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부진 떨치고 재기에 성공한 박세리

“아, 이것이 행복인가요”

글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사진제공 : CJ
“인생의 어떤 경기에서든 승리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이겨낸 후 얻을 수 있다.”

남아공의 전설적인 골퍼 게리 플레이어의 말이다. 그는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은 역경을 즐길 줄 안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챔피언 등극보다 더 어려운 재기에 성공한 박세리에게 들려주는 말과 같다. 지난 6월 12일,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에 싸여 있을 때 박세리는 맥도날드 챔피언십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2년 만의 우승. 계속되는 부진이 가져온 고난과 악몽을 이겨 낸 다음에 얻은 인간 승리였다.

1998년 우리나라가 IMF 환란에 빠져 있을 때 LPGA US 오픈에서 우승한 박세리는 온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다. 양말을 벗은 채 하얀 맨발을 보여 주며 투혼을 불태우던 박세리.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 <타임>은 그를 표지에 등장시키며 한국의 골프와 한국의 힘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를 필두로 한국의 여자 골퍼들은 차례로 LPGA의 우승컵을 안았고, 이제 LPGA는 한국 선수들의 무대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후배들이 약진하는 가운데 박세리는 2004년부터 깊은 침잠에 빠졌다. 오랜 시간이었다. 또다시 우승컵을 안기까지 763일. 하루하루가 극기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난 6월12일. 올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맥도날드 챔피언십이 열린 미국 메릴랜드주 하브드그레이스 불록골프장(파72).

박세리는 4라운드 합계 8언더파 280타로 캐리 웹과 동타였다. 연장전 첫 번째 홀. 18홀(파4·385야드)에 들어선 박세리. 세컨드 샷을 앞두고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유틸리티 클럽을 꺼내 들었다. 평소 같으면 아마도 아이언 4번이나 3번을 꺼내 들었으리라. TV를 보고 있던 팬들과 중계를 하던 전문가들은 순간 의아했다. 드라이버 샷 이후 핀까지 거리가 201야드. 당연히 정확도가 높은 아이언을 꺼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테일러메이드사의 로프트 22도짜리 유틸리티 클럽을 빼내 든 것이다.

‘도 아니면 모’였던가. 우드로 볼을 잘 세우는 김미현이 우드 클럽을 꺼내면 놀라지 않았겠지만 박세리가 우드를 잡다니. 그린 왼쪽에 워터 해저드가 있어 자칫 훅이 걸리면 빠질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박세리의 클럽이 허공을 가르자 볼은 그린을 맞고 구르더니 깃대에서 10㎝ 정도 떨어진 곳에 멈췄다. 2년 1개월 긴 슬럼프에서 그를 탈출시킨 한 방이었다. 어둡고 지루한 터널에서 빠져나와 ‘골프 퀸’의 명성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박세리는 이 순간 ‘아, 골프가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매일 아침, 잠에서 깰 때마다 ‘왜 골프를 해야 하나’ 고통스럽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고 한다. 그에게는 맨발 투혼 끝에 우승한 1998년 US오픈 때보다 더 벅차고 가슴 뿌듯한 순간이었다. 눈물을 쏟으며 우승컵을 품에 안고 혼자 살짝 ‘아, 이것이 행복인가’하고 중얼거렸다. 어렵게 전화로 연결된 그에게 “왜 눈물을 흘렸냐”고 물었더니 “제가 지치지 않도록, 또 포기하지 않도록 항상 진심으로 응원해 준 팬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승승장구할 때는 몰랐는데, 어려움을 겪고 보니 같은 마음으로 곁에서 지켜 준 팬 덕분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2년여 전인 2004년 5월, 박세리는 미켈롭울트라오픈 우승으로 ‘명예의 전당’ 입회(2008년) 자격을 확정했다. 예상보다 빠른 목표 달성이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부진이 시작됐다. 슬럼프 조짐은 사실 그 전부터 있었다. 2003년 사이 베이스클래식 때 1, 2라운드에서 73타와 78타를 쳐 컷 탈락한 이후 상상하기도 싫은 ‘오버파 스코어’가 ‘언더파 스코어’보다 더 많아졌다. 2003년 삼성 월드챔피언십에서는 최종일 8오버파 80타를 쳐 출전 선수 20명 가운데 맨 꼴찌. 이후 그는 컷 탈락을 밥 먹듯이 했다.


석 달간 완전히 골프와 절연

2004년 5월 이후로는 아예 제 궤도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급기야 지난해 초, 한 달간 투어 출전을 중단했고 작년 가을에는 ‘메디컬 익스텐션(병가)’을 LPGA투어 사무국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측근에 ‘골프 하기 싫다’ ‘쉬고 싶다’는 말을 종종 건네면서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곤 했다. 지난해 기자회견에서는 “온통 골프뿐인 생활에 지쳤다” 며 “골프가 아닌 다른 즐거움을 찾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1년 후배인 한희원이 결혼 후 더 안정적인 선수 생활을 하자 몹시 부러워했다고 한다. LPGA 데뷔 3년 차이던 지난 2000년 사귀기 시작한 중국계 홍콩인 남자친구와 부모의 반대 끝에 결별한 후였다.

LPGA 투어에 입문한 후 오로지 골프에만 매달려 온 박세리.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도 다들 골프 얘기만 했고 쉴 때는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고 ‘외로움’을 토로하곤 했다.

“애니카 소렌스탐은 훈련도 열심이지만 쉴 때는 골프 생각은 제쳐두고 확실하게 쉬는 것 같다”면서 골프밖에 모르는 자신에 대해 자조 섞인 한탄도 했다. 어느 정도 목표를 이룬 데다 결혼 적령기에도 이르렀으니 남자친구가 그리웠을 지도 모른다.

지난해 10월, 그는 한국에 들어와 대전 집에 머무르면서 클럽을 완전히 손에서 놓았다. 어머니와 함께 산에 다니며 마음을 추슬렀다. 3개월 동안 골프와는 무관하게 시간을 보낸 후 플로리다로 향했다. 그때부터는 오로지 재기만을 꿈꾸며 골프에 전념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청소하고 아침을 먹은 후 8시 30분에 연습장에 도착해 연습 볼을 친 후 퍼팅 연습. 그리고 톰 크리비 코치와 함께 10시부터 실전 라운드로 스윙 체크, 그리고 다시 연습장에 가서 잘못된 스윙을 점검했다. 오후에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은 후 5시까지 헬스를 하고 저녁식사 후 8시부터 10시까지는 무술 도장에서 정신과 체력 훈련을 받았다.

태권도와 격투기를 배웠는데 태권도를 배운 지 두 달 만에 노란 띠를 딸 만큼 그의 집중력은 무서웠다. 순발력을 기르기 위해 킥복싱도 했다. 집에서 먼 무술 도장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찾을 정도로 성실했다. 훈련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서도 윗몸일으키기 200개, 팔굽혀펴기 100개를 반드시 해야 잠을 잘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하지만 어인 일인가. 훈련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지만 나아진 게 없었다. 첫 대회에서 컷은 들었지만 40위권. 이후 두 차례 컷오프 됐고 4월 마지막 주 대회에서는 손목을 다쳐 기권을 해야 했다. 퍼팅이 불안해 상위권으로 치고 오르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집과 훈련장 외에는 눈도 돌리지 않고 오로지 재기를 위해 땀을 흘렸다. 4개월여 동계 훈련을 하면서 가까운 디즈니랜드 한번 찾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조차 “지독하다”고 말할 정도니 이전의 박세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2년 만에 우승을 거머쥔 맥도날드 챔피언십이 열린 미국 메릴랜드주 골프장에서.
그의 맥도날드 챔피언십 우승 때 “과연 오랜 슬럼프를 벗어나 재기한 것인가? 아니면 반짝 탈출인가” 의구심을 나타낸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7월 초 US 여자오픈에서 미셸 위와 함께 공동 3위에 오르면서 그는 자신이 완전히 부활했음을 세상에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까다로운 코스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샷과 자신감을 보여 준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환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지난해 손가락 부상으로 고생이 많았고, 장기 슬럼프의 원인이 됐다. 그런데 이제 샷 감각이 돌아왔다. 완전히 회복됐다. 내 게임에 확신이 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골프를 아직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난 행운아다. 휴식을 취하면서 그걸 깨달았다. 이런 것을 배우는 데 무려 8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토로했다.

지난 맥도날드 챔피언십에서 드라이버 비거리는 평균 265.88야드에 이르러 예전의 장타력이 돌아왔음을 알렸다. 페어웨이 안착률은 78.6%, 그린 적중률은 73.6%로 전성기 때보다 더 좋은 기량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인간 승리 역사는 계속 쓰여질 듯하다.



[일문일답] 결혼은 목표달성한 뒤 생각할래요

우승을 확정짓고 나서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엄마, 아빠 생각이 가장 먼저 났지요. 그리고 부모님이 써준 편지가 머리를 스쳤습니다. ‘내 딸이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 엄마는 때론 너의 ‘볼’이 돼주고 싶고, 때론 너의 ‘채’가 되어 너의 힘든 짐을 덜어 주고 싶다. 허나 이것은 꼭 너에게만 있는 시련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렴. 우리가 모르는 어떤 사람에게도 이런 힘든 시간은 올 수 있는 것 아니겠니? 스포츠 선수든 사업가든 또 공부하는 사람이든 모두 어렵고 힘든 시간이 있는 법이지’라는 구절이.

어떤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나?
우승하겠다는 욕심은 없었어요. 다만,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것은 늘 생각하고 있었어요. 팬들의 격려처럼 마음을 편하게 먹었기 때문에 혼자 신나서 경기를 치렀습니다.

언제 우승 가능성을 점쳤나?
솔직히 리더보드에 올라간 줄 몰랐어요. 기대도 안 했죠. 17번 홀 버디를 하고 막연히 기회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 홀 보기를 했을 때도, 웹과 연장에 나가게 됐을 때도 전날 그랬던 것처럼 그냥 무덤덤했어요.
그런데 저 스스로도 놀랐던 것은 플레이 그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연장전 세컨 샷을 성공시킨 뒤 너무 기뻐 펄쩍펄쩍 뛰었죠. 스무 번 넘게 우승하면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며 저도 놀랐습니다. TV를 보신 팬들은 어리둥절했을 거예요.

어느 때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나?
병가를 내고 잠시 귀국했을 때죠. ‘박세리는 갔다’ ‘주말 골퍼 스코어를 친다’ ‘아마도 남자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등등 소문이 무성했어요. 저는 잠시 슬럼프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일부 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저를 생각해 주니까 비난도 하겠지’하고 받아들였어요. 어떻게 보면 고마운 분들이죠. 그것조차 늘 격려가 됐으니까. 잊혀지는 것보다 좋은 것 아닌가요?

대전 집에서 쉴 때 무엇을 했나
아버지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시는 주지 스님이 한분 계신데 그분은 저의 경기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알고 계셨어요. 우승 예견까지 해주시는 데다 마음과 몸을 다스리는 법도 가르쳐 주시곤 했죠. 어머니와 산행을 하면서 절에 가면 왠지 마음이 편안했어요. 제겐 많은 도움을 준 것이 사실입니다.

직접 요리도 한다던데
잘하지는 못해요. 늘 엄마가 해주셨으니까. 하지만 망고 피자, 김치콩나물죽 같은 음식은 직접 만들어요. 인스턴트식품이나 외식보다는 직접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팬들이 남자친구에 대해 궁금해하던데
저도 결혼 적령기니까 남자친구도 만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죠. 하지만 이제 겨우 감을 잡았으니 다시 한 번 LPGA 무대를 평정하고 싶어요. 제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한 뒤 생각할래요.
  • 2006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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