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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배는 찍지 마세요. 살이 쪄서 보기 흉하단 말이에요”

삼순이 김선아는 요즘 파김치가 됐다. 최근 모 업체의 광고 촬영 현장에서 만난 김선아는 드라마에서 볼 때보다 훨씬 살이 빠진 모습이었다.

“말할 힘도 없어요. 어젯밤도 삼순이 때문에 꼬박 샜어요. 한두 시간 잤나.”

김선아는 촬영 중간중간 소파에 얼굴을 묻은 채 눈을 붙이곤 했다. 장안에 불어닥친 삼순이 바람 덕분에 김선아는 이제 애써 “금선아라고 불러다오”라고 외치지 않아도 누구나 인정하는 ‘금선아’가 됐다. 오죽했으면 요즘 연예 전문 기자들 사이에 “삼순이 인터뷰 따기가 대통령 만나기보다 더 힘들다”는 푸념이 나돌겠는가. 이날 촬영에 참여한 스태프들조차 핸드폰과 개인용 디지털 카메라에 김선아의 모습을 담기 바빴다. 그런 스태프들에게 김선아가 정중하게 부탁했다.

“배는 찍지 마세요. 살이 쪄서 보기 흉하단 말이에요.”


달걀 한 판(정통 달걀판의 구멍은 서른 개)을 꽉 채운 나이의 김지영 씨. 얼마 전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20대에 몇 번의 사랑과 이별을 겪은 그녀. 그때마다 곁에는 그녀의 눈물 젖은 넋두리를 들어 주던 든든한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서른 고개에서 ‘느닷없이’ 맞닥뜨린 또 한 번의 실연. 언제나 치어 리더로 남아 있을 것만 같던 친구들은 이제 없다. 아이 엄마가 된 친구들은 이제 20대 연애 레퍼토리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는 그녀를 토닥거려 줄 여유도, 인내심도 없다.

홀로 쓸쓸히 이별을 삭힐 수밖에 없었던 지영 씨에게 뜻밖의 동갑내기 ‘연애 상담사’가 찾아왔다. 그녀의 상담사는 수·목요일 밤마다 만나는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 삼순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메가톤급 배신을 때리고 딴 여자와 바람난 남자친구를 잊지 못해 화장실 구석에서 시커먼 마스카라 눈물을 뚝뚝 흘리며 삼순은 말한다.

“지금 내가 울고 있는 건 그를 잃어서가 아니다. 사랑, 그 뜨겁던 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게 믿어지지 않아서 운다. 사랑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걸 알아 버려서 운다. 아무 힘도 없는 사랑이 가여워서 운다.”

어느새 시커먼 삼순의 마스카라 눈물이 그녀에게 전이됐다. 배신을 때린 ‘엑스’(전 남자친구를 지칭하는 은어)를 향해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X자식’ ‘말탱구리’ 같은 날것의 욕들을 대신해 주는 것도 삼순이다.

어느새 지영 씨도 못된 남자에 대해, 냉혹한 세상을 향해 삼순이처럼 일갈(一喝)을 날려 본다. 사랑과 배신에 대해 거침없이 내뱉는 삼순의 대사를 따라 때로 격분하고 때로 울컥하다 보니 지영 씨의 심리 곡선은 어느덧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김지영은 어느새 김삼순이 되고, 김삼순은 어느새 대한민국 30대 싱글녀들의 감정이입 대상이 된 것이다.

삼순은 ‘여우’라기보다는 ‘곰’에 가깝다. 비음을 한껏 넣어 남자들에게 애교 떨며 기회를 노리는 영악한 여우가 아니라, 사랑에 요령을 들이밀지 못하는 곰이다. 하지만 이 곰은 절대 미련 곰탱이는 아니다. 겉은 강해 보이지만, 속은 한없이 여린 외강내유(外剛內柔)의 전형이다.

‘뚱뚱녀’라는 컨셉트도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삼순이가 화장실 변기 위에 걸터앉아 헤어진 남자친구에 대한 원망의 눈물을 쏟아 내는 장면에서, 중요한 오브제 하나가 삽입돼 있다. 바로 삼순이가 화장실 문에 걸어 놓은 코르셋이다. 이 코르셋 한 장이 삼순과 시청자들의 거리를 확확 줄이는 촉매 역할을 한다. 볼품없이 축축 늘어진 살덩이를 쑤셔 넣고 촌스럽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 했던 것은 나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삼순이도 그랬던 거다.

만약 삼순이가 여느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미스코리아 뺨치는 몸매에 딱 달라붙는 최신 유행 의상을 걸치고 엉덩이를 쌜룩쌜룩 거렸다면 많은 이들이 벌써 채널을 돌렸을지 모른다.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평균 몸매’의 등장은 ‘평균 캐릭터’를 완성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베이스가 됐다.

드라마 김삼순의 힘은 ‘대사’에서 나왔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시청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그녀가 내뱉는 말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시청자들이 공감 가는 대사를 올리는 ‘삼순·삼식 어록’ 코너에는 1만여 건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고, 이 어록들은 드라마 인기를 업고 인터넷을 통해 무서운 속도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김삼순 어록의 특징은 과장된 코믹 모드와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신파 모드가 공존한다는 것. 결혼정보회사 사장을 향해 “백수라고? 그게 내 잘못이야? 경제 죽인 놈들 다 나오라고 해!”라고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가, 첫사랑의 추억을 못 잊는 희진에게 “추억은 추억일 뿐이에요. 추억은 아무 힘도 없다고요”라고 읊조리는 식이다. 그래서 보는 이들은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는다.

“삼순의 대사는 에두르지 않고 너무나 직설적으로 튀어나와 나와 시청자들로 하여금 동떨어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하죠. 거기에다 삼순이 독백하는 형식으로 흘러나오는 신파조의 대사는 사랑조차 빨리 오고 빨리 가는 인스턴트 시대, 언제나 곁에 있을 것 같은 삼순의 말이 시청자들에게 페이소스(pathos·연민의 정)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합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의 ‘김삼순 어록’에 대한 단상이다. 삼순의 대사는 형부와 처제의 사랑을 독특한 시선으로 그렸던 드라마 <눈사람>을 썼던 김도우 작가가 썼다. <눈사람>에서 윤리의 궤도를 이탈한 사랑을 아름답게 승화시켜 줬던 명대사를 기억한다면 ‘삼순·삼식’의 화법에 고개가 끄덕여질 법하다.

‘김삼순’에 열광하는 이유로 캐릭터의 진화를 꼽는 이도 있다. 평범한 노처녀가 ‘계약연애’로 인해 재벌 2세 진헌(현빈)과 사랑에 빠진다는 극의 구도는 영락없는 ‘현대판 신데렐라’ 구도다. 하지만 삼순은 분명 기존 신데렐라형 캐릭터와는 다르다. 왕자가 유리구두를 자기 앞에 들고 올 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 눈물 뚝뚝 흘리고 나서도 다음날 아침이 되면 캔디처럼 ‘그래도 난 쓰러지지 않을 거야’라며 꿋꿋하게 다시 시작한다. 그런 면에서 ‘순종 신데렐라’라기보다는 캔디형으로 변한 ‘변종 신데렐라’인 것이다.

이 모든 걸 차치하고, ‘만약 이 드라마에 김선아라는 배우가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을 해 본다면, ‘삼순 폐인’들은 순간 아노미 상태에 빠진다. 다른 세 주인공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냉정히 말해 <내 이름은 김삼순>은 김선아의 모노드라마(일인극)임을 부인할 수 없다. 김선아가 아니면 누가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망가질 수 있으며, 누가 그렇게 7kg이나 불린 몸으로 브라운관에 등장할 수 있었겠는가.

얼마 전 조선일보와 만난 드라마 밖 김선아는 드라마 속 김삼순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아니 어쩌면, ‘드라마 밖 김선아’의 캐릭터가 ‘드라마 속 김삼순’에 옮겨져 있다는 말이 맞겠다. 김선아는 엉뚱하고, 털털하고, 솔직하다. 사실 데뷔 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였다. ‘낯선 여자에게서 그 남자의 향기가 난다’라는 카피로 유명해진 한 화장품 광고 속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며 지나가던 여인, 그 여인이 김선아였다면 당신은 믿겠는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그녀. 그녀에게 삼순이는 분신 같은 존재다. 어찌 보면 삼순은 또 다른 김선아인 셈이다. “남들 보기에 아무렇지도 않은데 괜히 저 혼자 생각에 주눅 들어 꿍한 사람들 있잖아요. 삼순이는 그런 사람들 속내를 폭발적으로 내뱉어 주지요. 정도 많고 따뜻한 ‘된장찌개’ 같은 여자이기도 하고요.” ■
  • 200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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