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남 라이프」의 상징 된「김영모과자점」金永模 회장

『運(운)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라
최악의 경우를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라
최악의 경우를 개선하라
색깔만 봐도 빵의 상태를 안다

사단법인 대한제과협회 회장이자 「김영모과자점」의 대표인 金永模(김영모·52)씨가 출근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등 강남 지역에 있는 네 개의 점포를 둘러보는 일이다. 점포를 돌면서 매장에 진열돼 있는 「빵들의 표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金회장은 구워진 빵과 과자들의 색깔만 보고 소금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설탕의 양이 적당한지 한눈에 알 수 있다고 한다. 눈으로 보고 제대로 구워지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빵이나 과자들은 가차없이 폐기처분된다.

제과점을 연 지 얼마 안 돼 밀가루 한 포대가 아쉬웠던 시절에도 소보로 빵에 덮여야 할 소보로 180g 중 2g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량을 폐기한 일도 있었다. 원래 사용하던 치즈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치즈 스틱을 전량 폐기한 일도 있었다.

『가끔 저의 성공 비결을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때 제 대답은 「정직」이라는 한 마디예요. 모든 사람이 정직해야 하지만 특히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가장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과 가족들의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서 폐기처분하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까. 밥을 굶는 사람들도 많은데….

愚問(우문)이었다. 손사래를 치며 金회장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어려운 사람들일수록 더 좋은 제품을 주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무의탁 장애청소년 시설 등에 빵을 보낼 때는 더 완벽한 제품을 보내기 위해 애씁니다. 그리고 폐기처분한다고 해서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아닙니다. 폐기처분된 제품들은 동물이나 가축이 먹는 사료로 만들어집니다』


청년기의 방황

외국의 유명 브랜드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서울 강남 지역에서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내걸고 성공한 金永模 회장. 1998년에는 제과제빵 기능장이 되었고 그의 이름을 딴 빵과 과자는 여유와 고급스러움을 상징하는 이른바 「강남 라이프」의 상징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자신의 이름을 「강남 라이프」의 상징으로 올려놓은 金회장의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다.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그는 광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신문사 기자였던 부친과 어머니의 이혼으로 金회장의 유년 시절은 불우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경북 왜관의 이모 집으로 가서 얹혀살았다.

대구고등학교를 2학년 때 중퇴하고 대구 금강당제과에 들어갔다. 일은 즐거웠지만 몸이 쇠약해지면서 결핵에 걸렸다. 그때 처음으로 집에 도움을 요청했다. 집에 도움을 요청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6개월간 절에서 결핵을 치료한 후 만 열아홉 살이 되던 1972년에 상경, 당시 최고의 제과점으로 꼽혔던 보리수제과, 나폴레옹제과에서 일했다.

열심히 일했지만 그의 가슴 한 켠에 자리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원망도 쉬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그가 의지한 것은 술이었고, 손이 떨리는 알코올 중독 수준에 이르렀다.

알코올 중독 청년 金永模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1974년의 군 입대였다. 남들은 오히려 군대에서 배우고 나온다는 술과 담배를 그는 군대에서 끊었다. 그는 그곳에서 책을 만났다. 먹고살기 바빠서, 술 먹기 바빠서 접할 수 없었던 책들을 마음껏 접할 수 있었다.

글씨체가 좋다는 이유로 행정병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시간이 많았던 그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 가운데 표지도 없어 제목도 알 수 없는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되는데 그 글귀는 지금까지 金회장의 인생에 방향타가 되고 있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라, 최악의 경우를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라, 최악의 경우를 개선하라>

이 글귀를 대하면서 그는 생각이 바뀌었고, 생각이 바뀌면서 그의 삶도 바뀌게 되었다.

『저는 군대에 가면 모든 게 끝나는 걸로 생각했어요. 손이 무뎌지면 좋은 빵을 만들 수 없거든요. 군복무하는 동안 손이 무뎌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책을 읽고 나서 자신감을 얻게 된 겁니다』

당시의 군대 휴가는 25일이었다. 휴가 나오면 25일 내내 친구가 일하는 제과점이나 자신이 군대에 가기 전 일하던 제과점에 가서 일했다.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1982년에 金회장은 친구 형님이 운영하던 서초동 빵가게를 인수해 「김영모과자점」 1호점을 냈다.

『제가 처음 과자점을 낼 때는 외래어로 지은 상호가 유행이었어요. 제가 제 이름을 상호로 내건 이유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어요. 저는 지금도 그때의 마음으로 빵을 만듭니다』

「김영모과자점」은 강남 지역에서 금방 유명해졌다. 단순한 손재주로 「김영모과자점」이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국내에 맞는 유산균을 찾고 배양기술을 익히기 위해 프랑스 등 해외를 수차례 드나들었다. 그 결과 천연발효로 소화가 잘되는 빵을 만들 수 있었다.

『제 과자점이 출발할 당시 서초동에는 부유층들이 입주해 살기 시작하던 때였어요. 제 기술과 지역 정서가 잘 맞아떨어진 거죠』

─運(운)도 따라 준 거네요.

『따라 주었죠. 그런데 운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아요. 저는 제 빵집을 열기까지 피나는 준비를 해 왔어요. 노력이 먼저였고 운이 그 다음이었죠』


『경쟁하니 매출 늘었다』

金회장은 매장에 진열된 빵의 색깔만 보고도 제대로 된 빵인지 아닌지 구별한다.
「김영모 과자점」은 1982년부터 2005년까지 매달 5~10개씩의 신제품을 개발, 1000여 종의 빵과 케이크를 판매했다. 현재는 유산균 자연 발효빵, 모짜르트 식빵, 데니쉬페스츄리, 레스와인을 이용한 빵, 치즈 케이크 등 빵과 케이크 400여 종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습니까.

『좋은 제과·제빵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소재를 찾느냐입니다. 신문, 잡지 등의 언론매체와 서적을 많이 읽어요. 건강에 좋다는 어떤 소재가 보도되면 그걸 우리 빵이나 과자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를 궁리하게 되죠. 흔히들 도자기를 만드는 일에는 혼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제빵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지역 사람들도 좋은 빵을 먹고 싶어 할 텐데요.

『다른 지역의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저는 앞으로도 직영체제만 하고 프랜차이즈는 안 할 생각입니다』

지난해 6월에는 강남 지역에서 이른바 「빵 전쟁」이 벌어졌다. 강남 지역의 「빵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던 「김영모과자점」에 신라호텔이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상가 내에 베이커리 「아티제」를 개점하면서 도전장을 낸 것이다. 개인 브랜드와 대기업 브랜드 간의 한판 대결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金회장은 「빵 전쟁」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표시했다. 오히려 「아티제」의 타워팰리스 입점이 잘된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언론에서 빵 전쟁이라고 붙인 거지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아티제의 타워팰리스 입점은 강남 지역 고객들의 선택권을 높여 주는 바람직한 일이에요. 경쟁은 서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죠. 김영모과자점이 특정 지역을 독점하면 그 지역 사람들로부터 김영모과자점 제품의 우수성을 입증받을 수 없잖아요? 비교를 할 수 없으니까요. 경쟁은 제품의 우수성을 입증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아티제가 들어온 후 우리는 매출이 늘었어요』

金永模 회장이 하루 중 가장 희열을 느낄 때는 제품이 만족스럽게 나왔을 때와 직원들이 고객들을 친절하게 맞는 모습을 볼 때라고 한다. 복지시설에 무료로 빵을 지원할 때도 그런 느낌이라고 한다. 金회장은 「성공」의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모든 선후배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자신의 여유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金永模. 성공에 대한 그의 기준을 그 자신의 삶에 그대로 대입하면 그는 성공한 사람이다. ■
김영모

1953년 전남 해남 출생. 고교 중퇴. 17세에 경북 왜관에서 보조로 제과 일 시작. 1982년 「김영모과자점」 창업. 1998년 대한민국 제과 기능장. 일본 동경제과학교 연수. 프랑스 브랑제리 제빵학교 연수. 독일 하노버대 제과제빵과 수료. 대한제과협회 회장.
  • 2005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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