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 재학 중인 성민수 프로레슬링 해설가

“삶이 프로레슬링 같다면 얼마나 흥미진진할까요?”

평범한 사람은 한 가지도 하기 어려운 일을 동시에 몇 가지나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낮에는 한의대생으로 학업에 열중하고, 밤이면 프로레슬링 해설가로 변신하는 성민수 씨. 경원대 한의학과 본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국내에 몇 안 되는 미국 프로레슬링 전문가다.

짐작대로 그의 일과는 빈틈을 찾기 어렵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꼬박 학교 수업에 매달리고, 저녁이면 부지런히 방송국으로 걸음을 옮긴다. 일주일에 이틀은 녹화로, 사흘은 레슬링 관련 책을 번역하는 작업으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이 주중 생활. 전혀 연관성이 없는 두 가지 일을 함께하게 된 이유를 묻자 그는 “둘 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었다”며 웃는다.

“프로레슬링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좋아했어요. AFKN에서 방송된 경기 장면을 한 번 보고 완전히 빠져들었죠. 규칙도 단순하고, 한 편의 액션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재미가 있잖아요. 좀 더 크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자료를 얻기도 했고, 현지에서 발행되는 프로레슬링 잡지도 정기 구독하며 꼼꼼히 읽었습니다. 선수들의 자서전도 열심히 읽었고요. 경기 장면을 담은 DVD도 꽤 많이 가지고 있어요. 오랜 시간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설 쪽으로 연결됐는데, 워낙 좋아하는 일이라 피곤한 줄도 몰라요.”

오랜 시간 수집해 온 방대한 자료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깊이 있는 해설은 그의 가장 큰 장점. 마니아들이 그를 국내 최고의 프로레슬링 해설가로 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경기 중간 그가 양념처럼 들려주는 선수들의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는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경기에 더욱 몰두할 수 있게 만드는 그의 전매특허다.

그는 “프로레슬링은 작가들이 미리 대본을 만들고 그에 맞게 모든 상황을 구성한 경기이기 때문에 스포츠라기보다 엔터테인먼트에 가깝다”며, “다른 스포츠 해설가와는 달리 경기 전반에 관한 설명은 물론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좀 더 경기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게 프로레슬링 해설자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고, 1년에 한두 차례씩은 미국에 가서 직접 경기를 보고 와요. 더 재미있게, 많은 정보를 전달해 주려면 계속 노력해야죠.”

이처럼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그는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프로레슬링 관련 책도 여러 권 번역했다. 지금도 경기의 대본을 직접 번역하고, 미국 선수들이 경기를 위해 우리나라를 찾을 때는 진행은 물론 선수들의 인터뷰도 도맡는다.

이쯤 되니, 프로레슬링 해설이라는 흔치 않은 직업을 선택한 것도 흥미롭지만 서른 살에 늦깎이로 한의학과 신입생이 된 과정도 궁금해졌다. “대학을 세 군데나 거쳤다”는 그는 “의사가 되기까지 아주 먼 길을 돌아왔다”며 웃었다.

“처음에는 의대를 가라는 부모님의 권유를 뿌리치고 연세대 건축학과에 입학했어요. 하지만 ‘멋있어 보였던’ 건축학과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 졸업과 함께 삼성 SDS에 입사해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죠. 물론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지만요.”

그가 졸업하던 2000년 당시 삼성 SDS는 IT붐을 타고 대학생들의 입사 선호도 1위를 차지하던 기업. 동기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지만 직장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IT 쪽으로 아는 게 별로 없어서인지 제 자신이 참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여기서 오래 있어 봐야 결국 큰 발전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었죠. 아침에 통근 버스를 탈 때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어요. 도저히 이런 상태로는 버틸 수 없겠다 싶어서 사직서를 냈어요.”

그렇게 2년 1개월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백수(?)가 된 그는 좀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계획했다. 그사이 한 방송사에서 프로레슬링 프로그램을 편성하면서 온라인상에서 이미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그에게 해설을 맡겼다. 그가 본격적으로 프로레슬링 해설가로 나선 계기다.

우연히 시기가 맞아떨어졌기에 프로레슬링 해설하려고 회사 그만두었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그는 절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프로레슬링 해설은 해설대로 하면서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편입시험과 수능시험을 준비했다고.

영어 실력이 출중한 그는 외국 선수 인터뷰도 도맡아 하고 있다.
독하게 마음먹고 공부한 끝에 2002년 말 동국대 의대 편입시험에 합격했지만 경주에 있는 캠퍼스까지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아 곧바로 휴학계를 냈다. 이후 독학으로 수능시험을 준비했고, 이번에는 단국대 치과대학과 경원대 한의학과 두 곳에서 동시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2년 전 결혼해 18개월 된 아들을 두고 있는 그는 집과 가까운 쪽을 택했고, 이로써 그는 연세대 건축학과, 동국대 의대, 경원대 한의학과 등 세 학교의 학번을 나란히 얻는 이색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수능시험 보기 전에 점을 한 번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제가 항상 보따리 두 개를 들고 다닐 팔자래요. 앞으로 프로레슬링 해설가와 한의사를 계속 병행할 계획이니까 그 점괘가 정말 딱 맞는 것 같아요.”

한의사가 되면 프로레슬링이나 격투기로 부상을 입은 선수들을 치료해 주고 싶다며 환하게 웃는 성민수 씨. 그의 얼굴에 넘치는 미소, 그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행복감이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일과 취미의 경계가 불분명한 사람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사진 : 이창재
  • 200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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