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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에 끼우는 마스크 개발해 세계 시장에 팔아요

정진구 삼정인터내셔널 대표

호흡기 질환을 걱정하는 사람이나 먼지 많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필수품인 마스크. 황사경보나 독감주의보가 발령될 때면 판매량이 급증하지만, 얼굴의 반을 가리니 답답하고 보기에 좋지 않다고 꺼리는 사람이 많다. 이에 착안해 대박을 터뜨린 발명 사업가가 있다.

올해 초 삼정인터내셔널이 출시한 ‘노스크’는 얼굴을 가리지 않고 코만 막는 그야말로 ‘코 마스크’다. 투명 플라스틱 신소재로 코에 쏙 들어가 착용한 티가 나지 않고 간편하다는 게 장점. 그런데 나쁜 공기를 걸러 주는 기능은 기존 마스크보다 훨씬 뛰어나다. 황사 입자인 1마이크로(머리카락의 100분의 1) 미세입자는 100% 걸러 내고, 0.2마이크로 초미세먼지도 80%까지 걸러 주는 것으로 산업연구원 생활과학연구원 등에 의해 입증됐다.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성능 인증서도 받았다.

삼정인터내셔널은 이 제품으로 세계 3대 발명전시회 중 하나인 미국 피츠버그 국제발명전시회에서 아시아 최고 발명상, 환경 분야 금상 등 4개 부문의 상을 수상했다. 올해 초에는 미국 소비재 유통회사인 JDR엔터프라이즈와 MOU(양해각서)를 체결, 향후 2년간 553만 달러어치의 제품을 공급하기로 했다. 직원 8명의 작은 회사가 이룬 대박이다. 사람은 보통 입이 아니라 코로 호흡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4년여 연구 끝에 노스크를 개발했다는 정진구 삼정인터내셔널 대표를 만났다.

그는 “노스크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국내 업계는 처음 이 제품을 선보이니 ‘코뚜레를 누가 하겠느냐’며 시장성이 별로 없다고 봤어요. 판로 개척이 어려웠죠. 그런데 우연히 저희 업체를 알게 된 미국 JDR엔터프라이즈로부터 연락이 온 거예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충분히 시장성 있는 제품이라고 판단한 것이지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는 것. 올해 초 미국에서는 한 흑인이 심한 독감 때문에 마스크를 쓴 채 식품점에 들어갔다가 강도로 오인한 주인의 총에 맞아 사망한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미국 사람들은 보통 마스크를 쓰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JDR엔터프라이즈는 미국에 이 제품을 적극 알려 미국 국방부와 도로국, 뉴욕시 지하철 등에 공급하기로 하고, 미국 환경국의 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홍보 활동도 펼치고 있다. 정 대표는 “JDR엔터프라이즈를 지원하기 위해 나간 피츠버그 전시회에서 뜻밖의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한다.

“전시회 참가 후 일본과 유럽에서도 판매 문의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이미 판매 파트너가 정해졌고, 일본은 몇몇 후보 업체와 협의하고 있는 중이죠. 내년 정도면 깜짝 놀랄 성과가 나올 겁니다.”

자신감 있고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어디에서 그런 배짱이 나오느냐고 물으니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경기도 여주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봉제공장 보조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미싱사가 됐다. 그러다 다시 봉제공장 플랜트 사업가가 되어 세계 곳곳을 누볐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했어요. 몇 번 분해하고 조립해 보면 원리가 쉽게 파악됐죠. 당시 봉제공장에는 일제, 독일제 기기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는데,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몇 안 됐습니다. 그 덕분에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를 많이 받았죠.”

코 마스크 ‘노스크’를 코에 착용한 모습.
무슨 재봉틀이든 속속들이 꿰고 있던 그는 다시 설비 분야로 눈을 돌려 봉제공장 플랜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1980년대 초 임금 부담 때문에 우리나라 봉제업체들이 너도나도 해외로 나가 공장을 짓기 시작할 때였다.

“1983년 회사를 설립한 후 중남미 일대를 누비고 다녔어요. 저임금에 무관세 지역이라는 이점 때문에 중남미에 공장을 짓는 업체들이 많았거든요. 이름만 대면 아는 의류 업체들이 저를 통해 중남미 지역에 진출했죠.”

영어는 물론 스페인어 한마디 못 했지만 부지런한 손과 발만 있어도 장애 될 게 없었다고 한다. 젊은 혈기에 자신감이 지나쳤던 것일까. 1990년대에는 큰 실패도 맛봤다. 미국이 베트남에 문을 여는 게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계산 아래 1989년 미국시장을 보고 베트남에 공장부터 지은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앞서갔던 것 같아요. 전 재산인 70억 원을 베트남 공장에 쏟아 부었으니…. 그게 4년여간 지연되면서 유지비 때문에 20억 원이 넘는 빚을 져야 했습니다.”

식구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애초에 빈손이었던 만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다짐했다. 1994년 10월 한 지인의 도움으로 국내에서 봉제공장 플랜트 사업을 새로 시작했고, 그의 실력과 근면성을 잘 아는 업체들이 일감을 준 덕분에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3년 후에는 과테말라에 봉제공장을 지었다.

“종업원이 1000명이 넘는 꽤 큰 규모의 공장이었어요. 티셔츠를 만들어 미국의 월마트와 짐보리에 납품했는데, 수익이 괜찮았어요. 그동안의 부채를 1년 만에 모두 갚았으니까요.


폐질환 앓다 뛰어난 기능과 편리성 갖춘 마스크 연구

그는 “‘인간사 세옹지마’란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며 한숨 쉬듯 미소를 지었다. 뭔가 일이 잘 풀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건강에 이상 신호가 왔다.

“어느 날 과로로 쓰러져 현지 병원으로 실려 갔는데, 폐암 진단과 함께 앞으로 두 달밖에 살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어요. 죽어도 한국에 가서 죽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귀국했습니다. 서울에 와서 다시 검사를 받아 보니 폐암이 아니라 폐기종이라고 하더라고요. 과테말라 의사가 오진했던 겁니다.”

한국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과테말라 공장은 엉망이 되었다. 또다시 빈털터리가 된 것이다. 2002년 12월 병원에 있으면서 그는 ‘봉제는 더 이상 아닌 것 같고, 이젠 어떤 분야에 도전할 것인가’ 고민했다고 한다.

“제가 배운 건 없지만 시대를 읽는 눈은 밝은 편입니다. 앞으로 뭘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웰빙 콘셉트이면서 지적소유권을 갖는 일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와 동시에 코 마스크를 떠올렸습니다. 폐 때문에 수술까지 했으니, 저 같은 사람에게는 각종 먼지나 바이러스를 차단해 주면서도 편리한 마스크가 절실했거든요.”

2007년 미국 피츠버그 국제발명전시회에서 아시아 최고 발명상을 수상한 정진구 대표.
그때부터 마스크에 대한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코 마스크는 세계적으로 600여 개의 특허가 출원되어 있고, 한국을 비롯해 미국ㆍ프랑스ㆍ일본 등지에서 시제품이 5~6가지 나와 있었다. 그런데 기능이나 실용성 면에서 콕 집어낼 만한 제품이 없었다. 대부분의 제품들이 코 입구를 막도록 돼 있어서 표준 사이즈가 없었고, 한두시간만 착용해도 필터에 보푸라기가 생겨 수명이 짧았다. 장시간 착용할 경우 콧구멍이 가렵기도 했다.

“이때부터 제 주치의였던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남순열 교수, 알러지내과 문희범 교수, 호흡기내과 김우성 교수의 연구실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며 자문을 구했어요. 제가 이러이러한 제품을 개발할 생각이니 좀 도와 달라고 사정했죠. 처음에는 귀찮아 하셨는데, 너무 열심히 하니까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더라고요.”

이들 전문가의 도움으로 코의 기능을 완벽하게 파악했기에 인체공학적으로 무해하면서 효과적인 코 마스크를 개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만든 코 마스크 ‘노스크’는 나쁜 공기를 걸러 주는 필터가 코의 입구가 아닌 비강을 막도록 고안돼 있다. 덕분에 콧방울의 크기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잘 맞는다. 또한 필터를 물에 행굴 수 있어 반복 사용이 가능하다.

“베이징 올림픽이 코앞으로 다가온 중국시장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중국은 금방 가짜 제품이 따라 나오기 때문에 홈쇼핑을 통해서만 판매할 예정입니다.”

50대 중반인 그는 이번 사업을 위해 다시 모험을 했다. 살고 있던 집과 노후 대책으로 마련했던 부동산까지 모두 처분해 사업자금을 충당하고 부인과 조그만 아파트에 세들어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물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일이 재미있으니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진 : 장성용
  • 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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