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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내한 공연하는 세계 최고의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

3월 30일 예술의 전당에서 정명훈의 반주로 첫 내한 공연을 하는 체칠리아 바르톨리를 스위스 취리히 호반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이는 허브티를, 나는 오렌지주스를 홀짝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매니저 와일러 씨는 이탈리아어와 영어를 오가며 인터뷰를 조율했다. 바르톨리는 말문이 막히면 소나기 같은 이탈리아어를 와일러 씨에게 ‘분사’했고 그때마다 와일러 씨가 해결사가 됐다.

바르톨리는 잘츠부르크에서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니와 모차르트 250주년 기념 음악회에 참석하고 빈 무지크페라인에서의 콘서트 후 휴식을 취하기 위해 취리히에 들른 차였다. 자신의 집이 있는 다이내믹하지만 번잡한 로마와는 달리 ‘산다운 산, 호수다운 호수가 있는 조용한’ 취리히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로마 여인은 칠흑 같은 눈동자를 깜박이며 미소 지었다.

올해 불혹을 맞은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성악가로 꼽혀 왔다. 1992년 〈뮤지컬 아메리카〉지 선정 ‘올해의 성악가상’, 〈타임〉지 선정 ‘최고의 레코딩 아티스트’, 1993년 ‘독일 비평가 협회상’, 일본 ‘음악의 벗 음악가상’, 1994년 국제 클래식 음악 ‘최고의 여자 성악가상’, 〈빌보드〉지 선정 ‘최고의 클래식 음악가상’, 1996년 〈르 몽드〉지 선정 ‘올해의 음반상’, ‘올해의 음악가상’을 수상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공연 횟수를 줄이면서 바로크 음악을 전후한 레퍼토리를 연구, 비발디, 글루크 등의 음반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2002년 데카와 독점 재계약을 체결한 후 2003년 내놓은 첫 앨범 〈살리에리 앨범〉, 뒤이어 최근 발표한 〈금지된 오페라〉 등 바르톨리의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는 ‘클래식 음반계의 블루칩’이다. 음반의 완벽성이 거의 그대로 발현되는 그의 공연이야 설명할 필요가 없다. 바르톨리가 가는 곳마다 매진, 또 매진이다.

필자는 지금 바르톨리의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 비발디 오페라 ‘그리셀다’ 가운데 ‘폭풍이 몰아치고’. 최근 소프라노 조수미의 〈바로크로의 여행〉 앨범에서도 단연 사랑받는 초절정 기교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이 곡을 바르톨리는 능수능란하게 요리하고 있다. 이 어려운 악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아니 악곡 전체를 손아귀에 꽉 쥐고서 그 촉감을 즐기는 듯한 마성마저 느껴진다.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음악세계는 철두철미함과 완벽성으로 대표된다. 그를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린 로시니 오페라의 여주인공 역에서부터 벨리니, 도니제티 등 벨칸토 레퍼토리, 비발디, 헨델, 스카를라티 등 바로크 오페라의 기교 위주 레퍼토리까지 바르톨리의 성대는 음표 깊숙이 묻어 있는 시대의 생생한 공기까지 재현해 낸다.


어머니한테 성악 훈련받아

바르톨리는 1966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양친 모두 성악가였던 덕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해질 수 있었다. 실바나 바조니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던 어머니에게서 벨칸토 창법의 기초를 닦는 등 성악가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자질들을 전수받았다.

“어머니는 뛰어난 가수이자 훌륭한 스승이셨죠. 초기에 성악 공부를 막 시작했을 때 저는 입 벌리는 것을 주저했었어요. 입을 반쯤 다문 채 노래하곤 했었는데 어머니께서는 ‘입을 더 벌려라’고 계속 요구하시다가 안 되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이렇게 해 봐’ 하시면서 조그만 나무막대를 내 입에다 끼우셨죠. 그 뒤로 습관적으로 입을 더 벌리게 됐고, 더 뚜렷한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는 성악의 산실인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 진학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후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나서게 된다.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재학 당시 바르톨리는 작은 스쿠터를 타고 등교했는데, 가끔은 조수미를 뒤에 태우고 가기도 했다고 한다.

바르톨리가 무명에서 벗어나 급속한 상승곡선을 그리며 자리 잡게 된 데에는 동향의 대선배들인 바리톤 레오 누치와 소프라노 카티아 리치아렐리의 힘이 컸다. 일찍이 바르톨리의 예사롭지 않은 재능을 간파했던 이들은 그를 유럽 각국에서 위성방송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자신들과 함께 출연하도록 주선했다. 이를 통해 그는 빼어난 기교와 음악성을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 그의 나이 19세 때의 일이다.

이 방송 후 유럽 굴지의 오페라단에서 오디션 없이 그를 받아들이겠다는 제안이 쏟아져 들어왔다. 바렌보임, 아르농쿠르 등의 유명 인사들도 그에게 함께 작업하자고 했다. 1989년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마리아 칼라스 추모 음악제’에서 바르톨리는 로시니와 모차르트의 아리아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바르톨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창은 기교를 부려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음악의 ‘해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해석은 몸의 모든 부분이 열중했을 때 가능하다. 생각하는 것, 이야기하는 것, 노래가 어우러져야 한다. 음악은 시를 섬겨야 하고 시는 음악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 단순히 노래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의 악기인 몸을 잘 조절해야 하고 그와 동시에 음악의 감정을 인지해야 한다. 이 둘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 벨칸토뿐 아니라 바로크 음악이나 현대 음악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의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각기 다른 스타일을 잘 구별해야 하며, 두뇌와 감각, 영혼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소프라노로 명성을 쌓아 가면서 그는 플라멩코 춤을 배웠다. 플라멩코든 살사든 춤을 배우면 무대 위에 서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한다. 노래는 육체라는 악기를 통해서 나오는 소리이니, 육체 단련이 필수라는 것이다. 이게 그가 오페라 무대에서 승승장구하는 비결 아닐까?

직접 만나 본 로마 여인 바르톨리는 친절하고 인간적이었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 서면서도 가족을 사랑하고 오래된 자동차를 사랑하고 가끔은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팝뮤직에도 귀를 기울이는 바르톨리의 인간적인 매력은 미완의 완벽성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듯했다.

글쓴이 류태형님은 월간 〈객석〉 편집장으로 KBS-1 FM <출발 FM과 함께> ‘류태형의 출발 퀴즈’ 코너에서 매일 아침 청취자들과 만나고 있다.
  • 2006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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