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 & Woman | 북 치고 장구 치며 세계 여행 ‘공새미 가족’

공새미는 김영기 씨의 제주도 고향 마을에 있던 샘물 이름이다. “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 이 샘물은 주민들에게 생명수 구실을 했죠.

우리 가족도 이처럼 사랑의 샘물이 끊이지 않도록 해 주변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전해 주자는 의미입니다.”

사물놀이 가족. 왼쪽부터 엄마 강성미 씨, 큰딸 민정 양, 막내 현정 양, 아빠 김영기 씨, 아들 민수 군.
아빠와 엄마는 북과 장구를 치고, 아이들은 징과 꽹과리로 화답하며 사랑을 나누는 가족이 있다. 일가족으로 구성된 사물놀이 패 ‘공새미 가족’이다. 아빠 김영기 씨(46세)와 엄마 강성미 씨(44세), 큰딸 민정(18세), 아들 민수(15세), 늦둥이 막내딸 현정이(8세).

이들은 자기들끼리만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소외된 이웃을 찾아 공연을 펼치는가 하면 아예 악기를 싸들고 1년 가까이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길거리 공연을 했다. 최근엔 이때의 경험을 담은 책 ‘북 치고 장구 치며 떠난 공새미 가족의 세계여행’을 펴내기도 했다. 304일 동안 31개국 100개 도시를 돌며 보고 느낀 것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김영기 씨 가족이 사물놀이 패를 결성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민정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사물놀이를 배우게 됐어요. 그전까지 음악을 전공하겠다며 바이올린을 열심히 배우던 아이가 사물놀이를 접하더니 푹 빠지는 거예요. 저도 아이들 사진 찍어 주느라고 몇 번 따라다녔는데 그 소리가 참 좋았어요.”

그러나 중학교에 진학한 후 점차 사물놀이에서 멀어지는 민정이를 보고, 김영기 씨는 ‘우리 가족이 다 함께 사물놀이를 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가족이 함께할 ‘거리’를 찾아 다양한 시도를 해 오던 중이었다. 등산이나 마라톤을 함께 해봤지만 서로 체력이 달라 번번이 실패했다.

아빠가 민정에게 먼저 제안했다. “민정이가 선생님이 돼서 우리 가족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쳐 주라. 대신 아빠는 매주 이틀 영어, 수학을 가르쳐 줄게.”

피아노 강사 경험이 있는 엄마가 장구를, 민정이가 상쇠 역할을 하는 꽹과리를 맡았다. 민수는 북을 탐냈지만, 리듬에 자신 없어 하는 아빠에게 양보하고 징을 맡았다. 막둥이 현정이도 꼬마 장구로 동참했다.

가족들은 매주 일요일 집 근처 중랑천 변에 나가 연습을 했다. 도시락을 싸 가지고 하루 종일 야외에서 꽝꽝, 찡찡 ‘소음’을 내다 보면 하루해가 저물었다. 고된 훈련이라기보다는 가족 피크닉에 가까웠다. 이따금 징을 울려야 하는 민수는 식곤증에서 오는 노곤함을 못 이기고 채를 붙잡고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그래도 가족이 함께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다 즐거움이었다.
아빠 김영기 씨의 회고다. “약속대로 민정이한테 영어, 수학을 가르쳐 주는데, 제 자식 가르치는 게 정말 어렵더군요. 처음엔 ‘그것도 모르느냐’고 면박도 주고 책도 몇 번 날아갔죠. 그러다 일요일이 되면 민정이한테 사물놀이를 배우며 꼼짝없이 당하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서로 존중해 주면서 배우고 가르쳤죠. 하하.”

6개월쯤 지나자 제법 ‘소리’가 만들어졌다. 그 다음엔 전문기관에서 연수를 받으며 실력을 쌓아 나갔다. 연습 장소도 집 근처 공원으로 바꿨다. 공원 근처에는 뇌성마비 복지관이 있었다. 사물놀이를 연습하면 이들이 아주 좋아라, 하고 들어 주었다.

“하루는 그곳 학부모 중 한 분이 이매방 선생의 북 공연 티켓을 가족 수대로 끊어서 보내 주셨어요. 그것도 로열석으로요.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일 많이 하라’는 메모와 함께요.”

강성미 씨는 “정말 그때 감동했다”며 “막연히 우리의 재주를 좋은 일에 써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자 가족은 지하철 공연에 도전했다. 여러 사람 앞에 서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가족끼리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신명나는 화음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사람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때 ‘공새미’라는 가족 이름도 지었다. 공새미는 김영기 씨의 제주도 고향 마을에 있던 샘물 이름이다.

“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 이 샘물은 주민들에게 생명수 구실을 했죠. 우리 가족도 이처럼 사랑의 샘물이 끊이지 않도록 해 주변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전해 주자는 의미입니다.”

사물놀이로 가족 간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중에도 김영기 씨 가슴속에는 남모를 꿈이 자라고 있었다. ‘세계일주 여행’이었다. 어릴 적부터 꿈꿔 왔던 일이지만 생활에 쫓겨 잠시 잊었던 꿈은 한 신문 기사를 보면서 불이 당겨졌다. 40대 서울시 공무원이 온 가족과 함께 세계일주 여행을 떠난다는 기사였다. ‘아, 40대 중반에도 갈 수 있구나’ 하는 것이 무슨 깨달음처럼 왔다고.

당시 대기업 부장으로 있던 그는 IMF 와중에도 승진될 정도로 인정을 받았지만, 경쟁 일변도인 회사 분위기에 회의가 많았다. ‘이렇게 계속 살면 물질적인 안정은 좀 얻겠지만 그게 다일까?’하는 물음이 가슴속에서부터 계속 올라왔다. 그러다 슬쩍 아내에게 내심을 비췄다. 의외로 아내는 남편의 뜻을 지지했다. 강성미 씨는 “남편 평생 꿈인데 밀어 주고 싶었다”고 그때 심정을 말한다. 또 “자식들한테 돈 몇 푼 더 물려주는 것보다 세상 살아가는 힘을 길러 주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었다”고.

아내의 허락을 받은 김영기 씨는 3년에 걸쳐 치밀하게 세계 여행을 준비했다. 아이들도 대륙 하나씩을 맡아 준비에 동참했다. 민수는 파워 포인트를 배운 후 자신이 맡은 남미 대륙에 대한 정보를 한 달에 한 번 가족회의 때 멋지게 프레젠테이션했다.
공새미 가족은 각종 행사의 단골 초대 손님이 됐다.
드디어 2004년 2월 공새미 가족은 세계일주 여행에 올랐다. 인도에서부터 시작해 아프리카와 유럽, 미국, 남미, 호주 등을 잇는 304일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1인당 20kg이 넘는 짐을 들고 평균 3일에 한 번씩 짐을 싸야 하고, 아프리카에서는 50시간 동안 기차를 타야 하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긴장의 연속이다 보니 때로는 갈등이 폭발해 큰소리가 오간 적도 있었다. 그런 과정까지 다 거쳐 가족 간의 정은 더욱 깊어졌다고.

사물놀이는 여행을 더욱 빛나게 해 준 보물이었다. 세계 각국 사람들과 더 진솔하게 통하는 매개체가 되었고, 교민들의 향수를 달래 주기도 했다. “사물놀이가 브라질 삼바 리듬과도 그렇게 잘 통할 수가 없어요, 아프리카 엉덩이춤과는 또 얼마나 잘 어울리는데요.”

가족들은 10개월간의 여행 경험을 홈페이지(www.gongsaemi.com)에 꼼꼼히 올렸다.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가족들은 여전히 행복하다. 여행 다녀오느라 친구들보다 한 학년 늦어진 아이들은 잘 적응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인 민수는 과외 한번 받지 않고 지난 중간고사에서 반 1등을 했고, 전교 부회장으로 뽑혔다. 고등학교 2학년인 민정이도 반에서 상위권 성적이고,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 현정이는 언니와 오빠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집안의 마스코트이다. 아빠 김영기 씨도 지난해 8월부터 한국리더십센터 전문위원으로 취직해 리더십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공새미 가족은 각종 행사의 단골 초대 손님이기도 하다. 불러 주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가족의 소중함을 사물놀이의 신명과 함께 들려준다. 인터뷰가 있던 지난 6월 3일에도 광운대에서 열린 ‘한별예술제’에 초청됐고, 저녁에는 성동구 주민들의 ‘가족사랑 페스티벌’에 초대돼 한바탕 신나는 공연을 펼쳤다. 대부분 가족 단위인 관람객들은 “얼쑤” 하고 추임새를 넣어가며 박수 치고 즐거워했다.

강성미 씨는 “우리 가족도 다른 가족처럼 때론 싸우고 다투고 그러면서 사랑하며 살아가요.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이 함께한다면 행복한 거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글 박운미 TOP CLASS 객원기자 | 사진 정현미
  • 2006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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