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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프리미엄은 싫다”

성 대결 펼치는 ‘e스포츠의 女帝’ 프로 게이머 서지수

데뷔 5년차 프로 게이머 서지수 씨는 아버지 서영석 씨에게 게임을 배웠다. 스타크래프트 붐이 일던 1999년, 공부에 방해된다고 ‘게임방 다니지 마라’는 차원에서 아버지는 중학교 2학년이던 딸에게 스타크래프트를 가르쳤다. 딸이 프로 게이머가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번 게임을 배운 딸은 밤을 새우며 게임에 몰입했다. “이런 세계가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 전쟁 게임을 통해 승자를 가리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이 그녀 특유의 승부욕을 자극했던 것이다. 말이 없고 내성적인 딸이 게임에 흠뻑 빠진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답답했고, 후회했다.

어느덧 지수 씨는 온라인 게임 넷에서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게임 넷에 접속해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즐기는 전 세계 게이머들은 여자라고는 믿기지 않는 공격적 플레이를 펼치는 지수 씨의 아이디 ‘tossgirl’을 기억했다. “도대체 tossgirl이 누구냐”, “아무래도 남자인 것 같다”는 사람들 중 하나였던 온라인 동료의 추천으로 게임단 ‘STX Soul’에 입단한 그녀는 고1 겨울 WCG(World cyber Game)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해 8강에 올랐다. 이변이었다. 무명의 온라인 스타가 화려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서지수 씨가 프로 무대에 오르던 2002년만 해도 프로 게이머 세계가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던 때다. 아버지는 지수 씨가 쌍둥이 언니 지은 씨처럼 평범한 여고생이길 바랐다. 언제나 그렇듯, 쌍둥이는 달랐다.

“아빠가 재미로만 하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제가 너무 빠지니까 인터넷을 끊어 버리셨어요. 게임하지 말라고 타이르기도 하시고 혼도 내시고요. 프로 데뷔한다고 말씀드리니 부모님 반대가 심하셨어요. 사람들이 프로 게이머는 잠깐 떴다 사라지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던 때였으니까요. 아버지가 딸 걱정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서지수 씨는 고등학교 입학 성적이 좋았다. 지수 씨의 담임 선생도 “프로 게이머가 되기엔 아까운 성적”이라고 지수 씨의 부모를 설득했다고 한다. 담임선생님은 얌전한 학생이 게임방을 전전하는 ‘불량 학생’이 된 사실을 믿지 못했다. 당시 주위 모든 사람들이 지수 씨를 ‘게임방에 미친 여고생’이라고 생각했다. 지수 씨는 고집이 셌다. 한번 본선 무대에 오른 이후부터 하루 10시간 이상을 연습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게임의 귀재 아버지로부터 게임 배워

서지수 씨 가족은 모두 재능이 넘친다. 아버지 서영석 씨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당구는 프로급이고, 스키겫섯탛축구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실력. 몇 해 전 골프를 시작했는데, 프로 골프 입단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다. 서영석 씨 역시 어린 시절 게임의 귀재였다. 학교 앞 문방구 게임기에 동전 하나 넣고 하루 종일 앉아 놀아 문방구 주인이 돈을 돌려주며 집에 가라고 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고 한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본다.’ 서지수 씨가 아버지를 닮은 것이다.

지수 씨의 동생 지승 씨는 연기자. ‘길거리 캐스팅’으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놀이공원에 놀러 갔다가 연예기획사 매니저의 눈에 띄어 CF모델 활동을 시작했고, ‘신돈’, ‘반올림2’ 등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명지대에 다니는 지수 씨의 쌍둥이 언니도 게임 실력이 프로급이라고 한다. 지수 씨의 어머니 박경숙 씨는 학창시절 성우가 꿈이었다. 지수 씨는 “우리 엄마 목소리는 천사 같다”고 자랑했다.

박경숙 씨는 막내딸 지승 씨가 출연한 롯데리아 CF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았는데, 출연료로 15만 원을 받아 가족이 외식을 했다고 한다. 지수 씨 집의 거실은 동물 농장이다. 강아지 토끼 오리 앵무새 햄스터 등이 가족과 함께 산다. 어린 시절 지수 씨의 꿈은 수의사였다.

서지수 씨는 최근 한 케이블 채널이 선정한 11월의 ‘익스트림 걸’로 뽑혔다. 장동건, 이영애, 궉채이 등 매달 익스트림 가이&걸을 선정해 발표하는 케이블 채널 XTM은 오는 12월 1일 제 3회 슈퍼파이트 e스포츠에 출전해 남자들과 성 대결을 벌이는 서지수 씨의 도전 정신을 높이 사 11월의 익스트림 걸로 뽑았다고 한다.

“시간이 모자란다”며 집을 나온 그는 STX Soul 팀의 서울 방배동 합숙소에서 생활한다.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만 빼고 훈련이다. 합숙소에는 거실에 컴퓨터 20여 대가 게임방처럼 줄지어 있고, 선수들이 한창 연습 중이었다. 지수 씨는 이 합숙소의 유일한 여자 선수다. 남자 선수들은 모두 한 방에 자고, 지수 씨 혼자 독방을 쓴다. 데뷔 5년차인 지수 씨는 이 합숙소에서 선배 대접을 받고 있다. 애완견 한 마리를 무릎에 올려놓고, 하루 12시간을 연습한다. 한 수 배워 보기로 했다.

종족은 테란. 시작하기가 무섭게 지수 씨의 첨병이 필자의 본진을 훑고 갔다. 잠시 후 지수 씨가 많지 않은 병력을 보냈다. 준비 안 된 상태에서 힘겹게 막았다. “기자님, 좀 하시네요”, 어깨가 으쓱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병력이 내 진지를 박살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병력을 보내 내가 힘겨운 전투를 벌이는 사이, 지수 씨는 이미 다음 병력을 준비해 둔 것이었다. 7분 만에 게임이 끝났다.

“스타크래프트에는 남자, 여자가 없어요. 힘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전략과 감각으로 하는 것이니까요.”

서지수 씨는 여자 대회에 출전하지 않는다. “여자라는 프리미엄은 싫다”고. 남자들과 겨루고 싶다고 한다.

“여자 선수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여자 선수들이 잘 못하는 이유는 아직 길이 안 뚫렸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개척자가 되고 싶어요. 제가 생각해도 저는 독한 사람이에요. 한번 정상에 올라보고 싶어요.”

독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 외에는 동생 전화번호도 모를 만큼 세상살이에 무심했다. 오로지 한 길만 파는 지수 씨는 연애도 해본 적 없다. 친구도 없다. 가족은 1주일에 한 번, 가족들이 합숙소로 면회 왔을 때 본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전화도 안 한다. 하루 12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연습한다. 체르니 50번까지 배운 피아노 실력도 일품이었다. “피아노를 친 경험이 손가락을 빨리 움직여야 하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지수 씨의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은 휘어 있었다. 마우스를 너무 세게 잡기 때문이라고 한다.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마우스를 잡고 손이 테이블에 닿는 부분이 다 까졌기 때문이다.

“저한테 사춘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1등을 해보고 싶어서, 항상 게임 생각만 했어요. 어떻게 하면 상대를 이길 수 있는지, 그 생각만 했어요.”

162cm, 45kg, 작은 얼굴, 얼핏 보면 연예인처럼 생긴 지수 씨의 별명은 ‘여제(女帝)’다. 오는 12월 열리는 슈퍼파이트, 지금은 오직 그 생각만 하고 있다.

“아빠에게 참 고마워요. 한번 게임 시작한 이후로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아빠예요. 처음엔 제가 아빠를 이기지 못했는데, 요즘은 아빠가 저한테 못 이기시죠. 그래서 몰래 노트북으로 연습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딸 이기겠다고요.”(웃음)

서지수 씨의 요즘 유일한 즐거움은 집에서 데려온 애완견 미코와 노는 일이다. 그녀는 평범한 스물두 살의 처녀들처럼 살기를 거부했다. 최고가 되겠다고 한다.

사진 : 이창주
  • 200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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