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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웃음 전도사’ 곽세라

|이런 삶| 가방 두 개가 전 재산인 21.5세기형 인간

“레이디스 앤드 젠틀멘, 여기 클럽메드 역사상 가장 활짝 웃는, 삶의 생기로 가득 찬 지오(GO·Gentle Organizer·클럽메드의 상주직원)를 소개합니다.”

5년째 클럽메드 GO로 활동하고 있는 곽세라. ‘아시아 지역 대표 GO 4인’에 뽑혀 클럽메드 홈페이지에 소개될 정도로 인기 있는 GO다. 그는 5~6개월 혹은 1년 단위로 클럽메드의 이 빌리지에서 저 빌리지로 옮겨 다니는데, 그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 그곳으로 휴가를 오는 단골고객이 수십 명에 이른다고 한다.

클럽메드는 전 세계 36개국 90여 곳에 자리 잡은 휴양 리조트 체인. 세계인이 함께 어우러져 즐기는 이 리조트의 핵심은 GO에 있다. GO는 스포츠 강사, 요리사, 바텐더 등으로 일이 나뉘어 있지만, 본연의 역할은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손님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GO들은 밤에는 각종 쇼에 등장해 ‘엔터테이너’가 되기도 한다.

집 없이 떠도는 세라의 전 재산은 가방 두 개에 다 들어간다. 비행기에 탈 때 짐칸에 부치는 트렁크 하나(35㎏까지 허용된다), 들고 들어갈 손가방(7㎏ 이하) 하나다. 그 이상으론 어떤 물건도 욕심내지 않는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버린다. ‘무소유 훈련’인 셈이다. 그러나 얼굴엔 언제나 웃음이 가득하다.

일본 홋카이도 사호르 빌리지에서 잠시 귀국한 세라는 상대방 말에 “굉장해요” “멋져요”라고 연신 추임새를 넣었다. 하이 톤의 리듬감 있는 목소리가 경쾌했다. 처음 만날 때는 ‘유쾌함’을 과장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그 분위기에 전염되고 만다. 세라는 자신의 웃음, 밝음과 가벼움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싶다고 했다. “가볍게 살아도 돼. 마음대로 살아도 돼”라고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단다.

●클럽메드 쇼에 등장한 고가세라 씨(앞쪽에서 두번째)
20대 중반까지 그는 광고회사의 잘나가는 카피라이터였다. 이화여대 영문과에 다니던 시절, 대학생 광고대상에 응모해 우수상과 장려상을 동시에 받은 세라는 1995년 대학 졸업 후 곧장 광고회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라면이 아니라 뉴면입니다’ ‘쌍용아파트엔 아내의 자리가 있습니다’ 등 히트작을 연이어 내놓았다.

상상력이 풍부한 세라는 아이디어 회의 때마다 빛을 발했고, 다른 팀 회의 때도 불려 가곤 했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광고쟁이’ 생활에 회의가 들었다. 크리에이터보다 광고주의 생각이 더 중요한 광고판에서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고집할 수가 없었다. 이때 누군가 자신의 귀에 대고 “지금이야”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는 인도로 떠났고, 인도에서 웃음 사두(수행자)가 됐다.

사춘기 시절부터 그녀는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처럼 여기 아닌 다른 곳에 또 다른 자신이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른 곳에 살고 있는 나’가 그리웠고, 언젠가는 두 번째 삶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인도에서 그는 ‘모범생 모드’에서 벗어나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의 본능대로 살았다. 사실 그때까지 세라는 너무 주변에 ‘맞추며’ 살아왔다. 두 살 때 미국 마이애미로 이민 갔다 중 2 때 다시 돌아온 그는 한동안 ‘왕따’의 위기에 몰렸다. 노래와 춤에 능하고 치어 리더로 활동하던 세라는 미국 학교에선 ‘스타’였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너무 쾌활해도, 의사 표현이 분명해도 왕따가 됐다.

카멜레온처럼 한국의 시스템에 적응해 얌전히 공부 잘하는 학생이 됐고, 그렇게 대학생활과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인도가 세라에게는 전기(轉機)가 됐다.


인도에서 찾은 제2의 삶

1999년 6월 인도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돼 델리대학에 갔을 때였다. 하루 종일 담당자를 기다리다 허탕 치는 날이 계속돼 등록하는 데만 1주일이 걸렸다. 혼자 델리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한 인도 남자가 “우리 집에 가서 차를 마시자”고 끌었다. 집에 들어가니 부인이 인도 의상인 사리를 입혀 줬다. 거울을 통해 사리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본 순간, ‘아, 집에 돌아왔구나’ 하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드디어 숨쉬기가 편해졌다.

대학 등록 후 강의실 구경도 안 하고 곧장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의 고향인 샨티니케탄으로 떠났다. 2년 동안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인도 곳곳의 아쉬람(수행 공동체)을 찾아다니며 명상과 요가, 인도 전통춤을 배웠다.

첫 번째 요가 스승으로부터 그는 “그대의 웃음이 세상을 밝히리라”는 말을 받고 ‘웃음 사두’가 됐다. 스승은 “눈을 뜨기 전 웃기 시작해 웃음의 향기가 온몸에 배어들게 하고, 잠들기 전 크게 웃어 마음의 먼지를 털어 내라”고 했다. 삶이 숙제가 아니라 축제라는 것을 웃음이 가르쳐 준다고 했다. 인도에서 세라는 그때까지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밝음과 가벼움의 에너지로 자신을 채우기로 결심했다.

2001년 여름 유학생 비자가 만료돼 2년 만에 인도를 떠났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클럽메드의 GO에 지원했고, 마침 빈자리가 있어 1주일 만에 인도네시아 빈탄으로 떠났다. 피트니스 강사로 GO 생활을 시작했고, 2004년 7월 아시아 태평양 지역 트레이너가 됐다. 2002년 사호르 빌리지에서부터 자신의 스트레칭 프로그램에 인도에서 배운 요가와 대학시절 홍콩에서 배운 태극권을 도입했는데, 강의실에 사람들이 다 들어오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다른 지역에도 이 프로그램을 보급하다 트레이너가 돼 빌리지를 옮겨 다니며 GO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2004년 12월 26일 쓰나미가 동남아를 강타했을 때 세라는 푸켓의 클럽메드에 있었다. 요가 교실을 끝낸 지 10분 후, 2층 야외 레스토랑에서 손님들과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바다! 바다!”라고 비명을 질러 시선을 돌리니 검붉은 물로 된 거대한 장벽이 꿈틀대며 밀어닥치고 있었다. 다행히 희생자는 없었지만 요가교실이 조금이라도 늦게 끝났다면 저지대인 요가 강습장에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대피소에서 밤을 지낸 후 어떤 사람이 다가와 “우리에게 요가 수업을 해 주세요”라며 청했다. 앞으로 나간 세라는 “안녕하세요? 저는 프로페셔널 쓰나미 요가 강사 세라입니다. 참, 수업료는 걱정 마세요. 오늘 아침 떠 내려온 여러분 짐 중에서 벌써 몇 개 건졌으니까요”라고 사람들을 웃긴 후 수업을 시작했다.

클럽메드에서 세라는 언제나 웃는 표정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그게 그의 직업이니 ‘고출력 웃음 발전소’인 셈이다. 그는 “웃기 어려운 상황에서 억지로라도 웃고 나면 웃음이 힘을 준다”고 말했다.

세라는 영어와 불어, 중국어, 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한참 불어로 전화하다 잠시 후 일어로 전화를 받는 식이다. 세계인들과 더 깊이 커뮤니케이션하고 싶어 계속 언어를 배워나갔다. DVD를 되풀이해 보며 불어를 익히고, 중국인 GO에게 중국어 강습을 받았다. 이제는 클럽메드 GO들에게 불어로 일어와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전 세계인과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하는 것. 그게 세라의 꿈이다. 요즘은 수화에 빠져 있다.

“나라마다 수화가 다르더라고요. 그걸 통일해 중급 영어 정도의 세계 공통 수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걸로 세계인 모두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할 작정이에요.”

세라의 삶은 다분히 몽상가적이다. 스스로도 자신의 안테나가 향하는 방향으로 몽유병자처럼 옮겨 다닌다고 한다. 역마살이 단단히 낀 자신의 삶을 ‘21.5세기형 인간’이라고 스스로 정의한다.

“여러분도 배짱과 용기를 가지고 내면의 목소리에 따르세요. 마음대로 살아도 돼요. 저처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알리고 퍼뜨리기 위해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곧 출간할 예정이다. ■
  • 200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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