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마다 국토종단하며 결식아동 돕는 안기향씨와 민주ㆍ재오 남매

한여름과 겨울에 길 떠나는 가족

충남 천안시 구성동 구성초등학교 앞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안기향 씨(45). 그는 사춘기 아들딸의 방학 때마다 도보 행군에 나선다. 첫 행군을 시작한 것은 2005년 8월 중순. 중학생 아들딸과 2박 3일을 걸어 천안 집에서 여의도 63빌딩까지 갔다.

이들의 목표는 목포에서 임진각까지 1번 국도를 따라가는 국토 종단. 2005년 12월 31일, 63빌딩에서 다시 행군을 시작해 1월 1일 새해 첫날을 임진각에서 맞았다. 유난히 뜨거웠던 올해 여름, 이들은 땡볕을 받으며 천안에서 논산까지 100km를 걸었다. 앞으로 논산에서 목포까지 구간이 남아 있다. 체감온도가 40℃를 웃돌아 햇볕 아래 서있는 것조차 힘든 여름이나 모든 게 꽁꽁 얼어붙어 있는 한겨울에 길 떠나는 가족. 이들의 고행 같은 행군은 아들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대학생 형들이 무전여행 하는 것을 지켜본 아들이 “엄마, 우리는 아빠도 형도 없으니 저런 여행 못 하겠지?”라고 물었다. 1994년 교통사고로 남편을 일찍 보내고 아이들을 혼자 키워온 안 씨. 아이들이 사춘기를 맞으면서 색다른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렵게 시간을 내 세 식구가 여행을 떠나도 불협화음을 내게 되더라고요. 내가 운전하는 동안 애들은 내내 입씨름을 하고요. 제각각 먹겠다는 음식도 달라 의견일치를 보기 어려웠죠.”


아이들과 1대 1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안 씨는 딸 민주만 데리고 1박 2일 대천에 다녀왔다. 사춘기 딸의 속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오랜만에 모녀 단둘이 바닷가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자 아들 재오가 “엄마. 나도 사춘기 온 것 같은데, 나랑은 어디로 갈 거예요?”라고 졸랐다. 그러던 차에 배낭 메고 도보여행 하는 대학생들을 본 것.

“엄마도 무전여행 하고 싶었는데, 외할아버지가 여자라서 안 된다고 허락을 안 하셨거든. 그럼, 우리 함께 걸어서 여행할래?”

모자간 계획에 민주도 합류했다. 세 사람은 신이 났다. 지도를 갖다놓고 도상 여행을 하고, 어디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잘지 차로 미리 답사도 했다. 하루 40km씩 걸을 체력이 무엇보다 큰 문제. 아침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걷기 연습을 했다. 그리고 결행. 첫날은 송탄, 둘째 날은 수원에서 자며 새벽 4시에서 저녁 8시까지 하루 종일 걸었다.

“평원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거예요. 휴게소 추녀 밑에 앉아 쉬다 한꺼번에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후 눈을 뜨니 청소부가 불쌍한 눈으로 우릴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아마 아이들 데리고 가출한 엄마쯤으로 알았나 봐요.”


엄마에게 말대꾸 해본 적 없는 딸

집에 있을 때는 컴퓨터 서로 차지하겠다고, 텔레비전 채널 가지고 싸우던 누나 동생이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서로 위해주는 사이로 바뀌어 갔다. 첫 도보여행에서는 민주가 동생 가방까지 들어줬는데, 1년 후에는 재오가 훌쩍 자라 제일 무거운 가방을 메고 앞서 걸으며 엄마와 누나 보호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과 엄마는 걸으면서 할 이야기가 참 많았다.

천안의 꽃집에서 만난 민주와 재오는 “겨울보다 여름에 걷는 게 훨씬 힘들었다”고 합창을 한다. 그래서 겨울에만 도보여행을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때 안 씨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가 그냥 걸을 게 아니라, 1km에 1000원씩 후원금을 모아 급식비를 못 내는 아이들을 도우면 어떨까?”

엄마 모교와 민주, 재오 학교에 후원금을 내놓자고 했다. 아이들 눈빛이 달라졌다. “여름에는 너무 힘들다”고 뒤로 빼던 아이들이 지도를 체크하며 “아, 이 정도면 하루에 걷겠네”라며 신이 났다.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안 씨는 “아이들에게 물통에 물을 얻어오라”고 시켰다. 어려움을 겪을 때 손을 내밀면 도와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또 그들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청을 거절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논산의 작은 우체국은 꽝꽝 얼린 얼음물을 내놓았고, 할머니 혼자 사는 집에서 온 식구가 쉬었다 나오기도 했다.

“앞서 가던 아들이 불러 가보니, 할머니 집에서 샤워까지 하고 시원한 걸 먹으면서 쉬고 있더라고요. 어리게만 생각했는데, 어디 갖다놔도 사는 데 문제없겠다 안심이 되더군요.”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아이들은 여섯 살, 네 살이었다. 안 씨는 그러나 절망에 빠져 있지 않았다. “이제 세상을 나 혼자 헤쳐 나가야 하는데, 어려운 일부터 해보자”는 결심으로 보험 설계사가 됐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맡겼다.

“기운이 빠지려고 할 때면 ‘너 지금 잘하고 있어’라며 스스로를 칭찬했어요.”

“어느 순간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강점”이라고 자신을 평하는 그는 높은 실적을 올리며 보험 왕을 노리는 자리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3년 후 직업을 전환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을 팔고 나니 두려운 게 없어지더라고요. 그 일을 통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자신감을 얻었지요.”

그 다음에는 평생 좋아하면서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았다. 그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 백화점 디스플레이어로 일했었다. 다시 일하라는 제의도 받았지만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시간에 매이는 직장 생활을 하기는 어려웠다. 고심 끝에 자신의 미적 감각을 살릴 수 있는 꽃집을 열었다. 천안 시내에 꽃집을 열었다 아이들과 가까이 있기 위해 학교 바로 앞으로 옮겼다.

그의 이름을 딴 ‘안기향 꽃집’은 초등학교를 마주보고 있었다. 구석진 자리에는 하교한 아이들이 앉았다 갈 수 있도록 장판을 깔아뒀다. 조금이라도 아이들 가까이에 있으면서 어릴 적의 부재(不在)를 갚아주고 싶어 하는 엄마 마음이 읽혔다. 아이들도 엄마를 쉽게 볼 수 있어 좋아했다.

“나도 힘들었지만, 아이들도 힘들었을 거예요. ‘애비 없이 자라서 그렇다’는 소리 듣지 않게 하려고, 옷 하나도 바르게 입도록 엄히 가르쳤으니까요.”

아이들도 엄마 마음을 알았다. 민주는 이제껏 엄마한테 말대꾸를 한 적이 없다. ‘우리 엄마한테는 그러면 안 돼’라는 생각이 은연중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리기만 할 것 같았던 아이들은 이제 독립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안 씨 가족에게 국토 종단은 제각각 자신의 길을 걷게 될 가족들을 단합시키고, 세상을 헤쳐 나갈 인내력과 강인함, 자신감을 키우는 장이 되고 있다. 벌써 키가 170cm에 달해 모델 같은 민주의 꿈은 스튜어디스. 재오는 검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재오는 “여행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게 된다”고 했다. 여행이 끝날 때 어떤 기분이 드느냐는 질문에는 “긴장이 쫙 풀리면서 허무해진다”고도 한다. 무언가를 어렵게 이룬 다음에 오는 허무를 벌써 알아버린 것일까?

사진 : 이창재
  • 200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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