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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에 바치는 오마주로 시작된 피겨 아트

피겨 아티스트 김형언

아직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동호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는 피겨(figure). 피겨란 영화, 만화, 게임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축소해 만든 인형으로 그중에서도 각 관절이 움직이는 구체관절 형태를 ‘액션 피겨’라고 부른다. 이들이 장난감과 구별되는 것은 실물과 흡사한, 사실적이고 정교한 묘사에 있다. 대량생산이 아니기 때문에 소장가치가 높고, 전문작가의 영역이라는 것도 차이점이다.

한동안 완구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피겨를 이처럼 예술품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사람이 피겨작가 김형언 씨(43세)다. 동호인들 사이에서 ‘최고’라는 찬사를 듣는 그는 특히 이소룡 피겨에 관한 한 독보적인 존재다. 지난 4~5월에는 자신이 만든 이소룡 피겨 3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아 국내 최초로 피겨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가 피겨 세계에 빠져 든 것은 2001년이었다. 당시 백수였던 그는 어릴 때 가지고 놀던 군인인형 ‘지아이조’에 대한 추억을 더듬으며 인터넷을 뒤졌다. 요즘도 그런 게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정말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이소룡도 있는지 찾아봤어요. 외국에서 만든 피겨를 찾긴 했는데, 생긴 게 너무 다른 거예요. 화가 날 정도로요. 고등학교 때부터 이소룡은 제 우상이었는데 그런 인물을 그렇게 조잡하게 만들었다는 걸 참을 수가 없었어요. 내가 하면 이것보다는 훨씬 잘 만들 수 있겠다 싶어 그 피겨를 구입해 아예 머리 부분을 새로 만들었죠. 자료도 찾아보고, 연구도 하면서 독학을 했어요.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했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죠.”

그렇게 공들여 만든 첫 작품을 그는 자신의 블로그와 피겨 사이트에 올렸다. 그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정말 똑같다”는 감탄의 댓글과 함께 “꼭 구입하고 싶으니 제발 팔라”는 부탁이 줄을 이었다. 단숨에 그는 인기 작가로 떠올랐고, 초창기에는 공동구매 형태로 몇 번 작품을 판매한 적도 있다.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한 달 남짓. 구체관절 몸체를 제외한 얼굴, 의상, 액세서리, 손 등은 모두 그가 직접 만들고 페인팅한다. 학창 시절, 회화와 공예에 두루 재능을 보였던 그의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 얼굴과 몸의 전체적인 균형은 물론 작은 흉터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고, 영화의 배경까지도 그대로 살려 낸다. 무엇보다 살아 있는 듯한 생생한 눈빛은 ‘김형언표 피겨’의 전매특허. 그의 작품에 ‘이소룡의 부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가장 먼저 눈을 보잖아요. 피겨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눈빛을 표현하는 데 신경을 제일 많이 써요. 수정체 하나까지도 정확하게 그려 내기 위해 노력하죠. 피겨는 실물과 최대한 닮게 만드는 것이 관건인데, 그게 바로 눈에서 판가름 나거든요.”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인물에 대한 애정 역시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 이소룡에 대한 그의 열정은 고스란히 작품의 완성도로 이어졌고, 그의 이름은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 이소룡의 팬들에게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미국 최대의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콘텐츠 박람회인 ‘코믹콘’에 초청돼 작품을 선보였다. 이 자리에서 그의 작품을 눈여겨 본 이소룡의 유가족들로부터 “지금까지 본 피겨 중 가장 닮았다”며 초상권을 넘겨받는 뜻밖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소룡의 피겨와 함께 전시한 톰 행크스의 모습도 큰 관심을 끌었다. <포레스트 검프> <라이언 일병 구하기> <터미널> 등 각 영화의 배경과 함께 영화 속 모습 그대로 제작된 일명 ‘톰 아저씨’ 역시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쇼생크 탈출>을 만든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마침 전시회에 왔다가 그걸 보고는 깜짝 놀라더라고요. 톰 아저씨 피겨를 꺼내 들고 기념촬영까지 했어요. 제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도 정말 즐거운 추억이 많은 자리였죠. 이름만 듣던 유명한 배우, 감독들을 한꺼번에 다 만났거든요.”

그 유명세에 힘입어 그의 피겨는 사업으로 확대되었다. 2005년, 홍콩의 한 유명 피겨업체가 대량생산을 제안하면서 정식 계약을 체결한 것. 첫 한정판으로 제작한 3500개는 일본에서만 2000개가 넘게 팔렸다. 개당 가격은 250~300달러. 반응이 좋아 지금은 두 번째 한정판을 준비 중이다.



홍대 미대 졸업 후 CF 감독, 가수로도 활동

이처럼 피겨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지만 원래 그의 직업은 뮤지션이다. 현재 ‘싱글즈’라는 5인조 밴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전시회 마지막 날에는 첫 콘서트 2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갤러리에서 갖기도 한 ‘관록 있는’ 음악인이다.

음악인이 되기 전에는 광고인으로 살았다. 홍대 금속공예과를 졸업한 후 광고회사에 입사, 최연소 CF감독으로 광고계에 입문한 것. 하지만 자신의 꿈을 펼치기엔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던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대학 시절 내내 빠져 살았던 음악인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1998년에는 ‘Always’라는 듀엣을 결성, 두 장의 앨범을 내 소위 ‘반짝 인기’라는 것을 얻은 적도 있다.

“노래가 뜨면서 방송 출연도 몇 번 했지만 얼마 못 갔어요. 매니지먼트와 마케팅, 뮤지션의 자질 부족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추며 대중들의 뇌리에서 사라진 거죠.(웃음) 그때부터 백수로 아주 가난하게 살다가 피겨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어요. 따지고 보면 제 자리로 돌아온 거죠. 아주 먼 길을 돌아서.”


“가수 활동을 하면서 마음고생을 참 많이 했지만 음악은 정말 해보고 싶었던 분야라 후회는 없다”는 그는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봤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피겨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분야입니다. 제가 이번에 전시회를 한 것도 대중적인 관심을 끌고 싶어서였어요. 피겨 아트의 동호인구를 확대하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었죠.”

처음에는 단순한 취미였지만 이제는 피겨 작가가 본업이 되었으니 피겨를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 같다는 김형언 씨. 앞으로는 <로마의 휴일>의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제니퍼 코넬리, <원더우먼>의 린다 카터, <슈퍼맨>의 크리스토퍼 리브, <미스터 빈>의 로완 앳킨슨 등으로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로마의 휴일> <애수> 등 고전 영화의 명장면을 담은 흑백 피겨도 구상 중이다. 이처럼 당분간은 음악 활동보다 피겨 쪽에 더 집중할 계획이라고 하니, 피겨 아트라는 새로운 문화가 그의 손에서 활짝 꽃피는 날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사진 : 이창주
촬영협조 : 벨벳갤러리
  • 2007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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