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名門家)의 자녀교육|아들에게 과거시험 요령까지 가르친 고산 윤선도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조선 중기의 문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587~ 1671년)는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아버지였다. 함경도 삼수로 유배되어 있던 74세의 윤선도가 과거시험에 낙방한 큰아들 인미(仁美)에게 보낸 편지 ‘기대아서’(寄大兒書)를 보면 요즘 어떤 아버지가 이 정도로 자상하고 치밀하게 자녀에게 충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는 낙방한 아들을 위로한 후 과거시험 ‘노하우’를 다음과 같이 전해 준다.

“서술한 문장 중에서 사실에 대한 해석이 너무 간략한 것이 흠이었다. 대체로 과거시험 답안을 쓰는 요령은 너무 간략한 것보다 너무 자상한 것이 낫고, 너무 엉성한 것보다는 차라리 너무 치밀한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고금(古今)의 문자를 유념해서 자세히 보아, 돌려서 표현하거나 바로 이어서 표현하는 등의 묘를 터득한 뒤에 작문을 해야 흠이 없게 된다.”

고산은 편지에서 ‘적선’과 ‘근검’이 가문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덕목임을 다음과 같이 일깨우고 있다.

“고조부와 증조부께서는 근검절약하면서 적선을 실천했기 때문에 과거에 급제하는 등 집안이 크게 일어났지만 후대에는 사치해져 쇠약해졌다. ‘자만하면 손해가 있고 겸손하면 이익이 있다’는 말은 매우 훌륭한 교훈이니 마음과 골수에 새겨 두어야 한다.”

●해남 윤씨 종택 ‘녹우당’.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이다.
고산가(孤山家)에는 세 차례에 걸쳐 죄인이 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옥문을 열게 했다 해서 ‘삼개옥문 적선지가’(三開獄門 積善之家)라는 말이 대대로 회자돼 왔고 후손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요즘도 재벌들이 기부를 하거나 사회복지에 앞장서고 있기는 하지만, ‘적선’을 가훈으로까지 삼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기대아서’에는 종가 관리, 재산 분배, 노비 관리, 검소한 생활과 예절 등에 관해 8개 항목에 걸쳐 후손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세세히 기록하고 있다. 고산은 이 글에서 특히 “의복이나 몸을 치장하는 등 사치하지 말고 검소하게 살아라, 다른 사대부들이 흔히 하듯이 망아지를 길러서 이득을 보려 하지 말아라”는 등 검소한 생활을 거듭 당부하고 있다. 고산은 “나는 50이 넘어서야 명주옷이나 모시옷을 입었다. 시골에 있을 때 젊은 네(인미)가 명주옷을 입은 것을 보고 몹시 불쾌했었다”며 큰아들에게 사치스러움을 멀리할 것을 다시 한 번 주문하고 있다. 고산가는 고산의 이 편지를 가훈으로 여겨 오늘날까지 이어 오고 있다.

고산가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대하다는 점이다. 즉 가정에서는 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철저히 교육시키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는 앞장서도록 가르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세를 강조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대부분 명문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덕목이다. 고산가는 특히 남을 돕더라도 오만해서는 안 되고, 겸손한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고 가르쳤다.

정쟁에 휘말려 파직과 유배를 되풀이했던 고산은 후손들에게 과거에 합격하더라도 중앙정치를 멀리하고 대신 다른 방도를 터득하면서 살아갈 것을 권했다. 그게 바로 당시에 천시받던 실용학문에 힘쓰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자손들이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면서 ‘박학다식’의 가풍이 확고해졌다.

●(왼쪽부터) 고산의 증손자 윤두서의 자화상. 고산의 14대 손으로 ‘녹우당’을 지키는 종손 윤형식 씨 부부. 고산의 후손인 윤관 전 대법원장.
윤선도가 어린 시절을 보낸 해남 윤씨의 종택 녹우당은 시서화뿐만 아니라 실용학문인 풍수지리학, 의학, 천문학, 병가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접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잡학 도서관’ 역할을 했다. 중국의 외서 등 수많은 고서들이 즐비한 녹우당은 조선 후기 ‘호남의 르네상스’를 이룬 산실이 되었다. 이런 문화적 분위기로 인해 고산가는 윤두서, 윤덕희, 윤용 등 3대 화가를 배출해 독보적인 시서화의 세계를 펼쳤으며, 실학사상의 산실 역할을 하면서 다산(茶山) 정약용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주도적으로 살다 간 고산의 정신과 함께 시서화에 독보적인 재능을 발휘해 온 고산가의 가풍은 400년을 뛰어넘어 그 후손들에게도 드러나고 있다. 고산의 14대 손인 윤형식의 딸은 대학을 마치고 뒤늦게 화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의 손녀(윤지영)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동시집을 내기도 했다. 고산에서 시작된 박학다식의 유별난 가풍은 그 후손들을 문화의 바다에 빠지게 했고, 그런 가풍은 대대로 그 향취를 더하며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해남 윤씨 가문에는 정치인은 거의 없고 대신 법조인이 많다. 대표적인 법조인으로는 윤관 전 대법원장이 꼽히는데 종손 윤형식과 대학(연세대)을 함께 다녔다. 윤관 전 대법원장은 법조 집안으로 동생 윤전 씨가 변호사, 장남 윤준은 사법연수원 교수다. 윤 전 대법원장은 현재 영산법률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고산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한 집안의 학문적인 취향이 오랜 세대에 걸쳐 지속되면 가학(家學)의 전통으로 훌륭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대로 수집된 수많은 서적들은 후손들에게 ‘지성의 바다’에 빠져들게 하는 향기로 작용한다.

《소학》에는 3대에 걸친 의원이라야 약효가 있고 3대에 걸쳐 글을 읽은 집안이라야 문장이 나온다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약효를 내고 문장이 나오도록 부모가 앞장서 책의 향기로 가득한 집안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자녀교육의 첫걸음은 멀리서 구할 게 아니라 바로 집 안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
글쓴이 최효찬님은 경향신문 기자로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을 비롯해 《메모의 기술 2》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 200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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