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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고 싶다’ 다국적 전방위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 Karim Rashid

뉴욕을 거점으로 둔 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 1960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집트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일랜드, 영국, 알제리, 캐나다 등에서 생활한 그는 스스로를 다국적 인간이라 한다. 그의 디자인 영역도 경계가 없다. 옷, 향수병, 세제용기, 양념통, 그릇, 휴지통, 의자, 조명, 퓨전 레스토랑, 호텔 등 우리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제품과 공간을 모두 디자인한다. 최근에는 한국 출판사를 위해 서점 진열용 책꽂이를 디자인해 화제다.

그가 디자인 세계에 입문한 것은 열아홉 살 때. 캐나다 카를턴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후 이탈리아로 건너가 로돌포 보네토 스튜디오에서 1년간 일했다. 다시 캐나다로 돌아온 그는 신진 디자인 그룹 칸에서 7년 동안 일하면서 디자이너로서의 영역을 구축해 나갔다. 패션 디자이너로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 1993년 뉴욕으로 옮겨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었다. 소니, 야후, 이세이 미야케 등 전 세계 고객을 상대로 일하는 그는 ‘대중을 위한 디자인’을 주창하는 디자인 민주주의자다. 세계적인 인테리어 소품 브랜드인 ‘움브라’를 위해 디자인한 쓰레기통 겸 우산꽂이는 디자인의 아이콘이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300만 개 이상 팔려 나갔다.

그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공간은 비행기 안이다.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중국, 일본, 인도 그리고 한국 등 그의 발길과 손길이 안 닿은 나라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는 이 시대의 신유목민,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로 불린다. 그가 3월 3일 한국에 왔다. 두 번째 공식 방문이다. 2003년 3월 첫 내한했을 때는 서울 리빙디자인페어 중 특별 전시로 LG자이(현 GS자이)와 함께 ‘미래의 주거 환경’을 제안했다.

그에게 ‘미래의 주거 환경’이란 시스템이 잘 갖춰진 똑똑한 집이다. 집 안의 인공지능 시스템이 주인의 말이나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전시 때 그가 선보인 집에서는 공간만큼이나 독특한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DJ 경험을 살려 카림 라시드가 편집, 제작한 음악들이었다. 그는 음악이 환경(공간)을 완벽하게 만들어 준다는 믿음으로, 공간 구석구석에 음악을 채워 넣었다. 사실 그가 디자인한 공간들은 푸근하거나 안락한 느낌이 덜하다. 살짝 들뜬 채 가볍게 리듬을 타고 몸을 흔들어야 될 것 같은 느낌, 정통 코스 요리보단 퓨전 누들 메뉴에 어울림 직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젊은 여성들의 사인 행렬이 이어질 정도로 스타성을 인정받는 건 이런 감각 때문이다.

카림 라시드는 자신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내세우는 스타 디자이너다. 그의 독특함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가 세계적 스타임은 부인할 수 없다. 플라스틱 디자인의 귀재로 세계 디자인계에 입문한 그는 소재에 대한 다양한 실험으로 고정관념을 깼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내면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단어도 만들어 낸다. 이런 그의 코드를 한국 대중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다. 그렇고 그런 디자인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기능과 별 상관 없는 듯 파격적인 그의 디자인에 열광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디자인이 기능적이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편한 의자, 유용한 볼펜들도 있다.) 아니면 ‘내 스타일이 아닌데’, ‘독특하긴 한데…’라며 외면할 수도 있다. 볼펜, 노트북 가방, 그가 쓴 책. 그와 관계된 몇 가지 소품만 들고 다녀 보아도 사람들의 반응이 정확히 둘로 나뉘었다.

그가 한국 기업과 한 첫 프로젝트는 현대 ‘더 블랙’ 카드 디자인이었다. 이 역시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은 아니었다. 블랙 바탕에 카림 라시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기호와 기하학적인 패턴이 적용된, 한눈에 봐도 ‘카림 라시드 디자인’임을 알 수 있는 카드였다. 이 카드를 가진 사람은 세계적인 디자인 스타의 아이디어로 자신의 지갑 한쪽을 채운다는 점에서 뿌듯해할 것이다.

몇 해 전 출간된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카림 라시드가 직접 기획하고 글을 쓰며 세계적인 선배 디자이너들로부터 원고를 받아 완성한 책이다. ‘디자이너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작은 물건들을 바꿔 나가면서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고 그것들이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새로운 힘이 된다는 것이다. 카림 라시드는 디자이너는 시대에 맞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들은 점점 디지털화해 간다. 디자이너는 이 새로운 장비들을 이용해 아름답고 유용한 물건을 만들며 기계의 시대가 짓밟아 버린 독특함과 다양성을 표현해 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기술 비대 시대에 디자이너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기술에 자신의 개성을 대입할 줄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그는 디지털이란 소재를 발 빠르게 받아들였다. 초기에는 플라스틱, 스틸 같은 독특한 소재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것이 그의 강점이었다면 이제는 거기에 디지털을 하나의 패션처럼 접목시킬 줄 안다는 것이 그의 매력이다.

그는 오후 5시 일몰의 순간을 사랑하며,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진화를 동경하는 그는 먼 훗날 인류의 50%가 인조인간이 되는 공상과학영화 같은 장면을 꿈꾸면서 시대, 코드, 장르가 뒤섞인 디자인을 한다. 1993년 뉴욕에서 스튜디오를 오픈한 뒤 2,000여 점의 디자인을 선보인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30%도 내보이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한다.

앞으로 로봇, 자동차, 비행기 디자인에도 도전해 보고픈 욕심이 있다. 동시에 누군가의 여행가방, 오디오 시스템도 디자인해 주고 싶다 한다. 디지털, 글로벌 시대가 선택한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는 그렇게 독특함을 인정할 줄 아는 시장을 찾아 들어갔고, 그곳에서 세계를 소리 없이 움직이는 쾌감을 맛보고 있다.
글 김명연 월간 ‘디자인’ 기자
  • 2006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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