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이궁금하다| 작가 윤후명 ‘앵무새 학당’훈장 되다

문인으로 한평생 살기 위해‘문학의 바다’에 투신했던 윤후명 씨. 벌써 문학 투신 40년을 맞았다.
그는 좀 피곤해 보였다. 눈은 붉었고, 목소리에는 감기 기운이 묻어났다. “내리 닷새 이어진 술자리 탓”이라면서 그는 맥주 한 병을 시켰다.

한 시절 빛나는 글을 쓰던 그는 이제 유명한 글 선생이 됐다. 벌써 18년째 소설 창작을 지도해 오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제자 중 창작집 <강남개그>를 낸 신장현 씨와 김유정 문학상을 수상한 김서련 씨를 축하해 주는 모임이 있었고, 다음 날엔 한 달에 두 번씩 있는 창작반 수업 후 뒤풀이가 술자리로 이어졌다. 그런 식으로 내리 닷새를 술에 절어 있었던 것이다.

종각 맞은편 먹자골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한국소설학당’이란 간판이 나온다. 이른바 ‘윤후명 글쓰기반’이다. 강의는 화, 금요일에 격주로 열린다. 화요반과 금요반에 각각 열서너 명의 수강생이 온다. ‘소설가 아무개’로 불릴 그날을 꿈꾸며 가슴앓이를 자처한 사람들이다.

소설쓰기 강의란 대체 어떤 것일까? 윤 씨는 “가르치는 거 별로 없어요. 늘 같은 말만 해요. 정직하게 써라.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앵무새 학당이라고 부릅니다”라고 했다. 또 한 가지는 억지로라도 ‘쓰게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 경기도 안산에 살 때였어요. 소설 강좌를 덜컥 맡아 놓고 간밤의 숙취로 강의를 펑크 내기 일쑤였죠. 그럼 수강생 보고 소설 쓴 것 들고 안산까지 내려오라고 해요. 자기 작품을 들고 그 먼 안산까지 찾아온 수강생의 작품을 읽어 보지도 않고 ‘이 따위가 소설이냐?’고 꽥 소리 지르고는 원고를 냅다 집어던집니다. 그렇게 몇 번 안산을 왕복하던 친구가 나중에 그럽디다. ‘선생님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윤후명 씨는 “나는 술 먹고 있더라도, 당신은 써라. 이것이 내 문학수업의 요체였다”면서 껄껄 웃었다. 어찌 글쓰기뿐이겠는가. 모든 배움의 주체는 결국 자기 자신으로 귀착되는 것이거늘….

놀라운 것은 날림공사판을 연상케 하는 윤후명식 문학수업의 결과물이 부실공사가 아니라 알토란 같은 성과를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소설학당’에서 윤후명의 문학 세례를 받고 등단한 사람은 <인살랴>의 권현숙, <마녀 물고기>의 이평재,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의 김이은 씨 등 40여 명에 이른다.

2003년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에서 백진(경향신문), 임정연(서울신문), 염향(세계일보) 씨 등 다섯 명이 소설 분야에 싹쓸이 당선되는 기록을 세웠고, 2004년엔 허혜란 씨가 동아, 경향 두 신문 소설 부문에 동시 당선됐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소설학당이 윤후명 아류들을 양산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가 수강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개성적인 글쓰기’다. 한국 문단에서 윤후명만큼 ‘개성적인 작가’도 흔치 않다. 특유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체로 마니아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는 원래 시인으로 문단 생활을 출발했다. 시와 운명적 만남이 시작된 것은 중 3 때다. 법무관인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떠돌다 서울에 정착했는데, 친구가 없던 외톨이 소년이 마음을 붙일 곳은 오직 시밖에 없었다고 한다.

용산고에 진학해서는 ‘시인으로 한평생을 살겠다’고 뜻을 세웠다. 법관이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고 연세대 철학과에 들어간 그는 대학 2학년 한 해를 꼬박 바쳐 시 한 편을 썼다. 시간이 좀 남기에 며칠 만에 또 한 편을 급조해 각각 다른 신문사에 보냈다.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빙하의 새>는 며칠 만에 만든 시였다. 그의 나이 만 20세 때 일이다.

이후 10년간 그는 열심히 시를 썼다. 그 결과가 1977년 나온 시집 《명궁》(名弓)이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새로운 갈증이었다. “시만으로 풀어낼 수 없는 그 무엇이 내 마음에 있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오랜 방황이 이어졌다. 입산을 했다가 환속하기도 했다. 10여 군데 출판사를 전전하며 어렵게 이어 온 시인의 생활은 피폐할 대로 피폐했다. 그에게 마지막 구원으로 다가온 것이 ‘소설’이었다.

“소설이라는 건 없는 얘기를 만드는 분야라고 폄하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내 삶이 하도 기구해서 나로 하여금 뒤늦게 소설가가 되지 않을 수 없게 몰아세운 것이죠.”

그는 문학청년 시절 시와 소설 습작을 병행했었다. 시인으로 등단한 이듬해 신춘문예에 응모한 단편은 윤흥길 씨 작품과 함께 최종심사에 올랐다.

“나중에 얘길 들어 보니 그때 심사위원이 김동리, 황순원 선생이었는데, 김동리 선생은 윤흥길 씨를, 황순원 선생은 저를 밀었다고 해요. 윤흥길 씨가 황순원 선생에게 세배를 가자 ‘같이 결선에 올랐던 그 사람은 아직도 문단에 안 나왔는가?’ 하고 말씀하셨대요.”

절망의 끝에서 써 내려간 단편 <산역>은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그는 소설가로 다시 태어났다. 소설가로 재등단하면서 그는 ‘누구도 쓰지 않은, 윤후명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을 쓰자’고 결심했다. 그가 도전한 분야는 ‘시와 같은 소설’, 즉 뚜렷한 이야기 전개 없이 주인공의 사유의 궤적을 따라가는 특유의 방식이었다.

미술로 치면 구상보다 추상에 가까운 이 소설 작법은 워낙 기승전결의 논리적 전개에 익숙해 있던 우리네 문단에 일종의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낯설고 생경한, 그러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문체, 논리적 구성을 초월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시공을 초월하여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는 이런 기법은 동료 문인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과 부닥치게 된다. 동인들마저도 “윤 형, 그거 산문이요 아니면 소설이요?” 했고, 한 소설가의 부인은 “선생님, 그 소설 끝난 것 맞아요?” 하고 물어 올 정도였다.


실크로드, 돈황을 작품 무대로…

소설 창작 강의를 하고 있는 윤후명 작가. 그의 제자들이 신춘문예를 싹쓸이 하다시피 당선되고 있다.
또 한 가지 그가 시도한 것은 한국 문학의 창작 공간을 세계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 민족과 연관 있는 해외 무대가 어딜까 고민하다가 실크로드에 주목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도시 돈황을 무대로 소설 《돈황의 사랑》을 썼고, 이 작품이 녹원문학상(1983년)을 받으며 소설가로서 입지를 다진다.

그는 1990년대 초 ‘느닷없는 결혼식’으로 적잖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난한 소설가와 그의 소설을 꼼꼼히 읽던 재벌가 규수는 그해 여름 통영 앞바다에서 열린 문학캠프에서 수강생들을 하객으로 모시고 백년가약을 맺었다. 신부 허영숙 씨는 GS그룹 허씨 가문의 일원인 삼양통상 고(故) 허정구 회장의 딸이다.

마침 문학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현장에 대기 중이던 방송사 카메라는 이 결혼식을 전국으로 생중계했다. 당시 일을 묻자, 윤 씨는 좀 쑥스러워했다. “이문열 형이 하라고 해서 했죠 뭐. 입던 남방 입고 결혼식 했어요” 라며 남 말 하듯 했다.

그는 독자와의 만남 자리에서 자신의 결혼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혼자 라면만 먹고 버티는데, 어떤 여성이 나타나 밤(생률)을 잘 치는 재주가 있어 그것으로 먹여 살릴 테니 술 그만 먹고 글 열심히 쓰라고 해서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

2006년으로 작가가 시인으로 등단한 지 꼭 40년이 됐다. 돌아보면 곤궁한 세월이었지만 ‘이거 아니면 안 될 거 같아’ 매달려 온 길이었다. 그런데 이 풍요의 시대에도 여전히 소설쓰기에 매달리는 사람이 나타날까. 이 질문에 작가는 이런 답을 내놓았다.

“예전에 대학에서 가르칠 때 한 여대생이 ‘저는 소설을 꼭 쓰고 싶은데, 소설이란 장르가 없어질까 봐 못 쓰겠어요’라고 하더군요. 그땐 그 말이 너무 어마어마해 답을 잘 못했는데, 이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건 소설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한 오해라고요. 소설은 결국 자기표현의 욕구인데, 인간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
  • 2006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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