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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행복한 고통

김수영 문학상 받은 시인 강기원

“그대 향해 굽은 등뼈 기고 기어 온 무릎 감추어 둔 꼬리까지 이제 그만 내어 주기로 한다(중략) 징그러운 그리움일랑 아예 뭉그러질 때까지 더 이상 우려낼 무엇도 없어질 때까지 푹푹 고아 진하게 한 그릇 드려야지(중략) 나인 듯 아닌 듯 자 드세요(중략)”

강기원의 시 <곰국>이다. 뼈에서 진액이 다 빠져나오고, 모든 형체가 흐물흐물해지도록 몇 시간이고 푹푹 고아 만드는 곰국. 시인은 곰국을 끓이면서 누군가에게 그렇게 자신을 바쳤던 것일까?

1997년 신인상으로 등단한 그가 제 25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시작됐던 오랜 ‘시의 길’이 하나씩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그는 대학생과 고 3 아들 둘을 둔 주부다. 시를 향한 열병은 첫아들을 임신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결혼해 주부로 지내던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문학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임신하고 있던 열 달 동안 두문불출 내내 책만 읽었어요. 과천에서 살 때였는데, 이동도서관 아저씨가 제가 안 나오면 기다리고 있을 정도였죠.”

출산과 함께 그의 내면에서 뭔가 꿈틀대며 나오려 했다. 쓰고 싶었다. 신문이나 방송의 ‘독자 시’ 코너에 응모하고, 문학 강좌가 열리는 데마다 따라다녔다. 쓰고 있을 때 진정 살아있는 것 같았다. 1987년 남편을 따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가 5년 동안 살았던 그는 모국어와 떨어져 생활할 때 극도로 쇠약해졌다고 한다.

“속에 뭔가 막혀있는 것 같고, 너무너무 소화가 안 돼 2년간 죽만 먹고 살았어요. 지금 생각하니 언어에 대한 체증 같아요. 언어와의 사랑에 지독하게 빠져들기 시작하던 때에 떠났으니. 갈증은 심했지만, 그곳에서는 정말 한 자도 쓸 수가 없었어요.”

귀국 후 그는 본격적으로 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1995년 말 한국 문학학교에 들어가 최승호 시인 등으로부터 수업을 받았다.

“시에 대한 열정만 있던 제게 어떻게 이미지를 펼칠지 가르쳐 주었던 곳이지요. 첫 강의부터 말의 세례를 받은 듯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정말 제가 배운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시의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시를 쓰는 것은 인생의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제가 초조 불안에 쫓기지 않고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도 선생님들께로부터 받은 시의 정신 덕분입니다.”


첫아이 임신 때부터 시작된 시에 대한 외줄기 사랑

1980년대부터 시를 향한 그리움이 시작돼 1997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하고, 2005년 첫 시집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를 냈으니 그의 걸음은 느리고도 끈질겼다. 주부의 일상에 휘둘려 시에 온전히 자신을 내주지 못했다고?

“언제 어느 때 ‘그분’(영감곭銶?이 오실지 모르니 볼펜을 항상 바지에 꽂아놓고 있지요. 이삿짐 나르다 영감이 떠올라 방으로 숨어 들어가 쓴 적도 있으니까요.”

그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구도자의 자세와도 흡사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식구들 아침을 챙겨주고 운동으로 몸을 단련한 후에는 도서관으로 가거나 집에서 하루 종일 읽거나 쓴다. “읽을 책을 쌓아놓고 있으면 켜켜이 올려놓은 시루떡을 보는 듯 뿌듯하다”고 한다.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엄격하게 자신을 통제하면서 고독 속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그는 ‘시 쓰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이라고 표현한다. 남편은 그런 그를 ‘독종’이라고 말한다고. 살림 살고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한창 바쁠 때도 그는 새벽에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앉아 있으면서 시에 대한 맹목적인 외사랑을 바치곤 했다.

“무병을 앓는다는 말이 저는 너무나 이해돼요. 저도 사나흘 안 쓰고 넘어가면 몸이 아프기 시작하니까요.”

한 줄을 쓰기 위해 순간순간을 바치는 생활. 이에 대해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에도 정성이 필요하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애정과 정성을 충분히 들여야 절정을 맞듯이 ‘영적인 극치’를 맛보는 시작(詩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 맛을 보고나면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다고.

최근 펴낸 김수영 문학상 수상시집 《바다로 가득 찬 책》에는 곰국과 젓갈, 만두, 베이글 등 음식들이 많이 등장한다. 시간과 정신, 에너지를 몽땅 쏟아 넣어 음식을 만든 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행위인 요리. 거기에서 아낌없이 나눠주는 모성, ‘내 피와 살을 먹으라’고 한 신의 사랑, 때론 남녀간의 관능적인 에너지까지 읽힌다. 그는 자신의 시가 그렇게 프리즘을 통과하듯 분광(分光)되어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게 “기쁘다”고 말한다. “애인 있지요?”라고 그에게 은근히 묻는 젊은 독자가 많다며.

시에서 나타나듯 그의 내면에는 한없이 내주고 싶은 모성, 신을 향한 사랑이 깃들어 있다.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는 그는 애들 때문에 글을 못 쓴다는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보다는 아이들이 준 기쁨과 풍요로움이 너무 컸다. 요즘은 따로 방이 있지만, 오랫동안 안방에 칸막이를 해놓고 책상을 들여놓은 후 그곳에서 읽고 썼다. 생각하고, 팔을 움직여 쓸 수 있는 건강이 감사해 더 이상의 환경을 바라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비교적 평탄하게 살아왔다는 그에게도 시는 어릴 적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었던 듯하다. “시를 쓰면서 숨기도 하고 또 드러내기도 할 수 있어 좋다”면서 그는 “닫힌 우물 같은 내 안의 어두움에서 시가 출발했다”고 한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이지만 양면적인 모습이 있기도 했던 그의 집, 18세 때 사망한 뇌성마비 동생, 사춘기 때 겪은 지독한 사랑. 그런 단편들이 조금씩 비친다. 시 <미아>에 어릴 적 그의 모습이 들어가 있다.

‘얼핏 또렷해 보일 수 있는 아이의 눈을 믿지 마십시오. 그 애가 보는 곳은 늘 세상 밖이니까요.’

얼마 전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그의 신앙은 더 깊어졌다. 늘 부족하다는 생각에 미루던 첫 시집 원고를 넘긴 후 그는 “내가 시 쓰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54일간 기도하면서 신에게 물었다. 그 과정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신과 시를 향하는 길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상처를 헤집고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가두고 채찍질하는 시의 길을 그는 ‘행복한 고통’이라고 표현한다.

사진 : 이규열
  • 200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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