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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악 들으면 반합니다

김영일 악당이반 대표

김영일 씨의 명함은 두 개다. 하나는 영상제작회사인 그루비주얼주식회사의 이사,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국악전문 음반회사인 ‘악당이반주식회사’의 대표다. 앞의 직책이 돈 버는 일이라면, 뒤의 자리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무작정 투자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는 뒤의 일을 할 때 더 신이 난다. 우리나라에서 그 혼자만이 감당해 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악당이반’. 이곳은 돈 안 되는 일만 한다. 다른 음반회사에서는 기피하는 국악 음반만 내면서, 그것도 아무 기계적 조작 없이 순수 연주 그대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녹음하는 퓨어 레코딩(순수 녹음) 방식을 고집한다. 연주하다 틀리면 그 부분부터 다시 연주해 편집하고, 기계 조작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녹음 방식을 그는 거부한다. 이 때문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도 선뜻 음반 내겠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자신을 고스란히 내보일 용기가 없다면 덤벼들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악당이반’은 대신 전국 곳곳에 숨어 있는 고수(高手)들을 찾아내 음반을 내왔다. 소리를 최대한 원음 그대로 재생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서울 가회동 ‘악당이반’의 사무실에서 김영일 대표를 만났다. 사무실 맞은편에 창덕궁 연경당을 모델로 만든 국악전용 녹음공간 ‘소리 스튜디오’가 있었다. 한옥 바닥에 앉아서 연주하면 소리가 서까래에 부딪혀 내려오는 것을 감안해 전통 서까래를 본뜬 음향패널을 설치한 스튜디오다. 녹음실 대부분이 서양음악 기준으로 만들어져 우리 음악 녹음에는 적당하지 않기에 특별히 설계를 의뢰해서 만들었다. 사무실 뒤편에는 판소리 교육과 공연이 이루어지는 한옥 ‘소리재’가 삼각산 자락 끝에 붙어 지어져 있다. 평소에는 판소리 <흥보가> 기능보유자인 인간문화재 박송희 명창이 후학을 가르치면서 연습도 하는 장소라고 한다. 잘나가는 사진작가이던 그가 어쩌다 국악에 미쳐 사재를 털어 넣어 가며 이 일을 하고 있을까?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은 딱 한순간이었다.

“1996년 <이매진>이라는 잡지에서 젊은 연주자를 한 명씩 스포트라이트할 때였어요. 채수정이란 젊은 소리꾼을 만나 ‘당신은 소리하는 사람이니 소리하시요. 나는 사진사니까 사진을 박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촬영 준비를 할 때였어요.”

그는 소리하는 모습을 담으려 파인더 안을 들여다보고, 채씨는 목을 풀기 위해 단가 <편시춘(片時春)>을 불렀다. “아서라 세상사 허망허다” 하며 스튜디오를 짱짱 울리는 소리에 압도된 그는 셔터를 누를 수가 없었다. 대통령 앞이든 재벌 총수 앞이든 이런 적은 없었다. 그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채수정 씨와 네댓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소리가 있다’는 게 그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때까지 그는 서양의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다. 특히 어둡고 웅장한 바그너 음악을 좋아해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열리는 바그너 음악제에도 네 번씩이나 다녀왔었다. 클래식 FM을 듣다 국악이 나오면 습관적으로 채널을 돌리거나 꺼버리던 그였다. 그런데 직접 들은 우리 소리는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힘으로 그를 사로잡았다. 이후 그는 시간 날 때마다 채수정 씨를 따라 진도, 남원, 해남 등지와 지리산 일원을 다니며 고수(鼓手)와 소리꾼을 만났다.

“득음을 위해 4~5년씩 산속에 틀어박혀 독공(獨功)하는 소리꾼들이 지리산 밑 구례여관이나 해남 유선여관에 내려올 때가 있어요. 밥상을 물리고 소리를 하는데 어찌나 장하던지. 북쟁이는 소리꾼을 넘으려 하고, 소리꾼은 이에 맞서 소리로 제압하려 하면서 엄청난 기싸움이 벌어집니다. 남창 여창 사이에도 기싸움을 벌이고요.”

가야금이나 거문고 산조를 듣고는 ‘이런 음악이 있는가’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리가 띵해졌다. 그는 산조에 대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음악”이라고 강조한다.

“한 작곡가가 평생 한 곡을 남기는 게 산조입니다. 스승에 대한 최대 예우가 스승의 곡을 부순 후 한 올 한 올 베를 짜듯 다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 사람 인생이 그대로 담겨요. 신산한 삶을 살았던 사람은 진양조와 계면조의 슬픈 음악을 만들고, 밝고 평탄한 삶을 산 사람은 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의 밝고 맑고 빠르고 가락 변화가 많은 곡을 만들죠.”


우리 소리는 한옥에서 들어야 제 맛

우리 음악에 맞게 특수 설계한 ‘소리’ 스튜디오.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특유의 ‘기록 본능’이 꿈틀거렸다. 그때까지 그에게 있어서 기록의 대상은 ‘영상’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그의 손에는 롤라이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뭔가를 담아 두기 위해 똑딱똑딱 셔터를 누르던 그는 1980년 중앙대학교 사진과에 들어갔다. 대학 4학년 때 미국 유학을 떠났다 1987년 귀국한 그는 여러 잡지의 창간에 사진 책임자로 참여했고, 광고 사진도 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런데 우리 소리를 만난 후에는 ‘소리 채집자’로 중심 이동을 했다.

“어릴 때는 봄 숲 같던 소리꾼의 소리가 수련을 거듭하며 기세를 늘리면 눅진눅진 깊어지면서 여름 숲처럼 됩니다. 왜 여름 숲에 들어가면 울울창창함에 주눅이 들고 무섭기까지 하잖아요?”

그는 “소리꾼이 세월을 거치며 어떻게 성숙해 가는지, 산에서 독공을 한 후에는 소리가 어떻게 변하고, 환갑이 넘어서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개개인의 소리 역사를 구축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고성능의 스위스제 이동식 녹음기 ‘나그라’와 노이만 M149 튜브 마이크를 장만해 현장으로 향했다. 리코딩 엔지니어링부터 음향까지 독학으로 익힌 다음이었다. 숨은 고수(高手)들을 찾아 현장 녹음한 마스터 테이프가 300여 장 쌓였다. 이 테이프를 들고 음반 회사들을 찾아 다녔지만, 선뜻 음반을 내겠다고 관심을 보이는 곳이 별로 없었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낸다 해도 구색 맞추기 정도였다. 그는 “그렇다면 내가 음반회사를 차리겠다”고 나섰다. 가시밭길일 게 뻔했다. 주변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앞으로 할 일을 설명했더니 ‘말린다고 네가 안 할 사람이냐’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2005년 출범한 ‘악당이반’은 판소리 완창과 산조 음반을 계속 내고 있다. 음반을 낼 때 그는 연주자의 모습을 촬영한 후 한 장씩 사진으로 뽑아 음반 앞에 붙이면서 정성을 다한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우리 음악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원음 그대로 들려줘 향유하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악당이반’이 만들어 온 음반들.
“일단 들어본 다음 ‘아무것도 아니다’하며 멀리할 수는 있지요. 그런데 우리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대중과 멀어져 우리 음악을 함께 향유할 기회가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일단 들어야 반하게 된다는 게 그의 생각. 독일의 현대무용가인 피나바우시도 한국에 올 때마다 소리꾼들과 어울려 징하게 한 판 놀다 간다고 한다. 그는 우리 음악을 공연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가 한옥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악기가 크기나 음량 모두 그곳에서 연주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전국 곳곳의 한옥을 돌며 녹음을 해온 그는 재단법인 ‘아름지기’와 함께 지난 5월부터 오는 10월까지 ‘한옥에서 산조 듣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북촌 한옥마을에 자리 잡은 무무헌, 소리재, 한상수 자수박물관, 은덕문화원 등에서 아쟁과 해금, 피리, 거문고, 가야금, 대금과 21현 가야금산조를 듣는 프로그램. 한옥 규모에 따라 관객은 20명에서 50명까지로 제한된다. 오는 9월 8일 오후 4시는 은덕문화원에서 허윤정 씨의 거문고산조, 9월 15일 오후 4시에는 무무헌에서 박현숙 씨의 가야금산조 연주회가 열린다.

사진 : 이규열
  • 2007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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