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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도 상품 기획이죠

미니 단호박 히트시킨 백인엽 ‘호박사랑 영농조합법인’ 대표

달콤하면서도 칼로리는 적고, 비타민과 섬유소 등 영양이 풍부해 다이어트 건강식으로 각광받는 단호박. 요즘 주먹만한 크기의 미니 단호박이 인기다. 단호박을 먹고는 싶지만 크기가 너무 커서 엄두를 못 내던 소비자들이 미니 단호박의 출현을 반기고 있는 것. 전자레인지에서 5~7분만 익히면 껍질째 바로 먹을 수 있는데다, 보통 단호박보다 당도가 높고 포근포근 씹히는 질감이 좋은 게 인기 비결이다.

미니 단호박 열풍의 중심에 이 남자가 있다. ‘호박사랑 영농조합법인’의 백인엽 대표(43세). 그를 만나러 전남 함평, ‘호박사랑 영농조합’으로 내려갔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쾌청한 여름날, 마침 함평 호박의 출하 시기였다. 트럭에 호박을 잔뜩 싣고 오는 농부들의 표정이 환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호박사랑’ 조합원 175가구 중 60%가 연 수익이 1억 원 안팎이라고 한다.

미니 단호박은 원래 일본에서 ‘보우짱’이라는 이름으로 재배되던 것으로, 이 종자를 들여와 한국에 전파한 사람이 백인엽 대표다. ‘호박사랑’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본산지인 일본으로 역수출하고 있다. 그가 호박과 인연을 맺은 것은 광주 신세계 백화점에서 바이어로 일하다 퇴직한 후였다. 도시생활과 일에 지친 그의 눈에 농촌 관련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들어왔다. 농부들이 땀 흘려 일한 후 밥을 먹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그렇게 개운하고 좋아 보일 수가 없었고,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무슨 농사를 지을까’, 부가가치 높은 농산물을 찾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호박이었다.

무작정 배낭여행을 떠났다 찾은 ‘캘리포니아 호박 페스티벌’. ‘세상에 이렇게 많은 종류의 호박이 있었단 말인가’ 감탄할 정도로 갖가지 색깔과 모양, 크기의 호박들이 나와 있었다. 그중 아홉 종류의 씨앗을 몰래 들여와 심어 봤지만 재배에는 실패했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만난 것이 미니 단호박 ‘보우짱’이었다.

“일본에서 인기가 높았는데, 먹어 보니 정말 맛있더라고요. 다른 단호박에 비해 당도가 2배나 높은데다 포근포근한 질감이 밤 같기도 하고, 밤고구마 같기도 했어요.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되겠다는 감이 왔습니다. 종자회사에 가서 수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재배 농가도 찾아갔지요.”

1990년대 중반, 그가 백화점에서 식품 바이어로 일할 때 쌈채소가 막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건강에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미니 단호박은 건강식인데다 ‘미니’를 찾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맞아떨어져 상품성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디에서 호박 농사를 짓는 게 좋을지’ 농업기술원의 자문을 받아 정착한 곳이 전남 함평. 그러나 미니 단호박이 우리나라에 뿌리내리는 데는 2~3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일본 종묘사는 종자 하나에 호박이 24개 열린다고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8개 정도밖에 안 열렸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토양이 달랐기 때문이다. 어릴 적 농사일을 도운 적은 있지만, 제대로 된 농사꾼이 되려면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서 농사 교육이 있다 하면 무조건 달려갔다. 벼농사, 콩 농사에 원예재배까지 따라다니며 배웠다. 참외ㆍ수박ㆍ멜론, 참외 재배법도 섭렵했다. 그리고 같은 종자를 갖가지 방법으로 재배하며 실험을 계속했다. 그 결과 멜론 재배법을 응용한 새로운 재배 방법을 찾아냈다.

재배에는 성공했지만 시장 개척이 문제였다. 미니 단호박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저 단호박이 덜 자란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첫해 4000평을 빌려 호박 농사를 지었는데, 판로가 없어 거의 썩어 버렸다. 그러나 다음해 그는 2배가 넘는 9000평으로 농사 규모를 늘렸다. ‘일단 맛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전국의 백화점을 다니며 시식행사를 열었다. 백화점만 집중 공략하며 ‘고급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이었는데, 그 전략은 적중했다. 한번 맛본 사람이 자꾸 찾으면서 시장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해인 2000년에는 2만 평, 2001년에는 4만 평에 농사를 지었다.

그의 성공을 지켜보던 농부들이 “나도 한번 해보자”고 나섰다. 그는 전국단위 영농조합을 만드는 데 착수했다. 한 지역에서만 농사를 지으면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가격이 떨어지게 마련. 전국단위로 영농조합을 만들면 출하시기를 조절해 꾸준히 물량을 공급하면서 안정된 가격에 팔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호박사랑’의 조합원은 제주도에서 강원도까지 걸쳐 있다. 제주도는 5월, 함평ㆍ해남ㆍ무안ㆍ영암 등 전남은 7~8월, 전북과 충청도는 9월, 평창ㆍ영월ㆍ정선 등 강원도는 10~12월에 출하된다.


종자 들여온 일본에 역수출하면서 농민 교육

미니 단호박이 시장에서 각광을 받으면서 생산 농가가 많아졌지만,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하는 ‘호박사랑’의 미니 단호박은 최고의 가격을 받고 있다. 그 비결에 대해 “품질관리를 철저히 하고, 조합원들 사이에 경쟁 시스템을 도입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조합원들이 가져온 호박은 엄격한 품질 검사를 거치는데, 기준에 못 미치면 아예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는 게 원칙. 좋은 호박을 가져온 조합원에게는 가격을 더 쳐서 준다. 조합원은 1년에 네 차례 교육을 이수하고, 두 차례 현장지도를 받아야 하는 등 규율도 엄격하다. 영농조합을 거치지 않고 따로 호박을 팔았을 때는 제명. 최선을 다해 농사를 짓지 않으면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없게끔 만들어 놓았다.

‘호박사랑’의 단호박은 호박 썩은 물인 환원수를 이용해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해 더욱 인기다. 1000평 정도 밭에 농사를 지으며 ‘더 나은 농법이 없을까?’ 연구 끝에 찾아낸 방법. 호박의 본산지인 일본 홋카이도에서도 농민들에게 농사 교육을 시켜 달라며 그를 초청하고 있다.

함평 본사 앞에서 직원들과.
백인엽 대표는 전남 해남 땅끝마을 출신. 9남매 중 차남이었던 그는 어릴 때부터 무엇을 하든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고 초등학교 때부터 경운기를 몰았고, 중학교 때는 아버지가 운전하던 화물차를 몰고 다녔다. 차에 흥미를 느끼면 운전부터 정비까지 죄다 익혀야 직성이 풀렸다. 처음엔 몰래 차를 끌고 나왔지만 얼마 안 가 아버지보다 운전을 더 잘하게 됐다. 아버지는 중학생인 그에게 차 열쇠를 맡기고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그때 시골에서는 무면허 운전이 문제가 안 됐어요. 키가 작아 운전석에 앉은 제 모습이 안 보이니 사람들이 ‘차 혼자 굴러온다’고 했지요.”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트럭 몇 대를 할부로 사서 화물을 운송하는 운수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에게 의뢰하는 유통업자들이 산지에서 사들이는 가격과 도시에 파는 가격 사이의 차이가 컸다. 직접 물건을 사들였다 파는 유통까지 했다. 그 후 산지 사정을 잘 안다는 이유로 백화점의 수산물 담당 바이어로 스카우트됐다. 그는 바이어 시절 파래 김을 히트시킨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까맣고 반짝반짝 윤이 나는 김을 만들려면 염산처리를 해야 하는 데, 파래가 섞인 김은 염산처리가 필요 없는 무공해 식품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백화점의 막강한 힘 앞에 생산자는 주눅 들게 마련. 바이어에서 생산자로 변신한 그는 “우리가 이만큼 품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니 제값을 받아야 한다”며 백화점 바이어들과 싸운 적도 많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미니 단호박을 생산하면서 공급 물량이 늘어난 요즘, 그는 수출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그전까지는 국내 물량 대기도 어려워 수출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그는 농산물의 무역 개방도 두렵지 않다고 한다. “준비된 자에게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진 : 김선아
  • 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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