 시계회사나 음반회사 등을 인수해 좀 더 다양한 영역을 개발하고 싶은 것도 꿈이다.

“어느 방송국의 유명한 PD가 제 이야기를 드라마 16부작으로 만드시겠대요.”

인터뷰 도중 홍씨가 살며시 귀띔했다. 홍익대 전자공학과를 자퇴하고 이리 직업전문학교(현재 한국폴리텍Ⅴ대학)에서 보석가공을 배운 뒤 독일을 오가며 보석 조각ㆍ세공의 거장들에게 사사한 이색 경력의 그는 좋은 원석을 구하겠다고 중국,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를 뒤지고 다니다 총에 맞아 죽을 뻔한 적도 있는 ‘모험가’다. 그의 경험은 보석이 갖는 독특한 존재감과 더불어 훌륭한 드라마 소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사진 : 성종윤
  • 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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