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위적 메이크업 아티스트 손대식

남자라서 안된다는 편견, 실력으로 깼어요

“순탄하게만 왔다면 저 잘난 줄만 알고 겸손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부러 배고플 것까지야 없지만 헝그리 정신이 있어야 성공하는 것 같아요. 지금도 저는 메이크업 전에 스태프들과 함께 미리 연습을 해요. 타고난 게 없으니 연습을 많이 하는 거죠.”(웃음)

이효리, 다니엘 헤니, 엄정화, 장진영, 송혜교 등 정상급 스타들의 메이크업을 담당하면서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꼽히는 손대식 씨(32세). 웬만한 연예인들은 거의 그의 손에 얼굴을 맡겼는데, 그의 메이크업은 특히 광고 촬영이나 시상식 등 남다른 개성을 강조해야 할 때 더 빛이 난다. 메이크업을 받는 당사자들조차 ‘내 얼굴에 이런 면이 있었나’ 감탄할 정도로 실험정신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그가 업계 최고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 독립해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패션사진가협회에서 주는 ‘올해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상을 받았고, 2003년부터 해외 컬렉션에 어시스턴트로 참가했다.

“2003년 봄 처음으로 뉴욕 컬렉션에 갔는데, 다들 얼어서 모델에게 말도 못 붙이잖아요. 이왕 간 거 적극적으로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세계적인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경쟁하는 현장에서 누가 저 같은 동양인 어시스턴트에게 메이크업을 받겠어요. 용기내서 다가갔지만 역시나 다들 우회적으로 거절하더라구요.”

마음에 드는 모델을 바라보며 ‘아, 저 모델 메이크업을 하고 싶다, 하고 싶다’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쳤다. 그러고는 모델이 머리를 하는 동안 곁에서 기다렸다. 결국 모델 한 명이 곁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를 두고 다른 사람에게 가기가 미안했는지 메이크업을 받겠다고 했다. 그해 9월에 참가한 파리 컬렉션 때는 한층 자신감이 붙었다. 그러나 원하는 모델을 메이크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가 굉장히 까다롭게 모델을 선택하거든요. 세계적인 모델들에게 메이크업을 받겠느냐고 다가갔으니 어디 쉽겠어요? ‘지금은 피곤하니 나중에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마사지해 줄까’ 했더니 좋다고 해서 어깨와 목덜미를 마사지해 줬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델을 저렇게 케어해 주는 이 사람이 진짜 프로”라고 감탄했다. 그 후 모델들이 그에게 몰려들어 서로 메이크업을 받겠다고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마사지를 받으면 몸이 이완되면서 자연스레 마음의 문도 열리는 법. 손 씨는 짧은 시간에 모델들과 가장 친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됐다.

“모델들이나 연예인들은 언제나 피곤한 상태예요. 게다가 메이크업 받는 시간이 굉장히 길고 지루하잖아요. 마사지를 받고 나면 혈액순환이 잘 되니까 얼굴빛이 좋아지고 부기도 빠져서 메이크업에 도움이 돼요. 지금도 전 항상 메이크업 전에 마사지와 팩을 해줘요.”


이제 그는 해외 컬렉션에 갈 때마다 으레 세계적인 모델들을 담당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됐다. 해외 촬영 때 실전을 통해 익힌 영어와 불어로 모델들과 의사소통을 한다. 어릴 적 그는 유난히 예쁜 것을 밝히는 사내아이였다. 어머니가 의상실을 운영해, 줄곧 패션잡지들을 보며 자랐다. 어머니가 태권도 학원 다니라며 준 돈을 들고 미술학원을 찾았다.

“초등학교 때 이은영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미술 영재였어요. 학교 복도에는 온통 그 아이의 작품들이 걸려 있었죠. 어린 마음에도 그 친구의 작품을 보며 충격을 받았어요. 같은 나이에 저 친구는 저렇게 그림을 그리는데 나는 뭔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 아이가 다니는 미술학원에 등록했어요.”(웃음)


미용실에서 청소라도 하고 싶었다

광주예고에 진학해 동양화를 공부하던 그는 ‘화가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 대학은 산업디자인과로 진학했다. 그런데 논리와 계산이 중요한 산업디자인은 두무지 적성에 맞질 않았다. 대학을 그만둔 후 분장학원에 등록했다. 그곳 학생 중 남자라고는 그 혼자였다. 학원을 1등으로 졸업, 의기양양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 때라 취직이 쉽지 않았다.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들고 무조건 청담동에서 제일 유명한 메이크업 숍을 찾았다. 톱스타들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미용실은 그에게 천국과도 같았다.

“하루 종일 기다려서 원장님을 만났어요. 청소라도 좋으니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죠. 하지만 원장님은 남자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충고해 주셨어요. 당시엔 남자가 메이크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이었거든요. 원장님이 자주 놀러 오라고는 했지만 그게 전부였죠.”


미용실을 나온 그는 허탈감에 방황을 했다. 그 즈음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집안 경제가 무너졌다. 남은 재산을 정리하니 조그만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그 돈을 미혼이었던 손위 누나에게 주고 빈털터리가 됐다. ‘나는 남자니까 어디서든 내 몸 하나는 건사할 수 있겠지’ 하고 믿었다.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어요. 그러다 한 수입 화장품 회사에서 연 메이크업 대회에 참가했는데, 예선에서 1000명이 넘는 참가자 중 1등을 했어요. 자신만만하게 준결선에 올라갔는데 예상 밖으로 떨어졌죠. 그때 지하철역에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 얼마나 울었는지 지쳐 잠이 들었어요. 알고 보니 96점이 69점으로 거꾸로 기록되는 착오가 있었던 거예요. 준결승도 1등으로 통과하고 결선에 진출했죠. 현장에서 모델을 제비뽑기로 지정했는데 하필이면 그날 얼굴에 심하게 트러블이 인 사람이 제 모델이 됐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2등이었죠.”

우승은 못 했지만 다음 날 그의 실력을 눈여겨본 심사위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강남의 유명한 미용실 원장이었다. 바로 와서 일하라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자신의 인생에도 서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1999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2002년 독립할 때까지 3년여 동안 몇 군데 미용실을 돌며 그야말로 죽도록 일했다. 한 달에 60~70건씩 촬영을 나가기도 했다.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일요일 하루는 쉬고 싶었어요. 예배에 참석해야 하니까요. 주일날만 쉬게 해주면 몸 바쳐 일하겠다는 게 저의 유일한 조건이었는데 그게 지켜지는 미용실이 없었죠.”

손 씨는 유독 화장품 욕심이 많다. 오죽했으면 그의 집에는 화장품과 침대밖에 없다는 소문이 날 정도다. 지구 상에 있는 모든 메이크업 제품은 다 가지고 있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는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제품까지 수소문해 구입한다. 그의 수입은 꽤 많다. 정확히 밝힐 순 없지만 외국계 기업의 임원 정도 된다고 귀띔한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월세를 살고 있다”며 “지금까지 번 돈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웃는다.

“사람들이 마치 제가 다 이룬 것처럼 말하는데 저는 이제 시작이에요. 아직 제가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한 메이크업의 비밀들이 몇 가지 있는데 이것들을 풀고 나면 제 이름을 건 메이크업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그의 꿈은 세계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도전하는 것이다. 성공할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지만 언제나 도전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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