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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핸드백, 우리가 만듭니다” SIMONE 명품 제조업체 시몬느 박은관 대표

“경험도 없는 제가 오너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자가 되는 게 내키지 않았어요. 3년 정도 바닥에서부터 일하며 사회생활을 익히고 싶었습니다.”
핸드백 제조업체 ‘시몬느’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하다. 버버리, 코치, 마크 제이콥스, 셀린느 등 30여 군데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의 핸드백을 이 회사가 만들기 때문이다. 2000년에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명품업계의 ‘큰 손’ 루이비통모에에네시(LVMH)그룹이 스스로 찾아와 7개 브랜드의 가방 제작을 맡겼다. 지난해 이 회사에서 수출한 고급 핸드백의 매출이 2억 5,000만 달러(약 2,375억 원)에 이른다.

한국과 중국의 광저우, 라이저우, 칭다오, 그리고 인도네시아 공장 등 4군데 공장에서 1만여 명이 일하고 있다. ‘made in China’ 표시가 있는 명품 가방도 알고 보면 시몬느의 중국 공장에서 만든 게 대부분이다. 경기도 의왕시의 본사에는 평균 10년 이상 경력을 지닌 직원 220명이 일하는데, “직원 220명의 핸드백 디자인과 제조 경력을 모두 합하면 2,700년이 넘는다”며 “장인 정신으로 세계 최고의 핸드백을 만들고 있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렇다고 시몬느를 그저 명품 가방을 주문받은 대로 만들어 주는 하청공장으로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1990년대 초 단순한 하청생산인 OEM 방식에서 벗어나 디자인에까지 참여하는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세계 시장에서 시몬느는 공장이 아닌 풀 서비스 회사로 불립니다. 소재와 디자인을 제안하는 것은 물론, 컨셉트부터 가격까지 전문적인 조언을 해주는 수준에 이르렀지요.”

박은관 대표는 핸드백 제조업계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꼽힌다. 그가 시몬느를 창업한 것은 서른두 살 때인 1987년. 연세대 독문과를 졸업한 후 핸드백 제조업체에 들어가 5년 동안 일하며 초고속 승진해 부장까지 오른 후였다. 그가 중소기업을 선택한 내력이 특이하다. 그의 아버지는 해운업계의 실력자로, 원양어선 열두 척을 가지고 조선소와 냉동 공장, 어망 공장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사업이 방대해 형제들은 각각 하나씩 가업을 이었다. 그러나 그는 생각이 달랐다.

“경험도 없는 제가 오너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자가 되는 게 내키지 않았어요. 3년 정도 바닥에서부터 일하며 사회생활을 익히고 싶었습니다.”

일 배우기에 좋을 것 같아 중소기업을 선택한 그는 입사 1년 6개월 만에 대리, 이후 6개월 만에 과장, 다시 1년 만에 차장, 또 1년 6개월 만에 부장이 되었다. 부장이 됐을 때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1987년 시몬느를 창업했을 때의 박 대표(왼쪽에서 네 번째). 해맑은 웃음이 인상적이다.
“제가 입사했던 1979년부터 1980년대 초까지는 신발, 옷, 가발, 가방 등 우리나라 경공업 제품이 외국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릴 때였어요. 가격 경쟁력이 높고 품질도 좋았으니까요. 신입 사원 때는 1년에 30만 달러 주문을 받았는데, 다음 해에 300만 달러, 그다음 해엔 1,200만 달러로 늘어났죠. 제가 따낸 수출물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다 보니 밑에 어시스턴트를 붙일 수밖에 없고, 자꾸 승진을 시킬 수밖에 없었어요(웃음). 부장 때 제가 처리한 주문량이 연 7,000만 달러였으니까요.”

3년 정도 예상하고 들어갔는데, 어찌나 일이 재미있고 신이 나는지 세월 가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7년 후 독립하면서 자신이 잘 아는 분야인 가방 제조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봉제업은 이제 사양 산업”이라며 극구 말렸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동안 해외 영업을 총괄하며 명품의 위력을 실감했기에 명품 제조 쪽으로 방향을 틀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명품 가방에 대한 세계 시장의 수요는 급성장하는데, 유럽의 제조 기반이 흔들리고 있었어요. 45세 이하 가방 기능장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젊은 사람들이 제조업을 기피하는 분위기 때문이었죠. 기회다 싶었습니다. 명품 브랜드들이 결국 아시아 공장에 제작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으니까요.”


젊은 시절, 바지만도 10여 가지 색을 갖춰 놓고 입을 정도로 소문난 멋쟁이었던 그는 감각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었다. 그의 감각은 사옥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의왕에 자리 잡은 시몬느의 신사옥은 독창적인 건물로 인정받으며 2003년 대한민국 건축대상을 받았다. 실내 정원과 발코니가 돋보이는 그 건물의 설계에서부터 인테리어까지 그가 많은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사옥 곳곳에는 그가 세계를 돌며 모은 소장품들이 놓여 있었다.

자신의 감각을 살린 ‘명품’ 생산으로 방향을 설정한 그는 미국 최고의 디자이너 브랜드로 꼽히는 ‘도나 카렌’을 먼저 공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급 핸드백은 유럽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미국으로 날아간 박 대표는“30~40% 정도 비용 절감이 되는 데다 이탈리아에서 5주 걸려 만들 물량을 1주일 만에 해낼 수 있다”며 호언장담했지만 도나 카렌 쪽에는 씨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요? 우리 고객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 표시를 보고 가방 하나에 700달러를 내고 삽니다. 비용이 문제가 아니에요.”

끊임없이 그들을 설득했지만, 한국은 200달러 이상의 고급 핸드백을 만들어 본 경험과 역사가 없으니 안 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들과의 입씨름은 거의 협박 수준에 이르렀다.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시몬느 사옥. 2003년 건축대상을 받았다.
“나도 경험과 역사를 존중하지만, 그것도 시작이 있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죠.”

열정과 투지에 넘쳤던 박 대표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도나 카렌은 시험적으로 100피스만 만들어 보내라고 했다. 뉴욕 백화점에 진출한 도나 카렌의 ‘메이드 인 코리아’ 핸드백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차츰 주문량을 늘려 가던 도나 카렌은 3개월 후 현지 디자이너들을 시몬느 본사로 보냈다. 새로운 라인을 한국에서 개발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듬해 도나 카렌 핸드백의 전체 물량 중 60%를 시몬느가 제작했다. 아시아 공장이 세계의 명품 핸드백을 만드는 ‘새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랄프 로렌, 캘빈 클라인 등 다른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먼저 시몬느에 연락해 오면서 세계 시장에서 시몬느는 ‘명품 제조업체’로 자리를 굳혔다. 이제 김 대표의 꿈은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원래 영국과 프랑스의 하청공장이었어요. 탄탄한 제조 기술과 이탈리아 문화의 힘이 합해지면서 세계적인 명품이 나온 거지요. 우리도 제조 기술과 문화 파워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면 세계적인 명품을 배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 토대를 닦는 사람으로서 제 역할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글 추명희 TOP CLASS 기자 | 사진 이창주
  • 2006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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