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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를 가위질하는 가족

대종상 편집상 김상범씨와 김재범 형제

지난 7월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열린 대종상 영화제. 영화 편집 부문에서 나란히 후보로 거명된 형제가 있었다. 김상범, 김재범 형제. <왕의 남자> 공동 편집자로 함께 수상 후보에 오른 이들 중 형 김상범만 상을 받았다. 그가 편집한 또 다른 영화 <사생결단>이 낙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생결단>은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작품으로 정평이 났는데, 여기에 경쾌하고 깔끔한 편집이 한몫했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최근 한국 영화의 웬만한 걸작들은 대부분 김상범 씨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대종상 7개 부문을 석권한 <왕의 남자>와 2004년 국내외 영화제를 휩쓴 화제작 〈올드 보이>가 모두 그의 손에서 마무리됐다. 그의 가족은 영화 편집의 역사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6·25 직후부터 30여 년 동안 줄곧 영화 편집 일을 하셨어요. 이만희, 임권택 감독과는 그분들의 데뷔작부터 함께하셨죠. 동생은 제 권유로 이 일을 함께 시작했고, 대부분 공동 작업을 해요. 대종상 수상에도 사실 동생 공이 큽니다.”

편집기사인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촬영 현장에 다니며 자연스럽게 영화를 접한 그의 원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임권택 감독 밑에서 조감독을 하며 감독 수업을 받던 그는 아버지가 은퇴하실 때쯤 방향을 바꿨다.

“아버지께서는 아들들에게 당신의 편집실을 물려주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시는 것 같았어요. 평생 그 일을 하셨는데, 은퇴 후 빈자리가 얼마나 크시겠어요. 마침 저도 늦은 결혼으로 고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했고요. 그렇게 아버지 일을 물려받은 지 7년 정도 됩니다.”

일반인에게 영화 편집이라는 장르는 아직 생소하다. 그러나 ‘촬영한 필름을 극의 전개와 순서에 맞게 창조적으로 배열하여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만 보더라도 편집이 영화 제작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마무리 작업, 말하자면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단계인 것이다. 편집기사는 이 과정에서 감독과 관객 사이 소통을 돕는 교량 역할을 한다.

“감독이 생각하는 바를 관객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편집 작업입니다. 바둑을 둘 때도 훈수를 두는 사람은 한 발 떨어져 있다보니 큰 흐름이 더 잘 보이지 않습니까. 저도 감독의 생각을 정리, 관객이 영화를 쉽게 읽을 수 있는 고리를 찾아주는 거죠.”


이만희, 임권택 감독과 일한 아버지로부터 편집실 이어받아

김상범, 김재범 형제.
일의 성격상 감독의 색깔을 읽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때문에 자신이 작업했던 감독들과의 교분이 두터운 편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많은 작품을 함께 한 박찬욱 감독은 눈빛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 편집 데뷔작이었던 <미술관 옆 동물원>의 이정향 감독과의 인연은 그녀의 차기작 <집으로…>에서도 이어졌고, <박수칠 때 떠나라>를 감독한 장진이나 <황산벌>,<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과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란다. 이번 대종상에서 그에게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사생결단>의 최호 감독은 까다로울 거라는 선입견과 달리 의견이 너무 잘 맞아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감독과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하고 조율해 편집을 하죠. 그런 점에서 제가 감독 수업을 받았던 게 큰 도움이 되곤 합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중간, <새드무비>에서 함께 작업했던 권종관 감독이 편집실에 들어왔다. 감독에게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는 모양새가 살가운 형과 아우 사이 같다. 김상범 편집실에 작업 요청이 쇄도하는 것은 그가 명실 공히 첫손 꼽히는 편집기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영화를 읽어내는 남다른 감성과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 아닐까? 요즘 한창 작업 중인 작품만 해도 세 편. 박찬욱 감독의 <사이보그>와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 조근식 감독의 <여름 이야기>가 그것이다.

“한번에 2~3편을 함께 진행하는 것은 예사예요. 빠르면 2주, 보통은 두 달 정도씩 시간이 걸리지요. 일에 치여 살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올해는 일복이 많은지 쉴 틈이 없네요.”

아무리 바빠도 그는 밤샘 작업은 하지 않는다. 아침 10시 반에 출근해 7시 전에 일을 마치고, 휴일에는 반드시 휴식을 취한다. 이렇게 리듬을 지키며 일을 해야 질 높은 작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은 가끔 마시지만, 담배는 끊었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편집 작업이라는 게 워낙 고도로 집중해야 하는 일이에요. 과로하면 도리어 효율이 떨어질 수 있어요. 앞으로도 죽 계속해야 할 일이니 자기 관리가 중요하지요.”

영화 편집 대선배인 아버지 김희수 씨(오른쪽)와 함께.
가장 애착이 가는 영화 하나만 뽑아 달라고 하니, 그는 한참 동안 머뭇거린다.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 있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공동경비구역 JSA>는 시나리오 초고 단계부터 그가 직접 검토했다. 이 영화는 특히 그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대본에 없던 장면이 들어갔다.

“영화상 긴장을 조성하는 신이 부족한 것 같아 총격전이 벌어지는 장면을 제안했지요. 촬영이 끝나고 제작비도 소진한 상황이었지만, 제작사에서 비용을 지원해 줘 100여 커트를 추가로 찍었습니다.”

그의 가족들에게 영화란 생활 그 자체다. 그와 동생이 아버지의 편집 작업을 지켜보며 성장했는데, 이제는 초등학생인 그의 두 아들이 아빠 일에 한창 관심을 보인다.

“아버지는 요즘도 제 작업을 살펴보시며 조언을 해주세요. 예전과는 제작 방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당신의 조언을 많이 참고하는 편이에요. 아들에게도 제 일을 자세히 설명해 줘요. 그 옛날 아버지가 하신 것처럼 말이에요.”

후배 양성을 위해 아카데미에서 강의도 하는 그는 앞으로의 영화 제작 환경에 대해 꽤나 낙관적인 입장이다. 영화 편집 일이야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정당한 대가를 얻는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작업한 영화를 극장에서 볼 때, 예상하거나 의도한 대로 관객이 반응하면 무척 보람 있고 감사해요. 하지만 결코 안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틈틈이 시나리오도 쓰면서 감독 준비도 하고 있어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평생토록 영화 일을 할 거예요.”

사진 : 이창주
  • 2006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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