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의 펜션 ‘생각 속의 집’ 설계한 건축가 민규암

“당신 생각 속의 집은 어떤 모습입니까?”

‘생각 속의 집’을 현실로 옮기면 어떤 모습이 될까?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마음속으로 꿈꾸는 집이 있게 마련이다. 경기도 양평에 있는 펜션 ‘생각 속의 집’은 건축가의 생각을 옮겨놓은 집이지만, 각자가 꿈꾸던 ‘생각 속의 집’을 현실에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예약이 꽉 차 있다. 토요일에는 11월 말까지 빈 방이 하나도 없단다.

낭만적인 카페와 맛집이 즐비한 양평의 6번 국도변을 따라가다가 산길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길로 들어서면 ‘생각 속의 집’이 나타난다. 앞뒤로 나지막한 산자락이 펼쳐지고 실개천이 졸졸 흘러내려 자연 속에 포근하게 안긴 것 같은 형상이다. 산비탈의 경사면을 그대로 살려 설계한 이 집을 보고 있으면 사람과 자연은 이렇게 공생해야 한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

‘생각 속의 집’은 건축가가 설계한 펜션이다. 1998년 첫 작품 ‘한호재’로 건축문화대상과 건축가협회상, 동아시아 건축가협회 아카시아 건축가상 등을 휩쓴 건축가 민규암 씨(40세). 흙과 바위로 꽉 찬 그의 이름 ‘규암(圭巖)’에서 건축가로서의 태생적 운명이 느껴진다.

‘생각 속의 집’에서 만난 그는 마침 동행한 사진기자와 구면이었다. 사진기자가 “3년 전에도 같은 옷을 입고 있었어요” 하자 “똑같은 옷이 다섯 벌이에요” 한다. 납작하고 심플한 블랙의 휴대전화, 밋밋한 구두가 그의 건축 컨셉트를 닮아 있었다.

그게 민규암이다. 화려한 것으로 치장하는 것을 싫어하고 최소한의 요소로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다. 자신을 애써 포장하려 하지도 않고, 작품 세계를 설명할 때에도 화려한 수사를 하지 않는다. ‘생각 속의 집’ 컨셉트를 묻는 질문에 “별거 없어요”라고 내뱉고 호탕하게 웃는 식이다.

1000여 평 대지에 자리 잡은 ‘생각 속의 집’에는 여섯 개의 방이 있다. 14평부터 36평까지 평수도 다양하고, 각 방마다 컨셉트도 제각각이다. 로즈마리, 라벤더, 카모마일 등 방 이름은 각 방의 후원에 심은 허브 이름을 따서 지었다. 숲 속 노천탕이 딸린 방도 있다. 숲 속에 폭 파묻힌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창문을 열면 나뭇잎이 손에 잡히는 침실에 누워 나지막한 산자락을 바라보며 잠들면 이보다 더한 휴식이 있을까 싶다.

각 방들은 서로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집이 만들어 내는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언뜻 어지럽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면 숨을 곳이 참 많은 집이라는 생각도 스친다. ‘생각 속의 집’은 TV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촬영지이다. 얼마 전 종용한 드라마 〈궁〉, 문근영겚窪例?주연의 멜로 영화 〈사랑 따윈 필요없어〉도 여기에서 촬영했다.





‘생각 속의 집’ 6개의 방은 평수도, 컨셉트도 제각각이다.

싸구려 콘크리트 블록이 만든 심오한 공간

민규암은 ‘전문가들이 좋아하는 건축가’로 통한다. 그에게 설계를 의뢰한 고객들은 하나같이 건축가이거나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생각 속의 집’ 또한 건설회사 임원 출신이 의뢰한 것이다. 건축주는 처음 전원주택을 생각했는데, 이곳의 정취를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펜션으로 설계 변경했다고 한다.

‘생각 속의 집’은 그간 민규암의 작품 세계를 엮은 사진집에서 따왔다. 전통 한옥의 느낌을 살린 ‘한호재’, 별을 바라보며 잠들 수 있는 ‘첨성재’, ‘SS하우스’ 등 이전의 작품 세계를 한 권의 책 〈생각 속의 집〉에 담았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민규암의 생각 속의 집’들이고, 이번 작품 ‘생각 속의 집’ 또한 그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

생각 속의 집이 현실에 그대로 만들어진 걸까? 민규암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생각 속의 집은 현실에 그대로 구현되지 않고, 구현될 수도 없습니다. 생각과 현실에는 괴리가 있기 때문이죠.”

자기만의 ‘생각 속의 집’을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유럽형 집으로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곳에 와 보고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민규암의 생각 속의 집은 단정하고 차분하다. 회색의 모노톤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고급스러운 갤러리를 연상시킨다. 회색 톤의 정체는 바로 콘크리트 블록이다. 한 장에 1000원짜리 블록의 변신이 놀랍다. 철근으로 감춰서 내장재로 쓰이던 싸구려 블록은 민규암을 통해 ‘열림과 닫힘’의 은유를 품는 의미 있는 존재로 거듭났다. 블록을 옆으로 납작하게 쌓아 만든 벽은 ‘단절’인 동시에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소통’ 공간이 된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했느냐는 질문에 호탕한 대답이 이어진다.

“블록에 관한 한 제가 세계 1인자일 겁니다.(웃음) 누가 저런 싸구려 재료를 쓰겠어요? 콘크리트 블록은 가장 현대적이고도 가장 경제적인 재료지요.”

이제 콘크리트 블록은 민규암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는 불쑥 한 바이올리니스트 이야기를 꺼낸다.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공연 도중 줄이 하나 끊어졌대요. 그래도 연주를 계속했죠. 두 번째 줄, 세 번째 줄이 끊어져도 연주를 해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재료에 연연하지 않고, 어떤 재료로도 원하는 작품을 구현해 내는 것이 진정한 건축가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기술과 평범한 재료로 편안한 집을 짓는 것. 이게 민규암의 집에 대한 철학이다. 그는 집을 호사스럽게 디자인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닳고 닳은 싸구려 볼펜이나 있는 듯 없는 듯한 공기, 질리지 않는 물 같은 게 그가 추구하는 건축 세계다.


그는 지은 지 30년 된 서울 여의도의 아파트에서 산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사 한 번 가지 않고, 리모델링 한 번 없이 살아왔다. 알루미늄 새시가 닳고 닳아서 삐걱거리고 집안 곳곳의 벽지가 너덜거리지만 그 공기 같은 익숙함이 좋단다.

민규암은 서울대 건축과를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건축대학원 설계과정을 마친 수재다. 7년간 일건건축사무소에서 현장감을 익히고 1998년 ‘토마건축’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첫 개인 작품 ‘한호재’에서 큰 상을 휩쓸었으니 앞으로의 행보가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건축가들의 라이프 사이클을 연구하고 있어요. 음악가나 미술가들은 첫 작품에 대작을 터뜨리고 하강곡선을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건축가들은 대개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립니다. 시나브로 실력이 늘다가 죽기 직전에 전성기를 누리죠. 저 아직 젊잖아요. 말년의 대작을 위해 준비 중입니다. 100년 후에도 존경받는 건축가가 되는 것, 그게 제 꿈입니다.”

사진 : 이창재
  • 200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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