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TOP을 만드는 교육법| 연간 25권 이상의 책을 의무적으로 읽게 만드는 학교

전주 상신고

2005년 초여름, 김용택 시인이 전북 전주시의 상산고등학교(교장 이현구겴鵑瑛?홍성대)를 찾았다. 이 학교 학생들로부터 일종의 ‘청문회’를 받기 위해서였다. 학교 대형 강의실에서 학생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선생님께서 쓰신 시 ‘그 여자네 집’에서 그 여자는 누구입니까?”
“그 여자네 집은 어디 있습니까?”
한 학생이 “시인의 사명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김용택 시인은 “현실과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학생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시는 얼마나 현실과 시대를 반영하고 있습니까?”
시인이 직접 자신이 쓴 시를 읽어 준다.

김용택 시인의 강연은 <시가 내게로 왔다>는 김용택 시인의 시집을 학생들이 읽고 그 내용에 대해 저자와 직접 토론을 벌이는 자리였다. 강연이 끝나고 한 학생은 “시인이 자신이 직접 쓴 시를 읽어 줄 때, 시가 정말 내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며 “주제, 형식, 수사법을 따지는 시 공부와는 많이 달랐다”고 말했다.

이 학교 특활부장 이종훈 교사는 상산고의 양서(良書) 읽기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책들을 고르고 그 책의 저자를 직접 학교로 초대하는 등 저자 섭외 업무를 맡고 있다. 이종훈 교사의 말이다.

● 전북 전주에 자리 잡고 있는 자립형 사립고 상산고등학교 전경.
“책 자체만 읽는 것이 독서가 아니라 그 안의 의미를 읽어 내는 과정 전체가 독서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오락성 위주의 책을 선호하고, 책 자체에서 흥미를 느끼고자 합니다. 학생들이 이런 습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교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와 직접 토론하는 자리는 학생들이 책 안의 의미를 읽어 낼 수 있게 도와줍니다. 책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쉽게 유도할 수도 있고요.”
2006학년도 대학입시에서 논술이 화두로 떠올랐다고 질문하자 이 교사는 “책을 잘 읽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하얀 종이에 촘촘히 찍힌 활자를 읽어 내는 행위가 아니라 손바닥만 한 책 안에서 책 밖의 넓은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 독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 요소입니다.”

상산고는 말 그대로 책 읽는 학교, 책을 읽게 만드는 학교다. 1년에 필독서만 25권이다. 그냥 읽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읽은 후 선생님과 친구들과 토론하고, 감상문을 써 내고, 마지막엔 저자의 설명을 듣는다. 시인 안도현, 강정인 서강대 교수, 이희근 단국대 교수 등이 상산고를 찾아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토론을 벌였다.

저자뿐만 아니라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상산고를 찾아 학생들의 관심 분야에 대해 강연했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 정운찬 서울대 총장을 비롯해 류시야 외교통상부 본부대사, 김영석 전주교통방송 국장 등이 이 학교를 찾았다. 학교 방송반 활동을 하고 있는 3학년 김소진 양의 말이다.

“저는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해서 아나운서가 되고 싶습니다. 학생들에게는 꿈이란 게 그저 막연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지난번에 SBS 아나운서부장이 학교를 찾아오셔서 강의를 해 주신 적이 있어요. 그 전과 후, 제가 꿈을 향해 노력하는 방식이 180도 달라졌어요. 꿈을 향한 저의 노력이 좀 더 구체적이 되었다고 할까요.”

이종훈 특활부장의 말이다.

“자신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다들 있게 마련인데, 그 일을 직접 하고 있는 분들의 말을 들으면 큰 교육적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자기동일시 효과’가 나타나 학생들이 자신의 꿈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평소 의대를 가고자 했던 학생들이 황우석 교수의 강의를 듣고 ‘의학자’라는 새로운 개념을 머릿속에 담을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결과였습니다.”

● 전주 상산고는 사회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초빙해 특강 시간을 갖는다.
학생들이 독서를 한 후 쓴 모든 글은 학생 스스로 자신의 파일에 정리해 모아 둔다. 상산고의 글쓰기 교육은 윤석민 전북대 국문과 교수가 담당하고 있다. 윤 교수는 1주일에 한 번 학생들을 지도한다. 윤 교수와 함께 연구하는 대학원 석겧迷?연구원 다섯 명이 함께 학교를 찾아와 학생들과 토론을 한다. 토론 후 학생들은 글을 쓰고, 원고는 석.박사 연구원들이 첨삭한다.

1981년 개교한 상산고의 이사장은 〈수학의 정석〉 시리즈로 유명한 홍성대 박사.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순종 진돗개를 포상으로 줄 정도로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2002년 자립형 사립고로 지정받은 상산고의 교장은 이현구 전 서울대 부총장이 맡고 있다.

이사장과 교장이 모두 수학과 출신인 상산고의 수학 교육도 특별하다. 김홍종 서울대 수학과 교수가 수학 특강을 맡고 있다. 학생들은 “연습장에 푸는 수학 문제 풀이가 아닌 재밌는 수수께끼 같다”고 말한다.

학교 교정은 대학 캠퍼스를 방불케 한다. 1학년의 경우 전북 외 타 지역 학생이 73%, 학생들은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한다. 신입생 경쟁률도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2003학년도에 2.28 대 1, 2004학년도 2.85 대 1, 2005학년도에는 360명 정원에 1,157명이 지원해 3.21대 1을 기록했다. 지원자 중에는 서울겙黎?지역 학생이 565명으로 지원자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학력이 우수한 학생들이 갈수록 많이 몰리면서 합격자 커트라인도 종합생활기록부(300점 만점) 부문의 경우 지난해보다 10점 이상 올랐다.

정희상 교감은 “내신성적 때문에 부모들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내려 해도 학생들이 안 가려 한다”면서 “학생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학교가 좋은 학교”라고 말했다. 정 교감은 “학력에 있어서 평준화는 있을 수 없으며, 평준화를 깰 수 없다면 좋은 학교를 만들려는 노력을 꺾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 2005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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