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Living | 작은 뮤지컬로 울고 웃기는 극단 '간 다'

글 이선주 TOP CLASS 기자│사진 정현미
‘거평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거울공주 평강 이야기〉는 이상한 뮤지컬이다. 수십억 원을 훌쩍 넘는 예산을 들여야 하는 뮤지컬을 ‘거평이’는 달랑 100만 원만 가지고 만들어 들고 나왔다. 그러다 보니 무대장치도 의상도 제대로 갖출 수 없었다. 몸과 목소리가 무대장치가 되고 음향효과가 됐다. 악기 대신 배우들의 목소리인 아카펠라로 연주해 ‘아카펠라 뮤지컬’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배우들이 물구나무서고, 엎드리고, 어깨 위에 올라타면서 나무가 만들어지고, 숲과 동굴, 호수로 장면이 전환된다. 일명 환경전환수. 그런데 그게 어설프다. 이렇게 저렇게 의논해 가며 무대를 만드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노출시키며, “이게 아니잖아”라면서 다시 만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관객들은 박수까지 쳐 가며 쉴 새 없이 웃는다.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장치다.


점점 더 크고 화려해지는 뮤지컬들과 비교할 때 터무니없이 작은 뮤지컬.

연출과 사업으로 역할 분담을 한 ‘간다’의 공동대표 민준호(왼쪽)와 조한성 씨.
그런데 이 작은 뮤지컬이 관객들을 웃고 울리면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세 번 네 번 되풀이해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 생기고, 공연을 홍보하면서 물심양면으로 돕겠다며 ‘서포터스’ 모임도 생겼다. “웃음과 감동이 살아 있다”는 게 이들의 반응이다. 쉴 새 없이 웃던 관객은 마지막 부분에서 울컥한다. 평강공주를 선망 내지 질투하며 스스로를 부인하던 시녀 연이가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 숲 속에 사는 야생 소년이 연이에게 바치는 순진무구한 사랑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너 울었지? 아까 옆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던데.”

이야기 구조도 메시지도 명확하고 단순한데, 그게 힘이 있다. 연인이나 친구 혹은 사춘기 딸과 엄마가 함께 공연을 보고 돌아갈 때는 옆 사람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고 한다.


한국 예술종합학교 수업시간에 출발한 공연

‘거평이’를 세상에 내놓은 산파를 공연장인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만났다. 한국 예술종합학교(예종) 연기과 99학번 민준호 씨. 그는 ‘신체언어’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 지금은 예종 무용원 대학원 과정에 등록해 놓은 상태라고 했다. ‘거평이’는 예종 수업과정에서 탄생했다. 소리만 가지고 모든 것을 표현해 내는 보이스(voice) 수업시간. 연기과 학생들은 몸 움직임과 목소리만 가지고 갖가지 환경을 연출해 내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

“별다른 장치 없이 배우들의 움직임만으로 관객들에게 상상력을 불어넣는, 연극 본연의 모습을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이리저리 극을 만들어 보던 그가 2004년 2월, 학교 극단 ‘돌곶이’로부터 100만 원 지원금을 받아 완성한 작품이 〈거울공주 평강 이야기〉다. 이 작품을 계기로 그는 공연 배달 서비스를 표방한 극단 ‘간다’를 만들었다. 문화 소외지역으로 배달 다니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그를 중심으로 연기과 선후배들이 모여들면서 열심히 공연 배달을 다녔다. 전국의 문화축제 현장에서부터 고아원, 소년원 등 어디든 달려갔다. 지난해에는 밀양 여름공연축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관객과 혼연일치가 되어 소통하는 것이나, 끝나고 술 얻어먹는 맛에 모두들 즐거워했지요.”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대사를 더 붙이거나 빼고, 동작을 집어넣고 하면서 뮤지컬은 진화해 나갔다. 그래서일까? 관객들이 어느 부분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눈물을 떨굴지까지 정확히 예측한 듯 관객과의 호흡이 딱딱 맞아 들어간다. ‘거평이’는 최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젊은 사람들의 열정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지원하고 싶다”며 CJ 엔터테인먼트가 3억 5,000만 원을 투자한 것. 이 덕에 무대와 의상을 개선하고, 배우들이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가창력도 한층 보완했다. 업그레이드한 공연은 5월 21일까지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공연한 후 다시 전국으로 배달을 나갈 예정이다. 학교에서 실험작으로 만들었던 ‘거평이’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민준호 씨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창작품을 새로 만들어 내놓을 때처럼 재미있고 두근거릴 때가 없는데…. 2년 동안 한 작품만 들고 있자니 그때가 그립습니다.”

‘거평이’ 공연팀과 별도로 새 작품을 준비할 팀을 만들 생각이다. 극단 ‘간다’에는 민준호 씨 외에 한 명의 대표가 더 있다. 공연기획자 조한성 씨가 지난해 ‘간다’에 합류한 것. 민준호 씨가 “우린 공연에만 전념할 테니 사업 쪽은 형이 맡아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6년여 동안 해 오던 기획 일에 회의를 느끼고 새로운 일을 찾으려던 조한성 씨는 ‘간다’팀 때문에 마음을 돌렸다.

“스무 살, 재수할 때였어요. 우연히 찾은 소극장 콘서트에서 무대와 관객이 하나 되는 것을 경험하고, 이런 공간 만드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일을 하려면 무얼 준비해야 하는지 몰라 대학 건축 디자인과에 들어갔다 멀티미디어과로 전과해 졸업한 후 전시-이벤트-공연 기획 일을 했다. 그러다 점차 지쳐 갈 때쯤 ‘간다’팀을 만났고, ‘첫 마음’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고 열정과 정으로 뭉쳐 있는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일할 수 있다는 데 마음이 움직였다.

‘거평이’ 출연배우들은 대부분 1990년대와 2000년대 예종 출신들이다. ‘거평이’뿐 아니라 화제 뮤지컬이나 연극에 출연하면서 주가를 높이고 있는 배우들. 이 중 ‘야생 소년’으로 출연하는 96학번 진선규 씨와 ‘병사 2’로 나오는 00 학번 이상은 씨는 팬을 몰고 다닌다. 이상은 씨는 청주대 국문과와 상명대 연극과를 거쳐 예종에 입학했고, 진선규 씨는 원래 격투기 선수를 지망했었다. 인간의 언어를 모르는 야생 소년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애니메이션 ‘타잔’과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따라 하고, 러닝머신에서 네 발로 달리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학교 선후배들이 모이다 보니 누구 작품에 출연하는 게 아니라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가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다. 연습 중에도 이렇게 저렇게 바꿔 보자는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고, 반응이 좋으면 그대로 공연에 반영된다. 민준호 대표는 “다시 머리를 모아 어린이를 위한 뮤지컬을 만들 생각”이라고 말한다. 역시 예종 수업시간에 신체표현과 목소리로만 시도했던 ‘혹부리 영감’이 그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공연으로 영글고 있다.
  • 2006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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