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투자가들 | 최고의 개인 투자자가 된 증권사 심부름 꼬마 제시 리버모어

“예측하기보단 반응하세요. 증시는 늘 다음에 펼쳐질 현상에 대해 단서를 제공하죠. 투자자는 그 단서를 퍼즐 맞추듯 차근차근 끼우면 돼요. 본질적으로 좋은 주식이나 나쁜 주식은 없어요. 단지 돈 되는 매매 방법이 있을 뿐이죠.”

제시 리버모어(Jesse Livermore). 월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인투자자다. 잡초처럼 뒹굴면서 홀로 투자 세계의 룰을 터득해 천문학적인 수익률을 거뒀다. 혹자는 ‘조지 소로스’와 ‘워렌 버핏’의 합성 인물로 서슴없이 리버모어를 꼽는다. 실제로 리버모어 투자법을 들여다보면 소로스와 버핏의 핵심 전략과 유사한 게 많다. 리버모어가 강조했던 손절매, 매매 타이밍, 감정통제, 시황분석 등의 전략은 아예 판박이 수준이다. 19세기에 출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소로스와 버핏이 그에게서 영감을 얻었을 수도 있다. 드라마틱한 삶도 재미나다.

그는 15세 때(1892년)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종자돈은 단돈 5달러. 이걸 밑천으로 1929년 대공황 때 무려 1억 달러를 벌었다. 지금 가치로는 2조 원(20억 달러)에 육박한다. 그에겐 여러 별명이 있다. 초기엔 과감한 매매 스타일 탓에 ‘꼬마 노름꾼’으로 불렸다. 폭락장 때 본격적으로 큰돈을 번 뒤엔 ‘월가의 큰곰’으로 변신했다. 늘 혼자 거래했기 때문에 ‘월가의 늑대’로도 알려졌다. 스승도 없이 오로지 실전을 통해 자신만의 투자 전략을 세워 나갔다.

리버모어의 첫 직업은 ‘호가(呼價)판 주사’로, 주식 매매 현황을 칠판에 기록하는 일이었다. 가출 후 겨우 잡은 일자리가 공교롭게 증권업계 관련 업무였고, 이게 그의 평생을 지배했다. 이때 숫자와의 연애에 푹 빠져 주가 변화를 둘러싼 패턴 연구에 몰입했다. 주가가 움직이기 직전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 궁금해 끊임없이 분석했고, 자신만의 투자 비법을 완성했다. 15세 때의 첫 거래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그때 이미 손실을 줄여야 한다는 ‘10% 손절매 원칙’을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16세 때 급료보다 매매수익이 커지자 전업투자자로 방향을 틀었다.

이 ‘꼬마 노름꾼’은 사설 증권회사를 떠나 뉴욕으로 진출했다. 그곳에서 그는 시장 전체 흐름을 읽고 매매 타이밍 찾는 법을 터득해 재기했다. 이후 그의 매매기법은 더욱 정교해졌다. 매매 완료 후 쉬어가는 법도 실천했다. 1900년대 초 그는 드디어 ‘손실은 짧게, 수익은 길게’하는 리버모어 투자 비법을 완성했다.

이때 피라미딩(Pyramiding) 전략이 나온다. 피라미드를 쌓듯 주가가 올라가는 주식의 매수 규모를 늘려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논리다. 피라미딩 전략은 리버모어 매매법의 핵심이다. 요즘 증시에서 유행하는 ‘상한가 따라잡기’와 같은 맥락이다. 경험상 추세 매매의 수익률이 높고 또 집중적으로 이익이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승률을 높여준 일등공신은 인내심이었다. 그는 단기차익을 실현하려는 욕구를 억누르고 자신이 정해놓은 매매 시점까지 기다릴 수 있는 끈기를 강조했다. 어떤 이유든 중간에 흔들리면 큰 흐름을 놓치기 때문이다.

단 이 전략은 반드시 미리 매수금액, 수량을 정해놓고 수익이 확인된 초기 상태에서 진행돼야 한다. 자칫 주가가 생각과 달리 역행하면 손실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이럴 때 투자자가 당황하면 마땅한 대응방안을 찾기는커녕 손실만 더 키울 수 있다. 리버모어도 이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게 분할매수였다. 매수 타이밍이 왔어도 한꺼번에 전량 사지 않고 나눠서 사면 비록 매수 단가는 좀 높아져도 반대로 손실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령 매수 총량이 1000주라면 4회에 걸쳐 주가가 오를 때만 250주씩 산다. 1회 매수 때 추세가 흔들리면 5~10%로 손절매한 뒤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되고, 추세에 올라탔다면 수익을 무한히 키울 수 있는 절묘한 방법이다. 소액으로 추세 검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투자심리도 한층 여유로워진다.


오르는 주식을 분할 매수하라

피라미딩 전략은 개인투자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개인투자자 대부분은 자금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은 주식을 단번에 매수한다. 분할매매 개념은 애초부터 없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분할 매수와 손절매만 가지고도 안정된 상태에서 얼마든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그의 조언을 흘려들어선 곤란한 이유다.

추세타기에 성공했다면 다음은 심리통제가 관건이다. 리버모어가 돈을 번 건 시장흐름에 올라탄 것보다 이후 심리제어에 성공했기 때문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그는 인내심을 발휘해 변곡점까지 기다리는 추세매매를 완벽히 소화했다. 매수 후 주가가 오르면 떨어질까 우려해 서둘러 팔기보단 확신을 갖고 계속 수익이 불어나도록 내버려뒀다. 반대일 땐 가차 없이 손절매를 했다. 그는 “인간이 갖고 있는 심리적 약점을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며 인간 심리를 알고자 심리학까지 공부했다. 성공적인 투자자의 특징은 관찰력, 기억력, 수학적 계산능력, 경험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선도주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수익 극대화를 위해선 가능한한 관심 종목을 줄이는 게 낫다는 경험 때문이다. 주가 움직임을 연구할 때는 그 범위를 그날 가장 유망한 모습을 보인 주식들로 한정했다. 활발하게 거래되는 선도주로부터 수익을 얻을 수 없다면 시장 전체에서 돈 벌 길이 없어서다. 다행인 건 시장엔 늘 새로운 선도주들이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시장에 맞서선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강세장에선 선도 업종과 그 업종의 대표 선도주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개별 하자가 없는 한 ‘명백한 집단화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큰돈을 버는 건 전체 시장과 함께 선도주를 장악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매매 타이밍을 결정할 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조급해하면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해서다. 그의 코멘트다.

“예전에 면화선물에 투자한 적이 있었죠.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오르는 기막힌 경험을 했는데, 원인이 뭘까 한참 공부했어요. 인내심 부족과 감정통제에 실패했기 때문이었죠. 기록과 분석만이 해결책이었어요. 이를 통해 시세 전환과 관련된 나만의 신호를 만들었습니다. 차트만 챙기지 말고 스스로 기록하세요. 상당히 정확성을 갖춘 기록을 보유할 수 있죠. 스스로 생각하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 건 물론이고요.”

명확한 근거에 기초한 자신만의 견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시장을 둘러싼 사람들의 평가와 의견은 무시하라고 가르친다. 시장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이 틀리기 쉽기 때문이다. 자금관리에도 그만의 원칙은 있다. 그는 시장을 겁낸다. 유기적인 생명체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곤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건전한 자금 관리원칙이 없으면 안 된다. 그에겐 쉬는 것도 투자였다. 한발 벗어나 매매를 쉬면서 시장흐름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곤 했다. 계좌정리도 자주 했다. 돈을 완전히 인출해 현금을 확보한 후 거래 규모를 다시 조절했다. 계좌 규모가 투자원금의 2배가 되면 수익을 인출하는 차익관리를 적극 권한다. “아마추어들은 실수를 저지를 때까지 거래를 남발한다”며 “그 끝은 깡통계좌뿐”이라고 거든다. 돈을 찾음으로써 숫자의 환영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돈은 세어봐야 손안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서다. 그렇지 않다면 돈은 숫자에 불과하다.

리버모어는 겸손했다. 항상 배운다는 자세로 임했고, 자기관리와 겸손을 통해 감정통제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윌리엄 오닐, 알렉산더 엘더 등 내로라하는 거물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투자의 달인이었다. 저명한 은행가였던 J.P 모건조차 그에게 협력을 요청할 만큼 파워를 가진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종말은 비극으로 끝났다. 후세 사람들이 교과서로 여길 만한 투자 원칙을 만들어놓고도 말년 자신의 투자에서는 큰 손실을 입었고, 1940년 가을 칵테일 바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일러스트 : 배진성



제시 리버모어의 10대 투자원칙

① 오를 땐 희망을 떨어질 땐 두려움을 가져라.
② 무모한 사람이야말로 쉬지 않고 투자한다.
③ 방향 확인 후의 매매는 보험에 드는 것과 같다.
④ 투자 결정을 했어도 지나치게 앞서 뛰어들지 마라.
⑤ 수많은 주식보단 몇 개 종목을 관찰하는 게 훨씬 쉽다.
⑥ 매매가 잦을수록 중개인은 달콤한 권유를 아끼지 않는다.
⑦ 정보나 추천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마라.
⑧ 짧은 시간에 큰돈 벌려거든 차라리 증시를 떠나라.
⑨ 판단이 틀렸다면 변명하지 말고 웃으며 다음 기회를 노려라.
⑩ 거래 완료 후엔 차익 중 절반은 예금상자에 따로 모아두라.
  • 200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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