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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ccess | 노점을 100억대 사업으로 키운 꼬치 아가씨-닭 꼬치 전문점 (주)COF 대표 장정윤

고객들 입맛을 반영해 조금씩 바꾸다 보니 어느 날 기가 막히게 맛있는 닭 꼬치가 나왔다. 현재 그의 가맹점에서 파는 쫀득꼬지, 화끈꼬지, 맵싹꼬지 등이 다 고객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진 메뉴들이다.
대학 1학년 때 300만원으로 시작한 노점을 전국 90개 가맹점과 물류공장까지 갖춘 외식 업체로 키운 억척 아가씨가 있다. 닭 꼬치 전문점 ㈜ COF의 장정윤 대표(29세). 20대 사장인 그의 올해 매출 목표는 150억 원이다.장 씨가 노점에서 닭 꼬치를 팔기 시작한 것은 부산 동주대학 관광통역과 1학년 때이던 1997년이었다. 어학연수 자금을 모으겠다고 시작한 일이 오늘에 이르렀다.

“사실 수능 끝나자마자 우유 배달을 한 것이 저의 첫 번째 사업이었어요. 흰 우유만 가지고는 소비자들이 지겨워할 것 같아 일부러 포도 주스나 딸기우유 같은 다른 종류의 음료들을 같이 넣어 주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우유 배달만으로 한 달에 200만 원도 넘게 벌었으니까요.”

여러 브랜드 제품을 함께 취급하면서 고객 취향에 맞춰 배달하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하니 점점 더 돈이 많이 벌렸다. 아이디어만 좋으면 돈 버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자신감을 이때 얻었다고 한다. 대학 입학 후 그는 수익성이 더 나은 일을 찾다 길거리 포장마차 앞에서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게 됐다. 닭 꼬치를 파는 노점이었다.

“어머니께 노점상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딱 세 가지를 물어보셨어요. ‘어디서 할 거니? 노점상은 힘들다던데? 뭘 팔 건데?’제가 ‘ 닭 꼬치를 팔 거예요. 힘들지만 다들 하는 건데 뭐’라고 대답하자 어머니가 곧바로 리어카를 주문해 주셨어요. 우유부단한 제가 마음이 바뀔까 봐 쐐기를 박으신 거예요. 그래서 꼼짝없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웃음)”

노점을 하면서도 세련되고 화려하게 보이기 위해 그는 포장마차를 야광 색으로 칠하고 옷도 튀는 색깔로 밝게 입었다. 기존의 닭 꼬치가 뼈를 발라내느라 먹기 번거롭다는 점을 감안해 뼈 없는 닭 꼬치를 팔았다. 산뜻한 노점 모습에, 먹기 편한 닭 꼬치라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였다.


대학 신입생 때 노점상으로 출발
처음 그는 맛을 내는 데 별로 자신이 없었다. 솔직하게 손님들에게 “어때요? 먹을 만해요?” 라고 항상 물어봤다. 앳된 얼굴의 젊은 아가씨가 그 일을 하는 게 기특했는지 모두들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마늘이 더 들어갔으면 좋겠다”“소스를 이렇게 바꿔 보라”는 등 갖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고객들 입맛을 반영해 조금씩 바꾸다 보니 어느 날 기가 막히게 맛있는 닭 꼬치가 나왔다. 현재 그의 가맹점에서 파는 쫀득꼬지, 화끈꼬지, 맵싹꼬지 등이 다 고객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진 메뉴들이다. 젊은 나이에 노점상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바로 옆에 대형 치킨집이 들어서고, 누군가 밤사이 포장마차에 오물을 끼얹는 일도 예사였다. 매출이 올라가자 시샘하는 사람도 많았다.

“작은 평수라도 어엿한 점포를 갖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결국 사채를 끌어다 점포를 냈는데 주위에선 배짱 좋다고 혀를 내둘렀죠. 하지만 저는 그만큼 확신이 있었어요.”

닭 꼬치를 초벌구이하고 소스를 바른 후 가게에서는 한 번 더 구워 팔기만 해도 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가 만든 닭 꼬치를 팔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에게 재료를 대주고 노하우를 전수했다. 자연스레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확장된 것이다.

부산 동아대 앞에서 시작한 노점이 닭 꼬치 전문 브랜드 ‘꼬지필(㈜COF)’로 발전해 첫 가맹점을 연 것이 2001년. 2003년에는 서울 대학로로 본사를 이전하고, 지난해 10월에는 퓨전 덮밥전문점 ‘THEUP BAB(덮밥)’까지 론칭했다.

“사장이 된 후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어요. 좋은 점은 잘난 척할 수 있다는 거죠.(웃음). 싸구려 옷을 입어도 으레 비싼 옷이라고 생각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요. 다른 기업의 경영자들과 만나는 일이 잦아져 매일매일 다른 세계를 접하며 공부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게 너무너무 즐겁죠. 나쁜 점은 사업의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에요. 동업에 실패하기도 하고, 직원들이 다치기도 하는 등 힘든 일도 많이 겪었지요.”

말은 이렇게 해도 어려울 때마다 더 힘이 솟는 듯했다. 가녀린 모습이지만, 에너지가 넘쳤다. 그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며 “직원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CEO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회사를 위해, 직원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는 순간, 스스로 ‘야, 장정윤 너 참 대단하다’ 하고 스스로 감동을 한단다. 장 씨는 성철 스님을 존경하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스칼렛 오하라의 도도함과 자신감, 그리고 끈질긴 생활력과 긍정적인 성격을 닮고 싶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성철 스님의 ‘자기를 속이지 말라’라고 하신 말씀을 늘 생각해 왔어요. 자기는 할 수 없다고 스스로 규정짓거나 제약을 두지 말라는 거죠. 저의 경쟁 상대는 빌 게이츠입니다. 빌 게이츠도 한때는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을 텐데 왜 빌 게이츠는 되고 나는 안 되는가, 나도 할 수 있다고 믿고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중요해요.”

그의 꿈은 자신이 없어도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어 놓고, 계열사를 계속 만들어 자질 있는 직원들이 사장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컴퓨터에 유서를 저장해 놓고 수시로 업그레이드를 한다고 한다.

“산다는 건 죽는다는 것이다.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고 축복이기에 내가 사랑한 모든 이들이 나의 죽음에 슬퍼하지 말았으면 한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내가 선물한 삶을 너는 후회 없이 살았느냐’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네’라고 답하고 싶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하느님의 진리인 모두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따르고자 노력했다.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니까….”

이렇게 시작되는 그의 유서에는 자연사, 사고사 등으로 죽은 뒤 상황에 따른 시신 수습 문제와 장례 절차, 재산 분배 그리고 본인 소유의 주식 처리 문제에 관한 사항들이 소상하게 적혀 있다.

“CEO가 그 회사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CEO가 없다고 회사가 흔들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욕심 많은 사장들이 많은데, 저는 그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늘 마인드 컨트롤을 해요.”

‘영원히 살 듯이 꿈을 꾸고 내일 죽을 듯이 하루 보내기’

바로 그의 가슴에 적혀 있는 좌우명이다.
글 추명희 TOP CLASS 기자 | 사진 정현미
  • 2006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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