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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갓집 돌며 요리법 연구해 양반음식 전문점 냈죠

한영용 ‘천년기둥 큰기와집’ 대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간장게장. 최고의 간장게장으로 이름난 요리사가 있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정독도서관 옆에 자리한‘천년기둥 큰기와집’의 한영용 대표. 간판에‘청주한씨 삼백년 간장게장이 대물림되는 곳’이라고 쓰여있다. 상 위에 올라온 알이 통통하게 밴 암 꽃게가 유난히 먹음직스럽다. 한입 가득 베어 무니 소문대로 그 맛이 일품이다. 짜지도 비릿하지도 않으면서 개운하니 입 안이 다 시원해진다.

“특별히 매운 홍고추를 넣어요.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이 살균 작용도 하면서 특유의 톡 쏘는 맛을 내는 겁니다.”

한복을 멋스럽게 차려입은 주인 한영용(40세) 씨가 설명을 덧붙인다. 게장 맛의 중요한 요소인 간장. 한 씨는 “숙성 간장에 산초, 진피, 대추, 황기, 동충하초 등 약재를 넣어 달인다”며 “간장과 게는 둘 다 냉한 기운을 갖고 있어 독을 풀어주는 산초와 몸을 데워주는 진피를 넣는 것”이라 설명한다.

“간장은 적어도 7년 이상 숙성을 시켜야 불순물이 빠지면서 나쁜 짠맛이 없어집니다. 간장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게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알이 통통하게 밴 5월 암 꽃게에요. 200~300m 심해에서 잡힌 것이 좋은데, 게딱지가 얇아져 몸통이 선홍색으로 보이면 알이 찼다는 증거죠. 참게는 얄팍해 입에 남는 게 없고 수면 가까이에서 자란 것은 살이 차지지가 않아요. 게는 죽기 전에 칼을 대면 맛이 떨어지니까 반드시 산 채로 간장 항아리에 넣어야 해요.”

비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하루 뒤 게를 건져낸 간장에 마른 고추, 생강, 마늘, 청각, 다시마, 구기자, 대추, 멸치 등을 넣고 4시간 정도 끓여 식힌 뒤 게가 담긴 그릇에 다시 붓는다. 마지막으로 1주일간의 숙성을 거치면 청주 한씨 300년 전통 일품 간장게장이 완성된다.

한 씨는 올해로 20년 경력의 한식 요리 전문가다. 열아홉 살에 음식의 세계에 발을 들인 후 포장마차에서 일류 호텔 조리사까지 두루 거치고, 전국 팔도 음식 명인들을 두루 만나러 다니며 비법을 흡수했다. 된장, 간장, 고추장 등 장 담그기와 장아찌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어머니. 전라북도 함열 지방의 남궁씨 종녀로 태어난 어머니는 손끝이 여물어 바느질이건 요리건 솜씨가 남달랐다. 어머니는 6·25 때 내려온 평양 권번의 전속 요리사에게 요리법을 전수받기도 했다고 한다.

“6남매 중의 막내인 제가 유난히 어머니와 손발이 잘 맞아 요리하실 때 곁에서 거들곤 했어요. 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가 식당을 차려 생계를 꾸리셨지요. 그런데 제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위암으로 쓰러지셨죠. 객지에 나가 있는 형, 누나들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셔서 저 혼자 그 고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어린 저로서는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한의대에 다니던 그는 어머니 만류를 뿌리치고 휴학한 후 어머니 대신 식당을 꾸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손맛에 익숙한 손님들은 하나 둘 떨어져 나갔고 결국 두 달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식당을 팔아 어머니 병원비에 보태고 나니 살길이 막막했지만 막다른 골목에서 특유의 오기가 발동했다. 그는 경기도 안양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누가 망해서 버린 포장마차를 고쳐서 시작했죠. 무거운 포장마차에 간장 통과 물통까지 얹으니 아무리 밀어도 나가지 않더군요.”(웃음)

경찰의 노점상 단속을 피하느라 진땀을 빼고, 지나가는 대학생들을 볼 때마다 남몰래 속도 많이 태웠다. 그래도 수입은 꽤 쏠쏠했다. 3년 동안 3억 가까운 돈이 들어왔다. 당시로서는 집 두 채를 사고도 남는 돈이었다. 그는 그 돈으로 향토 음식을 찾아 전국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마을에 들어가 “이 동네에서 제일 음식 잘하는 사람이 누구예요?”라고 묻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 시골에 소도둑이 많던 때라 소도둑으로 몰린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읍내 파출소에 끌려가 신원 조회를 당한 뒤에 풀려나곤 했죠. 지금이야 남자 요리사들이 흔하지만, 그때는 젊은 남자가 요리 배운다며 돌아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으니까요.”



전국의 종갓집 돌며 음식 비법 배워

그 가문만의 요리법을 대대손손 이어가는 종갓집만한 요리 선생님이 없었다. 어느 종갓집에 제사나 환갑 잔치 등이 있다는 소식을 입수하면 그때에 맞추어 찾아갔다. 종가의 별미들이 쏟아져 나오니 재료비 한 푼 들이지 않고 요리 실습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종갓집들은 “낯선 사람이 잔치 음식에 손대면 부정 탄다”며 문간에 들어서지도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리사 자격증을 따려고 3개월간 학원에 다닌 것을 제외하면 그의 요리 기술의 대부분은 이렇게 잔칫집 부엌일을 도우며 익힌 것이다.

군대 들어간 후에도 그는 취사병으로 근무했고, 제대 후 신라 호텔에서 조리사 생활을 시작했다. 입사 이듬해인 1995년 그는 신라호텔에서 주최한 신라 조리대상제에 전유어를 출품해 금상을 받았고, 경희대 조리학과에 입학해 주경야독을 했다. 어느 정도 실력을 쌓았다고 자신했을때 그는 양반가 음식 전문점 ‘천년기둥 큰기와집’을 열었다. 전국 종갓집을 돌며 습득한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요리의 기본이 되는 간장은 어머니에게 전수받은 청주 한씨 비법으로 만든다. 그의 간장게장 맛의 비결도 이 간장에서 나온다고.

“사람 몸에서 제일 중요한 게 피 아닙니까. 한식 요리에서 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간장입니다. 음식 맛은 장맛이란 옛 어르신 말씀이 하나도 틀린 얘기가 아닙니다.”

그는 지금도 엄청난 양의 간장을 직접 담근다. 물에 불린 검정콩과 쇠고기, 전복, 건새우, 생강, 마늘, 통대구포 등 갖가지 재료를 가마솥에 넣고 8시간 가량 은근한 불에 거품을 걷어내며 달이고, 간장물이 졸아들면 불을 끈 후 마지막에 다시마를 넣는 순이다. 간장이 완전히 식으면 체에 걸러 항아리에 담는다. 그는 “한식 요리에 있어서 장 담그고 김치 담그고 하는 것은 어려서 말을 배우고 덧셈, 뺄셈을 하는 것만큼 기본”이라고 말한다.

한 씨는 현재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에서 발효식품과학을 가르친다. 간장, 된장, 고추장, 술 등의 전통 발효식품에 대한 연구도 계속 진행 중이다.

“일찍 요리로 인정받다 보니 예전에는 ‘나’밖에 안 보였어요. 이제는 차츰 ‘세상’이 보입니다. 앞으로는 나라는 그릇이 사회에서 의미 있게 쓰일 수 있도록 내공을 쌓을 것입니다.”

“정치가의 발언 같다”고 농을 건네자 그는 “어차피 요리사는 정치가나 매한가지”라고 응수한다. 제각각인 사람들의 입맛을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요리사의 일이니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한식 요리사인 그가 앞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요리하는 경지에 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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