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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장동건 - “더 빼라고 했는데…. 해적 얼굴에 윤기가 흐르면 안 되잖아”

글 오동진 영화전문기자
서울 용산 CGV 게스트 룸에 이정재와 나란히 앉아 있는 장동건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갑자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가뜩이나 작은 얼굴이 영화 <태풍>을 찍으면서 바싹 몸을 줄이느라 더욱 작아져 버린 느낌이었다. 움푹 들어간 볼, 영화가 잘생긴 이 남자의 외모를 망친다고 생각했다. 무대 인사를 위해 장동건이 자리를 뜨자마자 곽경택 감독을 닦달했다.

“배우를 얼마나 혹사시켰으면 저렇게 변했을까…. 너무 말랐잖아요.”

곽경택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더 빼라고 했는데…. 해적 얼굴에 윤기가 흐르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동건이는 살을 빼도 귀티가 나요. 그게 아쉬워요!”

잘생긴 것도 죄다. 적어도 장동건에게는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깎아 낸 듯한 외모를 부러워하지만 정작 장동건은 그 점이야말로 자신의 연기 폭을 넓히는 데 장애가 된다고 생각한다. 장동건은 비교적 일찍 인생의 진리 하나를 터득했다. 노력 없이 얻은 결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결심한다. 때론 머리를 박박 깎고 진짜 못된 놈으로 변신한다든지(영화 <친구>), 완전 또라이 고문관이 되든가(영화 <해안선>), 그것도 아니면 얼굴 전체에 숯검정을 바르고 미친 개가 되든지(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그것도 모자라다 싶으면 잘생긴 얼굴 이곳저곳에 칼자국을 내 버리기로 말이다(영화 <태풍>).

처음에 사람들은 그의 변신에 다소 미심쩍어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가 늘 뭔가 다른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됐다는 얘기다. 요즘은 그가 자신의 미끈한 얼굴 그대로를 내보이면서 진한 사랑 이야기 한 편을 찍으면 어떨까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 장동건에게는 그게 오히려 신선한 시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거나, 혹은 쉬거나…


한류(韓流)가 아시아 전역에서 회오리를 불러일으키기 전 장동건은 가끔, 아주 가끔 동남아 휴양지를 찾곤 했다. 그와 친하게 지내는 김승우의 증언에 따르면, 장동건과 김승우는 촬영이 끝나고 스케줄이 비는 때를 틈타 끼리끼리 종종 뭉쳐서 동남아 어딘가 콕 박혀 지내곤 했다고 한다.

이 혈기방장한 젊은 스타들이 다른 나라에 원정까지 가서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이상한 상상을 할지모르겠으나 이들이 그곳에서 주로 했던 일은 내리 자거나, 그냥 퍼져 지내거나, 방 안이나 해변가에서 실컷 술을 마시는 일 정도였다고 한다. 너무 얌전해서 그 이상의 일은 원하지도 않고, 하지도 않는 친구가 바로 장동건이라는 것이 영화판 그의 죽마고우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증언이다.

믿거나 말거나라고? 천만에. 장동건이 지금껏 어디서 사고를 쳤다는 얘기를 비공식 라인을 통해서라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 그 점을 증명한다. 장동건은 그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한 친구다.

영화를 찍거나 혹은 쉬거나. 이 인간의 관심사는 그 두 가지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더 있을 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여자친구에게 매우 잘한다고 하는데 문제는 여자친구가 누구인지, 그녀가 같은 연예인인지 아닌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10년 전에는 여자친구가 분명히 있었다. 그 친구에 대해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지금 한창, 아니 요즘 들어 더욱더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여배우 Y가 한때 그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한국 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해 한 2년간 열심히 공부를 하던 때 장동건은 동기들과의 술자리에 종종 그 ‘여자친구’를 동석시키곤 했다.

연극원 재학 시절 장동건은 동기들과 잘 어울리는 ‘친구’였다. 술은 곧잘 마셨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주량은 보통 수준을 넘었다. 그 얌전하던 친구가 연기를 두고 토론이 벌어지면 늘 전투태세로 임했다고 한다.

연극원 동기 중 한 명은 그가 특히 신체연기에 매우 특출한 재능을 보인 것으로 기억한다. 예컨대 셰익스피어 극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사자나 호랑이 등등 동물들의 몸짓을 흉내 내는 신체언어에 대한 훈련이 우선인데 자신이 기억하기에 장동건이 제일 잘했었다는 것이다. 결국 1년 후에 방송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아무튼 모두 그를 아꼈다고 한다. 스스로 스타라는 의식 없이 흉허물 없이 어울리는 그에 대해 모두 ‘좋은 친구’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친구들조차 장동건의 방송생활 이전에 대해, 혹은 그의 가정사에 대해, 더 나아가 그가 정확히 뭘 꿈꾸는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한다. 오랫동안 그를 취재해 온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10여 년 그를 만나 온 기자들은 장동건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 친구, 스캔들이 있었나?”

“없었지.”

“인터뷰 때 어떻지?”

“별로 말이 없는 친구라는 인상을 받았어.”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워 늘.”

“가정환경이 어떻대?”

“몰라. 흠…전혀 모르는데?”

“당신도 몰라? 나도 몰라. 그 참 희한하네. 그 친구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네?”

“자기관리가 보통 치밀한 게 아닌 것 같아.”


스스로 작품과 감독을 고르는 배우

영화 〈태풍〉에서 장동건은 미끈한 얼굴에 칼자국을 내고 온몸에 문신을 하는 ‘망가진’ 해적 두목으로 등장했다.
스스로의 생활이나 주변 관리만큼이나 장동건은 작품 선택에 있어서도 자기 철학을 고집한다.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에 출연하기로 결정하기 직전 그는 이시명 감독의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 출연했다. <해안선> 직후에는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를 선택했다. <해안선>과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병치시킴으로써 장동건은 자신이 SF블록버스터와 저예산 작가주의 영화 그 어느 분야에서도 구색이 맞는 배우임을 입증했다. 두 분야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 있다 한들 자신은 양쪽을 건너뛰며 연기 스펙트럼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마치 보란 듯 해치운 셈이다.

<해안선> 이후 <태극기 휘날리며>에 출연할 때 장동건은 기자들에게 두 작품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해안선>에서의 주인공은 전적으로 내면의 변화에 의해 광기에 휩싸이지만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철저하게 외적인 상황, 곧 가공할 전투상황에 의해 광기를 얻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의 주인공 모두 극적인 인생변화를 겪게 된다는 점에서 같다”고 했다.

이 얘기는 그가 작품과 작품 사이 연속성을 계산하며 작품을 선택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치밀한 계산하에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최종 지점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어느 정도 윤곽이 그려져 있을 공산이 크다.

1990년대 중반 연극원에서 공부한 이후 장동건은 연기 인생에서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변화가 금방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대중은 그에게서 잘생긴 외모를 보길 원했다. 1997년 TV브라운관을 벗어나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딘 후 <패자부활전>, <홀리데이 인 서울> <연풍연가> 등의 멜러 영화에 출연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때만 해도 장동건이 연기력 있는 배우로 평가받기란 틀린 것처럼 보였다. 고민을 거듭하던 장동건에게 전환점을 마련해 준 작품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였다. 여기서 그는 스스로 조연으로 물러앉았다. 장동건은 주인공 박중훈 뒤에 단단히 숨어 웬만해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통해 장동건은 개성 있는 연기자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가 영화를 위해 자신을 망가뜨릴 수 있음을, 이미지를 벗어 버릴 수 있음을, 영화 속 역할이 크고 작은 것에 대해 연연해하지 않음을 보여 줬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에도 그는 TV와 영화를 오가는 생활을 했다. <아나키스트>와 TV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을 병행했던 게 이 시절이다. 중국 올 로케로 촬영됐던 <아나키스트>에서 그는 비운의 테러리스트 세르게이 역을 맡았다. 김상중, 정준호, 이범수, 김인권 등과 함께 출연했던 이 영화에서도 장동건은 자신을 앞세우지 않았다. 출연배우들 중의 한 명, 원 오브 뎀으로 현장에서 가장 먼저 ‘죽었다’. 자신을 톱스타로 내세우지 않으면서 그는 어떤 영화에서든 없어선 안 될 인물임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가 감독을 선택하는 기준도 남다르다.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작가로서의 잠재력이 뛰어난 감독에게 자신을 맡겨 변신을 꾀한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이 그랬고,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그랬다. <친구>를 찍을 때 곽경택 감독은 <억수탕>이나 <닥터 K> 같은 영화가 실패해 퇴출 위기에 있었다.

<해안선> 때 김기덕 감독과의 작업은 또 어땠을까. 비평과 흥행 모두 실패했지만 그는 이 영화에서 김기덕-장동건 투 톱 시스템의 확고한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 장동건에게 그것은 실보다는 득이 되었을 것이다. 장동건의 행로를 들여다보면 단계단계별 계획을 확실하게 짜 놓고 스스로 영화인생을 만들어 가는 듯 보인다.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수상 가능성…

영화 〈무극〉에서 장백지와 열연을 펼치고 있는 장동건.
장동건의 요즘 일정은 거의 숨이 막힐 정도다. <태풍>의 개봉으로 국내에서의 홍보일정을 무작위로 소화해야 하는 데다 얼마 전 중국에서는 그가 주연을 맡은 첸 카이거 감독의 <무극>이 개봉됐기 때문이다. 2005년 12월 기준 이 영화는 3,000만 명의 관객들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2억 명의 중국 관객이 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올 만큼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니 중국에서만 장동건이 벌어들이는 한 해 매출액이 70억 원이라는 소리가 믿을 만한 수치가 된다.

<무극>은 내년 2월에 있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올라 있어 수상하든 안 하든 그 가능성만으로도 장동건은 첸 카이거와 함께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할 공산이 크다. 그런 점들을 겨냥해서 아시아판 <타임>은 일찌감치 장동건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기까지 했다.

장동건이 여기까지 올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솔직히 그리 많지 않다. 미남박명이라고, 잘생긴 외모를 가진 배우는 그 반대급부의 어려움을 톡톡히 맛보게 될 것이라고들 했다. 아마도 그 얘기를 장동건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박명이 되기 전에 그는 자신의 미남 얼굴을 개성 있는 얼굴로 바꾸려고 무던히도 애쓰고 있다.

그건 정말 잘한 선택이다. 장동건을 위해서도 그렇고, 이렇다 할 남자 연기자가 많지 않은 우리 영화계를 위해서도 그렇다. 깎아 낸 듯한 외모를 가졌지만 아무도 그를 미워하지 않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
  • 2006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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