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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남미,아프리카의 여성 정상들

세계를 바꾸는 부드러운 힘

글 신정선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칠레 대통령 미첼 바첼렛

지난 1월 15일, 남미 대륙이 환호의 물결에 휩싸였다. “나는 보수적 칠레 사회가 증오하는 모든 ‘죄악’을 대표한다. 사회주의자이며 이혼했고 종교도 없다”고 당당히 밝힌 후보가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탄생한 순간이었다. 미첼 바첼렛(54세). 집권 중도좌파연합의 후보로 나선 그는 야당인 중도우파연합 소속 세바스티안 피녜라 후보를 제치고 당선을 확정 지었다. 남미의 여성 대통령은 니카라과의 비올레타 차모로, 파나마의 미레야 모스코소 등이 있었으나, 정치인 남편의 후광을 입지 않은 경우는 바첼렛이 처음이다.

당선이 확정된 후 연단에 선 바첼렛의 목소리는 감격으로 떨렸다.

“10년 전, 아니 5년 전이었다면 여성이 대통령이 된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그의 인생 역정에는 군부 독재의 쓰라린 상흔이 그대로 배어 있다. 공군 장성이었던 아버지 알베르토 바첼렛을 따라 워싱턴에서 살던 1960년대 초, 그는 영어를 배우며 미국의 반전 가수 밥 딜런의 노래를 흥얼거리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1973년 아옌데 정권이 쿠데타로 전복되면서 그의 삶도 뿌리째 뒤집혔다. 아버지는 아옌데의 자문역이라는 이유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의대생이던 바첼렛도 어머니와 함께 수감돼 고문을 받은 후 강제 추방돼 호주와 동독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가까스로 귀국한 것은 1979년. 이후 그는 실종된 정치범들의 유자녀를 돌보는 비정부기구 ‘피데’(PIDDE) 의장으로 활동했다. 1989년 피노체트가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첼렛은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유지(遺志)를 떠올렸다. 칠레 국립 정치전략 연구 아카데미와 미 워싱턴의 안보학교에서 군사학에 빠져 들었다. 그가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칠레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에 오른 뒤였다. 남성적 무력의 상징인 국방 영역에서 그는 성(性)을 초월해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칠레 공군이 비행재킷에 그의 이름을 새겨 헌정할 정도.

바첼렛은 자신에 대해 “매우 강하고 완고하다”고 말한다. 1980년대 중반 두 아이를 낳은 후 이혼한 그는 정식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셋째 아이를 낳았다. 국민의 80%가 가톨릭 신자로 보수적인 칠레 사회에서 용인받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그러나 무언의 압박에도 당당했다. 선거기간 중에도 휴가를 내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치인과 어머니로서의 자리를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핍박받은 일에 대해서 그는 “나는 천사가 아니니 과거를 잊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과거 때문에 앙갚음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아버지를 죽인 군(軍)을 품은 그에게서 칠레 국민들은 어두운 시대와 화해할 미래의 희망을 보고 있다.


라이베리아 대통령 엘렌 존슨 설리프

또 다른 대륙 아프리카에서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취임했다. ‘아프리카의 힐러리’로 불리는 엘렌 존슨 설리프(77세)는 1월 16일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으로 선서를 마쳤다.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그는 축구 스타 출신 조지 웨아 후보를 결선 투표에서 누르고 당선됐다. 2003년 내전이 종식된 이후 최초로 실시된 민주적 선거였다.

내전과 독재로 얼룩진 나라 라이베리아에서 존슨 설리프는 ‘엄마 엘렌’이란 이미지를 심기 위해 애썼다. 취임사에서도 라이베리아를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아픈 자식’으로 비유했다. 네 자녀의 어머니이자 여섯 손자의 할머니인 존슨 설리프는 “14년 내전으로 갈갈이 찢긴 라이베리아를 여성의 힘으로 되살려 놓겠다”고 강조한다. 존슨 설리프는 미국 위스콘신의 메디슨 비즈니스 칼리지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하버드대에서 공공행정학 석사 학위를 한 인재다. 세계은행·유엔개발계획의 아프리카 국장과 재무장관을 지낸 경제전문가이기도 하다.
결단력과 단호함, 투쟁 의지로 이름 높은 그는 군사정권에 맞서다 내란죄와 반역죄 등으로 두 차례 투옥됐다. 1990년대 집권한 찰스 테일러 군사정권 때는 두 차례나 해외로 망명했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1997년 귀국해 대통령 선거에서 테일러와 맞붙기도 했다. 라이베리아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900달러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다. 전국적인 통신망이나 상수도, 도로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그 나라는 ‘제2의 건국’이라는 임무를 ‘강인한 어머니’에게 맡겼다 할 수 있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2005년 11월 취임한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52세)도 요즘 화제를 뿌리고 있는 여성 정상이다. 그는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로 동독 출신으로는 처음인 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연소 총리, 최초의 과학자 출신 총리이기도 하다. 메르켈은 서독 지역인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으나, 생후 6주 만에 구 동독 지역인 브란덴부르크 주의 작은 마을 템플린으로 이사 갔다.

루터파 교회 목사였던 메르켈의 아버지 호르스트 카스너(79세)의 뜻이었다. 그는 “동독의 주민들에겐 목사가 필요하다”며 그 길을 고집했다. 동독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던 동독에서 아버지의 직업은 장애가 됐다. 서독에서 영어와 라틴어 교사를 했던 어머니는 취업을 할 수 없었다. 우등생이던 메르켈은 교사가 되고 싶었으나 출신 성분 때문에 뜻을 꺾어야 했다. 라이프치히에서 물리학을 공부할 때는 집세를 내기 위해 디스코텍에서 바텐더로 일하기도 했다.

스물세 살 때 그는 한 살 위 울리히 메르켈과 결혼했다. 둘은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 동베를린으로 이사했다. 화장실도 없고 온수도 나오지 않는 낡은 아파트에서 시작한 결혼생활은 4년 만에 끝났다. 그는 훗날 “모두 결혼하니까 결혼했을 뿐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었다”고 고백했다.

메르켈의 정치인생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면서 막이 올랐다. 동독의 민주화 운동 단체인 ‘민주 변혁’에서 활동했던 그는 헬무트 콜 총리에게 발탁됐다. 빠른 판단과 남다른 열정이 그를 두드러지게 했다. 이후 그에게는 ‘콜의 양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여성 청소년부 장관, 환경부 장관을 역임하며 거침없이 성장했다. 그의 부드러운 얼굴 뒤에는 치밀하고 냉철한 현실주의자의 면모가 숨어 있다. 1998년 콜 총리를 비롯한 기민련 지도부가 비자금 스캔들에 휘말리자, 그가 앞장서 콜의 정계 은퇴를 주장하며 정치적 아버지와 결별했다. 더 이상 ‘콜의 소녀’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메르켈은 과학자 출신답게 정확하고 간결한 말투를 즐긴다. 지난해 총선 기간 슈뢰더 총리와 맞붙은 토론 자리에서도 “총리, 거짓말하고 있군요”, “약속했지요?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요” 라는 간결한 말로 슈뢰더의 실정(失政)을 매섭게 파고들었다. 그는 이미지 변신에도 공을 들였다. 슈퍼 모델 클라우디아 쉬퍼의 헤어 스타일리스트를 기용해 딱딱하고 촌스러운 단발머리에서 벗어나 여유롭고 세련된 이미지를 선보였다.

재혼한 남편 요아힘 자우어는 독일에서 손꼽히는 과학자로 양자화학 권위자이다. 그의 별명은 ‘오페라의 유령’. 오페라를 즐기지만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 몰래 보고 사라진다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아내의 총리 선서식에도 참석하지 않았지만 아내의 연설이나 TV 인터뷰를 챙겨 보며 꼼꼼하게 조언하는 자상한 남편이라고 한다. 메르켈은 세계 외교 무대의 신데렐라로 떠오르고 있다. 취임 후 첫 국제회의였던 브뤼셀의 EU 정상회의에서 팽팽하게 맞서던 영국과 프랑스의 합의를 이끌어 낸 주역이 바로 그였다. ■
  • 2006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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