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심은하와 김남주 때문에 유명해진 베라 왕의 웨딩드레스

패션계의 보석 베라 왕

글 신광호‘보그 코리아’패션 에디터
글쓴이 신광호님은 패션 디자이너 출신으로 남성 라이프스타일 패션지 (지큐 코리아)를 거쳐 현재는 패션 전문지 (보그 코리아) 에디터로 재직 중이다.
중국계 디자이너 베라 왕은 멋쟁이 부모 밑에서 일찌감치 패션 감각을 길렀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를 꼽는다면 누구일까? 얼마 전 이완과 고아라에게 또 한 차례 ‘박치기 웨딩 세리머니’를 연출한 앙드레 김일까, 이영애가 칸 영화제의 레드 카펫에서 입은 한복을 만든 이영희일까. 아니다. 심은하의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한 베라 왕이다.

베라 왕에 대해 우리가 아는 정보는 김남주와 심은하가 입은 웨딩드레스의 디자이너라는 정도다. 그러나 연예 가십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할리우드의 여자 스타들이 베라 왕에게 웨딩드레스를 맞추기 위해 돈을 물 쓰듯 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얼마 전 베라 왕은 제니퍼 로페즈의 결혼식을 위해 엄마와 10명의 들러리들을 위한 각각 두 벌씩의 드레스를 맞춰 주기로 했다. 그러나 결혼식이 깨지는 통에 제니퍼의 신체 굴곡에 맞춰 제작된 5만 달러가 넘는 드레스를 어떻게 할지 의견이 분분했다.

베라 왕의 드레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도대체 왕씨 성을 가진 그녀가 누군지, 그녀는 드레스만 만드는지, 심지어 베라 왕의 웨딩드레스를 입을 다음 연예인 신부는 누구일지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여기저기서 스크랩한 사진과 자료로 베라 왕의 한자 이름이 ‘왕서라’(王瑞娜)이며 1949년 6월 27일 생, 파리 소르본 대학을 나온 재원(才媛)으로 <보그> 패션 에디터의 경력이 있고, 1990년에 자신의 의상실을 열었고 1994년에 독립 브랜드를 시작했다는 사실들을 밝혀냈다.

베라 왕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한 이력을 지녔다. 칠흑같이 검은 긴 머리, 동양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이목구비가 신비감을 더한다. 그녀의 출신 성분은 심상치 않다. 중국군 지도자의 손녀(외가 쪽)로, 중국 제약업계에서 일하던 사업가 C C 왕과 최신 패션에 민감했던 플로렌스가 베라의 부모. 멋쟁이 엄마를 둔 덕분에 베라 왕은 어렸을 때부터 패션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베라 왕의 드레스는 여성들의 몸매를 매우 잘 살려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베라 왕은 여덟 살 때 인생의 첫 전환점을 맞게 된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스케이트를 선물받은 그녀는 아빠를 따라 센트럴 파크의 보트 연못으로 향했다. 스케이트를 탈 때의 자유와 스피드, 스릴에 감격한 그녀는 그날 이후 정식으로 스케이트를 배우겠노라고 떼를 썼다. 그리하여 새벽 5시부터 하루 7시간씩 스케이트를 탔고, 발레와 스케이팅을 함께 배웠다.

그녀는 파리 유학 시절 어머니와 함께 유명 패션쇼를 빠뜨리지 않고 관람했고, 이브 생 로랑이 만든 최초의 화이트 턱시도 가운데 한 벌을 사 입을 정도로 단골 고객이었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자연스럽게 패션 감각에 익숙했던 그녀는 스케이트 올림픽 대표 선발에서 탈락하자 패션계 입문을 선언했다.

뉴욕으로 돌아온 베라 왕은 <보그>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됐다. <보그> 시절 그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패션 화보들을 기획하곤 했다. 어빙 펜이나 리처드 아베돈 같은 전설적인 사진가들과 함께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동시에 지닌 ‘가학곀피劇?변태 성욕’에 관한 사진들을 촬영했던 것. 이런 와중에 자신의 열정이 ‘옷들을 촬영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 내는 것’에 있음을 깨닫자 1985년 랄프 로렌의 디자인 디렉터로 입사해 5년간 미친 듯이 일했다.

베라 왕은 불혹의 나이에 뉴욕에서 웨딩 부티크를 오픈하게 된다. 40세에 결혼한 그녀가 레이스만 넘실거리는 웨딩드레스가 꼴도 보기 싫어 직접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하기로 작정한 것.

베라 왕은 디자인은 물론 이미지 관리와 판매까지 직접 나섰다. 덕분에 고객의 선호도와 취향, 적절한 가격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와중에 최고급 맞춤복도 선보였다. 10여 년 만에 베라 왕은 미국 상류층은 물론 유명인사들의 입에서 빈번하게 불리는 이름이 됐다.

최근 베라 왕은 사업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본격적으로 기성복 라인을 론칭해 뉴욕 패션위크에도 참여하는 건 물론, 단골 고객들을 위해 남성용과 여성용 향수, 크리스털, 은식기, 도자기, 모피, 슈즈를 차례로 론칭했다. 특히 향수 판매는 작년 한 해에만 5,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등 경이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10대엔 스케이트 챔피언, 20대엔 <보그> 패션 에디터, 30대엔 랄프 로렌 하우스의 디자인 디렉터, 40대엔 정상의 패션 디자이너…. 여기까지가 베라 왕의 동화 같은 이야기다.

지난해 여름 필자는 베라 왕 레이블을 한국에 공식 수입하려는 여류 사업가를 우연히 만났다. 그 여사장은 자신이 오랫동안 웨딩 살롱을 운영하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먹힐 만한’ 아이템들을 수입하기로 했고, 필자는 패션 에디터의 식견으로 베라 왕의 한국 론칭을 기사화했다. 베라 왕 매장이 오픈한 얼마 후 김남주가 결혼식 때 베라 왕의 드레스를 입는다는 뉴스가 발표됐다.

지금 주변에서는 “웬 베라 왕 열풍이냐”며 의아해하는 눈치다. 대한민국 연예인들이 베라 왕을 선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외국 유명인사들의 모든 것을 차용하려는 한국 연예인들로선 그들의 웨딩 룩까지 따르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 결혼식을 올린 심은하와 김남주 모두 베라 왕의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베라 왕의 성공 비결에 대해 고객인 배우 제니퍼 코넬리는 이렇게 평했다.

“어떤 행사를 위해 베라 왕에게 드레스를 맞출 경우 그녀는 프로포션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한다. 그녀는 여성들의 몸매를 아주 잘 살려 준다.”

한 인터뷰에서 베라 왕은 “누군가 내 옷을 입었을 때 당사자의 몸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며,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고는 옷을 만들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다.

필자가 실제로 베라 왕을 본 건 지난 3월 뉴욕 패션쇼 취재 때였다. 그 컬렉션이 혹평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베라 왕은 요즘 최고의 순간을 즐기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CFDA)에서 주는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 상을 수상했으니까(CFDA 트로피는 패션 디자이너들에겐 기념비적인 상이다).

베라 왕은 파크 애비뉴와 사우스 햄튼, 팜비치의 집들을 오가며 살고 있다. 그녀는 일할 때 레깅스와 티셔츠를 입는다. 골프를 치는 주말이면 버뮤다 팬츠에 라코스테의 폴로 셔츠를 입곤 한다. 10대의 두 딸과 사업가 남편을 둔 성공한 미국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말이다. ■
  • 200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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