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마임 축제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연기상 수상한 남긍호씨

소리 없이 강력한 메시지 전하는 마임이스트

세계적 마임 대회에서 본고장 유럽인들을 제치고 연기상을 수상한 마임이스트가 있다. 남긍호 씨(43세·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극단 호모루덴스 컴퍼니 대표)는 파트너 이진 씨(30세)와 함께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6일까지 프랑스 페리그에서 열린 미모스 마임 축제에서 작품 ‘4-59’로 연기상을 받았다. 올해로 24년째인 이 유서 깊은 대회에서 아시아인이 연기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심사위원단은 만장일치로 남긍호 씨 팀을 수상자로 결정하며 ‘동양적 환상을 넘어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연기’라는 평을 남겼다. ‘4-59’는 쓰레기통에 사는 두 사람의 삶의 여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배우이자 연출가로 이 마임극의 산파인 남긍호 씨는 이 극을 이렇게 설명했다.

“1999년 동숭동 제 자취방에서 구상한 작품이에요. IMF 한파가 몰아닥치고 세상이 참 암울하던 시절이었죠. 조그만 제 방에 앉아 있는데 우리네 삶이 꼭 쓰레기통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어요.”

타이틀 ‘4-59’는 그때 자취방 집 주소이기도 하다. 이번 수상을 기념해 8월 25일부터 27일까지 대학로 우리극장에서 이 작품이 앙코르 공연됐다. 막이 오르자, 무대에는 달랑 쓰레기통 2개만 보인다. 정적이 흐른 후 뚜껑이 열리고 두 명의 사내가 나타나 마치 날쌘 고양이처럼 쓰레기통 안과 밖을 넘나들며 순전히 몸짓으로 ‘말없는 대사’를 전달한다.

“쓰레기통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부조리한 상황을 말해주는 일종의 장치죠. 쓰레기통이라는 게 버리는 곳 아닙니까? 그런 이미지가 주는 상징성을 활용했습니다.”

쓰레기통에 갇힌 두 남자를 둘러싼 현실은 더 암담하다. 임신한 여고생이 몰래 아이를 출산하는가 하면, 거대한 로켓에 쫓겨 다니던 한 남자는 술을 잔뜩 먹고 쓰레기통 속에 머리를 처박고 구토를 한다. 이 연기는 호모루덴스 컴퍼니 소속 단원인 이준혁 씨(35세)와 김유진 씨(25세)가 맡았다.

“작품을 구상할 무렵, 여고생 출산 문제, 노숙자 문제 등이 불거졌었고, 로켓은 외향리 사건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렇다고 로켓이 반미 코드로만 읽히는 것은 부담스럽단다.

“로켓은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거대한 힘, 권위의 상징일 수도 있고, 전쟁에 대한 반대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남긍호 씨는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그런 관심을 계속 자신의 연극에 반영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작품이 시종 암울한 분위기인 것만은 아니다. 곳곳에 유머를 버무려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 작품 자체가 코미디 극이에요. 물론 부조리한 코미디지만 말이에요.”

일종의 ‘웃으면서 슬퍼지는’ 분위기의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작품 끝자락쯤에서는 삶에 대한 희망도 놓치지 않는다. 마임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팬터마임을 떠올리게 된다. 빨간 코 분장을 한 피에로가 과장된 손짓과 표정으로 이런저런 행동을 시늉 내는 식이다. 그런데, 그의 마임극은 좀 더 길고, 진지하다. “제가 하는 마임은 몸 전체를 사용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겁니다. 스토리가 있는 마임을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번 마임극도 공연 시간이 1시간이 넘는다.


사투리 못 고쳐 연극 포기한 후 마임에 눈떠

그의 출발은 연극이었다. ‘문제아 고교 시절’을 거쳐 부산 경성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예술적 끼가 넘쳤지만 무대에 서기엔 부산 토박이인 그의 사투리가 너무 완고했다.

“대학 졸업 공연으로 체홉의 ‘청혼’을 올렸는데, 제 사투리가 도저히 고쳐지지 않아서 아예 극 전체를 경상도 사투리 버전으로 바꾼 적도 있습니다. 5분마다 한 번씩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죠.”

사투리 때문에 ‘대사 없는 연극은 없을까’ 고민하다 마임에 꽂히게 됐다. 전부터 현대무용을 해와서 쉽게 적응이 됐다.


내친김에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8년 동안 있으면서 세계적 마임학교인 마르셀 마르소 마임컴퍼니에서 공부하고, 현지인들과 극단 활동도 했다. 프랑스 제8대학에서 실기 석사도 받았다.

1997년 귀국 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하면서 마임 극단을 창단했다. ‘호모루덴스’라는 극단 이름은 ‘놀이하는 인간’이란 그리스어에서 따왔다. 그의 예술관이 반영돼 있는 이름이다. 인간을 장난감에 비유한 〈레고 인간〉, 야구를 소재로 한 〈히트 앤 런〉, 인간 욕망의 두 얼굴을 다룬 〈프랑켄슈타인〉 등이 그동안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그는 예술가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열한 살 위 누나가 같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원)로 있는 현대무용가 남정호 씨다. 세 살 위 누나 남영호 씨 역시 현대무용가로, 프랑스를 본거지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부모님이 문득 궁금해진다.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셨고, 어머니는 평범한 전업 주부셨어요. 특별히 예술가 집안은 아니었습니다. 모두 6남매였는데, 저희들 셋만 예술 분야에 종사하고 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집 안에 늘 클래식 음악이 끊이지 않고, 예술 서적도 많았던 기억이 난다고.


같은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남씨 형제들은 이따금 한 무대에 서기도 한다. 오는 11월 예술의 전당에서는 남정호 씨의 현대무용극이 공연될 예정인데, 남긍호 씨가 마임이스트로 출연한다. 말이 넘치는 시대. 오직 몸짓만으로 무언의 대사를 이어가는 마임의 매력은 무엇일까. “연극이 소설이라면, 마임은 시라고 할 수 있어요. 인생의 희로애락을 단 4분 만에 압축해서 펼쳐 보일 수 있는 게 바로 마임이에요. 고도의 절제와 압축이 가능한 장르이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죠.”

하지만 시대는 더 많은 말을 요구한다. 설명하고, 또 변명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요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연극하겠다는 친구들 열에 아홉은 뮤지컬을 원해요. 화려한 물량 공세를 앞세운 뮤지컬도 필요하지만 공연 예술의 균형된 발전을 위해서는 마임 같은 것도 필요한데, 좀 아쉽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대에 외롭게 서있는 연극, 그중에서도 유독 더 배가 고프다는 마임의 매력에서 그는 헤어날 생각이 없다.

“지금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마임 할 겁니다.”

우선 9월 중순에 과천한마당 축제에서 프랑스 극단과 공동으로 〈요리의 출구〉라는 마임극을 올리기 위해 연습 중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소통’이다.

사진 : 이창재
  • 200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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