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박기호| ‘타임’ ‘포브스’ ‘비즈니스 위크’ 표지 사진 이 손 안에 있소이다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장동건이 최근 <타임>지(誌) 아시아판 표지를 장식해 화제가 됐다. <비즈니스 위크>는 ‘아시아의 급성장하는 기업’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한국의 ‘더 페이스 샵’을 표지에 썼다. 삼성전자는 <포브스>의 표지에 자주 등장한다.

외국 잡지에 소개되는 한국 관련 사진은 대부분 이 사람의 앵글을 통해야 한다. 사진가 박기호(46세). 그는 <타임> <뉴스위크> <포춘> <포브스> <비즈니스 위크> 등 세계적인 시사잡지와 경제지의 한국 관련 사진 취재를 도맡아 한다. 초등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가 사진을 공부한 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때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외지(外誌)와 함께 일하면서 한국을 대하는 세계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한다. ‘데모’에서 ‘한국의 힘’으로 취재 대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표지 모델로 등장한 2002년 <포브스> 표지 제목은 ‘조심해, 소니’(Look Out, Sony)였다. 그때만 해도 ‘삼성이 이 잡지에 얼마나 광고를 많이 줬으면 이런 기사가 실릴까’ 생각했는데, <포브스>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그가 어떻게 카메라를 손에 잡았는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나라의 현대 문화사가 고스란히 손에 잡힌다. 그는 화가 박고석의 아들, 건축가 김수근의 조카다. 산을 주로 그린 표현주의 화가 박고석은 이중섭의 친우(親友)였다.

부산 피란 시절 신혼인 부모님 집에 이중섭이 더부살이를 하기도 했다. 박고석과 동료 화가인 이중섭, 한묵은 술에 취해 밤늦게 들어오면서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큰 소리를 쳤다. 어머니는 남의 집에서 밀가루를 빌려 와 수제비를 끓였는데, 땔감이 없어 이중섭이 스케치한 후 팽개쳐 놓은 종이를 콩 껍질에 칭칭 감아 불을 피웠다. “수제비 한 번 끓이는 데 스케치 60장은 태웠으니 한 그릇에 몇십억 원씩 하는 수제비였다”고 어머니는 회고했다. 이중섭의 스케치 한 장이 1억 원을 훌쩍 넘으니 말이다. 그가 태어나기 전 이야기다.

1960년생인 그가 서울 정릉에서 살던 어린 시절, 시인 고은이 그의 집에 살았다. 집에는 출판사에서 돌려준 고은의 자필 원고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화장지가 없던 시절, 가족들은 그걸 들고 화장실에 갔다. 고은의 대표 시집 <새노야> 원본도 이렇게 뒤 닦는 데 쓰였다. “얼마나 재미있는 분이셨는지….” 고은은 그에게 ‘자유혼’에 대한 갈망을 심은 사람이다.

어머니 김순자는 1964년 하와이에서 패션쇼를 하고,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작품이 소장될 정도로 유명한 한복 디자이너였다. 1970년대 어머니는 3남 1녀 중 막내아들인 그와 누나를 데리고 도미(渡美)해 그곳에서 활동했다. 형들은 홍대 미대를 졸업한 후 뉴욕 프랫 인스티투트에 진학하면서 미국으로 왔다.

박기호 씨가 촬영한 <타임>, <포브스>, <비즈니스 위크> 표지들.
브루스 데이비슨과의 만남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머니로부터 받은 일회용 카메라. 그게 ‘사진가 박기호’를 만드는 발단이 됐다. 카메라 속에 담기는 세상이 흥미진진했고, 1년 꼬박 신문을 배달해 캐논 카메라를 장만했다. 점점 더 사진에 빠져들었다.

대학에서 비즈니스 마케팅을 전공하다 결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 다시 입학해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사진가 브루스 데이비슨과의 예기치 않은 만남.

그가 제일 존경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계의 거장, 듣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이름이었다.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작가 그룹인 ‘매그넘’에 들렀다 그의 네거티브 필름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그의 조수가 됐다. 필름을 프린트하는 데 쓰는 고물 기계가 고장 났는데, 부속품을 갈고 칠까지 해 새것처럼 만들어 놓은 날이었다. 브루스 데이비슨이 “너, 내일부터 내 조수해”라고 말했다.

박기호 씨가 촬영한 광고, 잡지 사진들.
2년 동안 브루스 데이비슨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의 촬영을 도왔다. 작은 몸집에 200㎏에 달하는 장비를 멨지만 무거운 줄 몰랐다. 브루스 데이비슨의 대표작 ‘지하철’ 작업도 함께 했다. 데이비슨의 모든 것을 흡수한 기간이었다. 데이비슨은 수십 년째 카메라를 잡으면서도 한 장면 한 장면을 난생처음 촬영하는 듯한 자세로 임했다. 순간순간 열정을 쏟았다. 2주일간의 빡빡한 촬영일정을 소화하고 돌아온 다음 날 새벽, “우리 작품 찍으러 가자”고 전화가 오곤 했다.

그는 1987년 <뉴스위크>가 파견하는 사진기자로 한국에 왔다. 서울이 6월 항쟁으로 뜨거울 때였다. 그 길로 한국에 정착한 그는 세계적인 잡지들의 한국 전문 사진기자로 자리 잡았다. 2002년 월드컵 때 안정환, 2003년 노무현 대통령, 2005년 장동건 등 <타임>지 표지에 등장한 한국인은 모두 그가 촬영했다. 윤종용 부회장은 외국 경제잡지 표지에 자주 등장해 10여 년째 그의 단골 모델이다.

사진 촬영에 응하지 않기로 유명한 이건희 회장도 그의 앞에서는 8시간이나 촬영에 임했다. 1994년 <비즈니스 위크> 표지를 촬영할 때였다. 이 회장은 애견과 함께 있는 장면을 촬영한 후 용인 카레이싱장으로 옮겨 하얀색 레이싱복을 입고 레이싱 카에 올랐다.

그는 촬영 전 자신이 취재할 인물을 철저히 연구한다. 상대방이 차에 관심이 많으면 일부러 희귀한 모델의 외국 차를 몰고 가고, 손자가 있다면 비서실에 부탁해 손자 이름까지 알아낸다. 아무리 근엄한 표정의 기업 회장도 손자 이름을 들으면 얼굴이 펴지기 때문이다. 국내 잡지 촬영 때 만난 DJ 배철수 씨에 대해 그는 “폼 잡지 않고 허술해 보이는 모습에 친근감이 가지만, 사실은 그게 상대방에 대한 치밀한 분석 후에 나오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취재원을 대하는 박기호 씨 자세 역시 이와 같지 않을까?

2007년 개인전을 위해 촬영한 ‘택시 운전사’ ‘벚꽃 아줌마’ 대형 사진과 함께.
요즘 그는 새로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작업을 시작한 지 35년, 한국에 온 지 20년을 맞는 2007년에 열 개인전 준비를 위해서다. 그때는 택시 운전기사, 벚꽃구경 나온 아줌마, 웨이터, 샐러리맨 등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제껏 내로라하는 인물들을 주로 취재해 왔지만, 세상의 중심은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서다. 8×10인치 필름의 대형 카메라로 촬영해 실물크기로 인화하는 대형 초상화다.

형제 중 혼자만 그림을 못 그려 “넌 주워 온 애”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는 그. “아버지가 그린 산 그림은 얼마나 물감을 두텁게 발랐는지 몇 년 된 그림을 꾹 눌렀더니 치약처럼 물감이 비어져 나왔다”고 그는 회고한다. 사진작업은 아무리 해도 매끈하기만 해 입체작업에 도전한다는 그의 내면에는 표현주의 화가였던 아버지가 숨어 있는 것일까? ■
  • 2006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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