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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 배우 망가뜨리기… 영화 ‘태풍’ 연출한 곽경택 감독

글의 주인공 곽경택 감독은 1996년 미국 뉴욕대 영화연출과 졸업 후 1997년 영화 〈억수탕〉으로 데뷔했다. 이후 〈닥터 K〉(1998년), 〈친구〉, 〈챔피언〉, 〈똥개〉 등을 연출해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1년), 제9회 춘사 나운규영화예술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현재 진인사필름 대표로 있다.
지난해 12월 14일 개봉한 곽경택 감독의 영화 <태풍>은 개봉 3주 만에 전국 관객 350만 명을 넘겼다. 남자 배우로는 국내 최고 스타로 꼽히는 장동건 · 이정재가 나란히 출연했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는 <친구> 이후 그가 찍은 <챔피언>(2002년), <똥개>(2003년)에 이르기까지 피 튀기는 액션과 눈물을 자아내는 신파, 그리고 남성들 간의 소리 없는(때로는 난데없는) 우정이 넘쳐난다. <태풍>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를 제거해야 하는 탈북자 출신 해적 씬(장동건)과 대한민국 해군 장교 강세종(이정재)은 목숨을 걸고 맞붙어 싸우지만, 누구보다 상대를 이해한다. ‘곽경택표’ 영화라 할 만하다.

<태풍>의 주인공 장동건과 이정재의 연기에 대해서는 호평 일색이다. 장동건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세 사람 중 하나로 곽 감독을 꼽았을 정도로 곽경택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다고 한다. 장동건에 대한 곽 감독의 평을 들어 보자.

“참 성실한 친구예요. 배우로나 인간으로나. 2001년에 <친구>를 마친 뒤 다시 또 만나자는 이야기는 일찍부터 해 놨었죠. 그런데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씬’ 역을 맡을 배우를 놓고 고민한다는 소리가 들렸는지, 어느 날 동건이가 절 찾아왔어요. 수염을 까맣게 길렀더군요.”

장동건이 곽 감독에게 말했다.

“형, 나보고 <친구> 할 때 콧수염 기르라고 했는데 그때 내가 안 길렀잖아. 이거 해적 느낌 안 나요?”

곽 감독은 ‘씬’ 역을 맡길 배우로 정우성과 장동건 둘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역시 대한민국 대표 미남 배우 중 하나인 정우성과 곽경택 감독은 2003년 작 <똥개>에서 만났다. 그러나 장동건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오면서 곽 감독과 장동건은 다시 뭉쳤다. 2003년 12월 31일 장동건은 출연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막상 촬영에 돌입하기까지 10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장동건이 첸 카이거 감독과 영화 <무극>을 찍느라 <태풍>의 촬영은 2004년 10월에야 시작됐다.

분노와 복수심이 가득 찬 황폐한 인간 ‘씬’의 내면을 보여 주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곽 감독은 “씬이라는 배역은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캐릭터라서 그 성격과 정서를 자신의 내면에 충분히 녹여 낼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어려운 캐릭터를 장동건은 훌륭히 소화해 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캐릭터의 성격 창조도 어려웠지만 함경도 사투리와 태국어, 러시아어를 소화하는 일도 큰 작업이었다. <친구> 때는 곽 감독이 부산 사투리 코치를 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장동건은 탈북자들을 만나 ‘어학연수’를 했다. 발음과 억양뿐 아니라 느낌까지 담아내려 애썼다. 헤어진 누나와 다시 만난 자리에서 씬이 폭발하는 장면은 억센 사투리와 그 안에서 끓어오르는 회한을 손에 쥘 듯 생생하게 재현했다.

곽 감독의 영화는 유난히 배우가 빛난다. 사전 작업 때부터 촬영 기간 내내 배우, 스태프들과 가족처럼,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는 스타일이 그대로 화면에 살아난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피폐한 모습의 씬, 장동건은 곽경택 감독이 빚어낸 피그말리온 신화의 완성이다. 피그말리온이 조각한 여인상이 생명을 얻듯 장동건도 곽경택 감독에 의해 새로 태어났다.

<태풍>에서 ‘대한민국 대표 미남’ 장동건은 얼굴에 긴 칼자국이 나 있다. 찡그린 얼굴, 폭발하는 분노에서 그는 미남의 짐을 벗는다. <똥개>에서는 정우성을 후줄근한 ‘추리닝 맨’으로 만들기도 했다. 곽 감독에게 “미남 배우들 데려다 망가뜨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고 하자 하하하 웃으면서 “그런 변신의 기회를 주는 게 감독으로서 느끼는 재미”라고 말했다.

영화 <태풍>에는 우리 해군의 구축함, 헬기 등 군사장비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곽 감독은 촬영 과정에서 군의 협조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하다못해 대전 국립현충원 묘역에서의 촬영도 허락받지 못했다고 한다. 곽 감독의 설명.

“국방부에서 ‘제발 우리 군인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하더군요. 우리가 겉으로는 남북화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속으로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실감을 했습니다.”

곽 감독은 영화 <태풍>을 찍으며 우리 현대사의 과제가 수없이 사무쳤다고 말한다. “씬과 강세종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나게 한 것은 그 도시가 보여 주는 시각적인 쓸쓸함뿐 아니라 그곳서 만난 카레이스키들의 쓸쓸한 역사가 가슴에 사무쳐서였습니다.”

곽 감독의 아버지는 이북이 고향. 그러나 그는 부산서 태어나 자랐다며 자신을 ‘남쪽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유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제 인식의 틀 속에서 교포란 그저 재미교포뿐이었습니다.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러시아 교포(카레이스키)들을 만났어요. 분명히 우리 민족의 한 부분인 이분들의 존재를 나는 왜 일찍이 몰랐던가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우리는 왜 학교에서 이런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나, 고려인들의 험난한 생존기는 어떻게 기록해야 하나, 그 얼어붙은 땅에서 우리 민족이 겪은 일과 러시아가 우리에게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이런 생각과 질문을 배우들과 공유했다. 씬 역의 장동건, 강세종 역의 이정재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독으로서 그 두 배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정재는 묘하게 컴펜세이션(compensation·결함을 극복, 보충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의 정신분석학 용어)이 되는 배우예요. <무극> 때문에 오래 기다렸는데, 그동안 딱 한 장면 나올 몸을 만드는 데 헌신했어요. 동건이는 캐치(catch)가 빠르죠. 예민해요.”

영화 <태풍>은 미국의 메이저 배급사인 드림 웍스를 통해 미국 진출을 준비 중이다. 미국판 편집 방향을 의논하기 위해 곽 감독은 곧 미국에 갈 예정이라고 한다. 이 영화가 미국에서 어떤 반응을 얻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
★ 영화 <태풍>은? ★
탈북자 출신의 동남아 해적 씬(장동건)은 미군의 핵무기 주요 부품을 실은 함정을 습격, 빼돌린다. 20년 전 북한을 탈출한 뒤 남한으로 가려다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이루려는 한국 정부의 거부로 일가족을 잃은 씬. 그는 한국을 인체에 치명적인 핵물질로 초토화시키려는 복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대한민국 해군장교 강세종(이정재)이 급파되어 동남아 해상에서 이를 저지시킨다.
  • 2006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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