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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악기 해금으로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음악 만들 거예요

신세대 해금 연주자 꽃별

처음 만남은 낯설었다.
이상하게만 보였다.
그래도 왠지
사귀어야만 할 것 같았다.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그는 계속 절망만 안겨 줬다.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
승복할 수 없어.
내가 싫어지면 그때 떠나마.
그리고 어느 날,
그와 하나가 되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나를 자꾸
웃게 한다.
신세대 해금 연주자 꽃별. 전통악기 해금으로 클래식, 재즈, 뉴에이지, 민요를 넘나들며 연주하는 그를 먼저 알아본 것은 일본이었다. 2003년 일본의 한 음반 기획-제작사에 발탁돼 한일 동시 데뷔앨범을 낸 그는, 그 후 양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3집 앨범까지 앨범을 낼 때마다 국악 차트 1위를 기록 중. 그의 연주는 광고음악으로도 인기다. 코리아나 화장품 ‘자인’, 청정원의 기업 광고,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담 공식 광고로 쓰였다.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성황리에 콘서트를 마친 얼마 후, 그를 만났다. 봄빛과 딱 어울리는 20대 청춘의 밝은 기운이 번져 나왔다. 그는 해금과의 만남이 마냥 행복하다고 했다. 해금이 자신의 감정을 다 받아 주고, 또 밝게 만들어 준다고.

그가 처음 해금을 손에 잡은 것은 국악중학교 2학년 때. 깽깽 소리를 낸다고 속칭 ‘깡깡이’, ‘깡깽이’로 불리는 해금. 해금 연습실에서 선배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뭐, 저런 게 있나’ 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저걸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걸 그는 “해금이 나를 불렀다”고 설명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피아노와 플루트, 하모니카, 리코더 등 악기를 두루 익혔고, 성악을 하고 싶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국악 공연을 본 후로는 그걸 해보고 싶었다. 한국인으로서 음악을 하려는 사람이 국악을 모르면 안 될 것 같았다. 국악기를 활용해 한국적인 음악을 모색하던 큰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 그의 큰아버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낸 작곡가 이건용 씨. 그리고 국악학교에 진학했다.

해금을 강력 추천한 것은 아버지였다. “체격이 작은 네게 어울리는 악기”라고 했다. 음역이 넓어 어느 악기와 함께 연주해도 잘 어우러진다며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기에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일정한 음 자리 없이 줄을 잡은 손의 위치와 줄을 당기는 강약에 의해 음높이가 조절되는 해금. 여음을 남기는 다른 악기와 달리 해금은 활을 긋고 있을 때에만 소리를 낸다. 해금과 연주자가 혼연일체, 하나로 어우러지지 않으면 연주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슬픈 선율을 연주하면 내면의 상처들이 쏟아져 나오고, 귀엽고 발랄한 음악을 연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감정을 모두 싣게 된다”고 한다.

한일 동시 발매된 꽃별의 앨범들.
그런 그도 처음부터 해금과 이런 밀월관계였던 것은 아니다. 국악학교에서도 해금은 비인기 악기였다. 시작할 때는 “해금반에서 1등을 하겠다”는 심정으로 달려들었다. 잘해 보이고 싶었다. 누구보다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첫해 서울대 국악과에 응시했다 떨어졌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되는가?’ 화가 나고, 해금도 싫고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끙끙 앓았다. 그러나 ‘졌다’고 승복할 수는 없었다. “그래. 최고가 된 다음, 네가 싫어지면 그때 버릴 거야” 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일 동시에 앨범 발표하면서 인기 얻어

그때부터였다. 해금과 갖가지 감정을 나누기 시작한 게.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어색하고, 혼자 지내게 된 그는 화가 날 때도 슬플 때도 모든 감정을 해금에 실었다. 재수 끝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고, 2학년 때 소리꾼인 김용우 밴드와 함께 일본 공연에 나섰다.

“김용우 밴드와 연주한 적이 있는 은사 강은일 선생님의 공연 녹화 테이프를 돌려 보면서 연습을 되풀이했습니다. 열심히 연습해 갔는데, 김용우 선생님이 ‘너 강은일처럼 하면 안 돼’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제 어떻게 하지?’ 앞이 캄캄했지요.”

그 덕에 자신의 색깔을 찾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무대에서 흥에 겨워 일어서서 연주하기도 했다. 그런 그를 일본의 음반 기획자가 알아봤다. 당시 일본에서는 중국의 현악기 얼후가 인기였는데, 가슴을 뒤흔드는 해금 소리가 “얼후보다 기가 막히다”며 그에게 녹음을 제의했다. 이후 그는 일본의 재즈 밴드 O2T(오투티),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 등과 협연하면서 앨범을 발표했다. 피아노, 기타, 퍼커션, 베이스, 오보에 등 어떤 악기와도 친구가 되면서 결코 그 소리에 파묻히지 않는 해금의 특성을 살려 음악을 만들고 있는 것. 민요 등 우리 전통 선율과 재즈, 뉴에이지, 클래식을 넘나드는 그의 음악은 가슴을 후벼 파듯 애절한가 하면, 그의 젊음처럼 경쾌하고 발랄하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 청중들은 이상하게도 ‘한오백년’같이 한국적 정서가 짙은 음악에 더 호응하더라고 한다.

꽃별이란 이름답게 그의 연주곡 제목에는 유독 꽃이나 별이 자주 등장한다. 1집〈small flowers〉의 주제는 꽃, 2집〈star garden〉의 주제는 별이다. 꽃별은 예명이 아닌, 그의 본명. 그가 태어날 즈음, 아버지는 중동의 사막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사막에 꽃과 별이 가득한 꿈을 꾸었다며 딸에게 ‘이꽃별’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젊은 음악가는 3집 앨범을 만들 때 작곡은 물론 선곡, 편곡, 믹싱, 프로듀싱 등 앨범 제작 전 영역에 관여했다. 깔깔하고, 거칠고, 울퉁불퉁하면서 삼베 같고 흙 같은 해금의 느낌이 좋다는 꽃별. 그는 욕심이 많다. 벌써부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오래 살아야 할 것 같다”고 할 정도니. 얼마 전 인도 북부를 45일간 여행했다는 그는 “전 세계의 민족음악과 교류하면서 해금의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한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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