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나이에 전성시대 맞은 趙英男의 롱런 비결 여섯 가지

변변한 히트곡도 없이 30년을 가수로 버티고 화투짝만 그려도 개인전을 열면 몽땅 팔려 기성 화가들을 기 죽게 하고, 이젠 글솜씨로 신문출판계까지 돌풍을 일으키는 남자, 이 무서운 영감은 요즘 무척 조심스럽게 산다고 말한다.
『너무 재수가 좋아 걱정될 정도』

花樣年華(화양연화).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때. 趙英男(조영남)에겐 60이 넘은 지금이 최고의 전성기이자 화양연화다.

1945년생(호적엔 1944년생)인 그는 1969년에 「딜라일라」란 노래로 공식 데뷔한 이후 가장 많고 화려한 스케줄과 대중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스스로도 『너무 재수가 좋아 걱정될 정도』라고 한다.

지난해엔 광주 비엔날레 초청 작가 겸 홍보대사로 활약했고 KBS 「열린음악회」 모스크바 공연에서 러시아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9월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35주년 기념콘서트, 크리스마스엔 메리어트호텔에서 디너쇼를 열어 생활비를 마련했다. 2005년 새해가 밝자마자 뉴욕과 워싱턴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지난해 일본국제교류기금으로 일본을 다녀와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친일선언」이란 도발적 제목의 책을 펴내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또 3월부터는 경향신문 객원기자 자격으로 매주 1면 전체를 할애해 「조영남의 울퉁불퉁 세상 보기」란 난도 직접 꾸민다. 물론 KBS의 `「체험 삶의 현장」, `「조영남이 만난 사람」 등의 방송 진행도 계속 맡고 있다. 음악, 미술, 방송, 글 등 4개 분야를 석권하며 맹활약하는 이는 대한민국, 아니 세계에서도 그가 유일할 게다.

환갑에도 바퀴 달린 운동화를 신고 다니고 방송 중에도 데굴데굴 굴러 가며 웃는 푼수 영감, 어떻게 보면 제대로 된 「고정 수입」 하나 없고 自他(자타) 공인하는 「안 생긴 얼굴의 대명사」인 조영남. 36년 이상을 방송과 무대에서 지겹도록 보며 때론 감탄하고 때론 지겨워 욕을 했던 그가 어떻게 이 조급증과 早老(조로)화의 시대에 빛을 발하는 걸까.


부러운 남자 반열에 오르다

다양한 활동이야 자기 의지로 가능하다. 그저 자기만 부지런하면 된다. 하지만 조영남에게 더욱 신기한 것은 각계각층에서 그를 좋아하고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자꾸 늘어 간다는 것이다. 그와 오랜 친분을 지속해 온 이들도 의절하지 않고 계속 만나고 있으며 새삼스럽게 그의 매력을 발견한 중년 남성들도 「만나고 싶다」고 뜻을 전하고 영화, 연극 등을 함께 보러 가는 여성들은 다 20대이다.

『내가 원하는 여자의 기준은 소박해. 그저 예쁘고 젊고 착하고 돈 많으면 된다구』라고 뻔뻔한 농담을 해도 여자들은 까르르 웃으며 달려온다. 젊어서는 「딴따라 주제에 너무 튄다」 「또 이혼했다더라」 등의 비난에 시달리던 그가 21세기가 되더니 행복한 남자, 심지어 제일 부러운 남자의 반열에 올랐다.

변변한 히트곡도 없이 30년을 가수로 버티고 화투짝만 그려도 개인전을 열면 몽땅 팔려 기성 화가들을 기 죽게 하고 이젠 글솜씨로 신문출판계까지 돌풍을 일으키는 남자, 이 무서운 영감의 저력과 힘은 뭘까. 지난 수년간 멀리서 가까이서 그를 관찰 분석해 본 결과는 이렇다.

▲치밀한 전략가다: 때론 푼수처럼 보이고 횡설수설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의 모든 행동과 말은 엄청나게 노력하고 잔머리를 굴리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나온 것들이다. 데뷔 당시 시력도 좋았던 그가 커다란 뿔테 안경을 써서 특징적인 인상을 만든 것. 서울대에서 정통 성악을 전공했지만 언젠가 장르를 초월해 실력 있는 가수가 살아남는다는 판단으로 미8군에서 시작, 대중가수로 전환한 것, 1973년 첫 개인전을 연후 30여 년을 꾸준히 그림을 그리면서 다른 화가들이 절대 그리지 않는 화투, 태극기, 바둑알 등을 그린 것은 그의 탁월한 전략이다. 만약 그가 대가들과 견주며 풍경화나 인물화를 그렸다면 오늘날 그 엄숙한 한국화단에 진입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지난 「열린음악회」의 모스크바 공연 때도 마찬가지. 공연 일정이 정해지자마자 그는 러시아 노래를 연습했다. 다른 가수들은 자기 히트곡만 불렀지만 조영남은 러시아 민요를 러시아말로 불러 떠나갈 듯한 갈채, 러시아 여성들의 포옹까지 함께 받았다. 여럿이 선 무대였지만 주인공은 그였다.

글쓰기 역시 그렇다. 그의 글은 발상은 기발하지만 말하듯 거침없고 솔직하고 참 쉽게 읽힌다. 그는 사람이든 글이든 무슨 일이든 재미있어야 최고라고 믿는 재미즘의 신봉자인 재미스트이다. 재미있고 쉽게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그는 주변 사람들이나 사건을 집요하게 관찰해 특징을 잡아내고 참고서적도 읽고 몇 번씩 원고를 고치고 고쳐 쓴다. 아직 컴맹이어서 원고지에 직접 원고를 쓰는데 늘 몇 번씩 고친 흔적이 남아 있다.


남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남자

▲대화의 마술사다: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대화에 능숙하지 못하다. 말 잘하는 남자들은 자신의 말솜씨에 도취되어 일방적인 강의를 한다. 주제 역시 정치나 스포츠 등으로 한정되어 있다. 가장 흔한 게 군대시절이나 축구 이야기다. 오죽하면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남자들의 대화가 군대에서 축구하던 이야기란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하지만 그는 영화, 음악, 문학, 철학, 종교, 연예와 연애에 이르기까지 어떤 주제로도 몇시간이고 떠들 만큼 경험과 지식이 풍부하고, 무엇보다 쉽게 말한다. 도올 김용옥과 만나면 논어, 맹자를 이야기하고, 작가 이윤기씨를 만나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들고, 마약담당 검사와 만나면 마약을, 때론 동네 아줌마처럼 연예계 뒷얘기를 해서 사람들을 뒤집어 놓는다.

그러나 더욱 큰 장점은 이야기를 잘 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냥 뚱하게 듣는 게 아니라 『그렇지』 하며 추임새도 넣어 주고,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듯 박장대소하거나 뒹굴어 가며 온몸으로 감동을 표현한다. 심각한 고민을 털어놓아도 정말 함께 고민한다는 듯 끝까지 최선을 다해 경청한다. 여자들에게는 말 잘하는 남자보다 잘 들어 주는, 아니 들어 주려는 남자가 훨씬 매력적이다.

▲여자들과도 잘 놀 줄 안다: 「여자와는 술과 섹스 외엔 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무식한 남자들이 많다. 그는 여자들과 밥 먹고 수다 떨고 영화, 오페라, 음악회 등 각종 공연을 가고, 자기 화투 그림을 탐내면 화투장을 주며 직접 그리라고 미술 교사 노릇도 한다. 쇼핑도 잘 다닌다. 여자들과 뭔가를 만들며 놀거나 자기 마누라가 아닌 여자와 심지어 새벽시장까지 옷 구경을 하러 가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

▲利他的(이타적)이다: 뜻밖에도 자기보다 남들을 먼저 배려한다. 다른 이들은 체면과 명분 때문에 안 만나는 사람을 그는 욕을 먹어 가면서도 만난다. 그는 한때 강간 폭행범으로 구속된 개그맨 주병진의 구명운동에 동참했다. 주병진의 뛰어난 재능을 살려 주기 위해선 자기가 망신당할 각오가 돼 있었단다. 「노랑나비」로 유명한 재미교포 모델 이승희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아무도 파티를 열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를 초대한 기획사가 그에게 SOS를 쳤다. 「플레이보이」誌(지)에 나와서라도 한국의 아름다움을 자랑한 공로는 인정해 줘야 할 것 같아 그가 총대를 메고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어 줬다. 배려는 약한 자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그는 할머니를 만나도 「여성」으로 대한다. 칠순이 넘은 정광모씨와 만나도 그는 이성적인 긴장감을 즐긴다고 한다. 나이 든 여자를 여자 취급 해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普施(보시)의 수준이다. 그가 복받는 이유가 다 있다.

식당에 가면 대부분 밥값을 그가 계산한다. 밥값만이 아니라 그날 서빙을 했던 아가씨들에게 팁도 후하게 준다. 주문을 할 때도 『난 자장면, 근데 넌 뭐 먹을래?』라고 하지 않고 그 식당에서 제일 맛있거나 비싼 것을 주문한다.

또 놀라운 利他정신은 청탁을 안 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변엔 온통 잘 나가는 사람들 투성이다. 鄭東泳(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비롯, 그의 콘서트엔 국회의원만 30여 명 이상 참석한다. 재벌, 화가, 대학총장, 방송국 간부, 심지어 조폭까지 다채롭다. 그런데 그는 청탁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청탁으로 당장 문제가 해결되어도 결국 나중에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란다.


「혀를 깨물 때」를 아는 남자

▲잘난 척을 안 한다: 그는 자칭 「딴따라」지만 서울대 출신이고 미국에서 유명 신학대학을 다녔다. 저서 「예수의 샅바를 잡다」란 책을 보면 그가 얼마나 신학공부를 열심히 했으며, 고대 신화와 역사에 밝은지 놀랍기만 하다. 李箱(이상)과 羅喆(나철)에 관해서는 거의 학자 수준으로 책을 읽고 자료를 모았단다. 「월간미술」이란 전문지 미술평을 쓸 만큼 미술에도 박학해 현대작가들의 이름도 줄줄 왼다. 손재주가 많아 어지간한 물건, 침대까지도 뚝딱뚝딱 만들어 낸다. 나 같으면 「종교란 게 말야」 또는 「우리 미술계를 보자면…」 「이 가구는…」 등 하염없이 떠들어 댈 텐데 자기가 먼저 화제를 끄집어내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연령과 계층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비결을 그는 『혀를 깨물 때를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 남자들은 나이 들면 생각이 많아지고 그 많은 생각을 「피력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자꾸만 뭔가를 말하려 하지. 그건 암보다 무서운 노인병이야. 난 「이 이야기는 꼭 해야겠다」란 생각이 턱밑에 차도 혀를 깨물어서라도 피력 의지를 경계해. 내 말 한 번 참으면 젊고 참신한 이들을 늘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뭐 하러 떠들어?』

환갑에도 영감 분위기가 안 나는 건 그 덕분이다. 그래서 나이 든 사람들은 그를 라이벌로 여기지 않고, 젊은이들은 따분해하지 않아 항상 주변에 사람들이 꼬인다.

▲유머감각이 탁월하다: 그는 늘 유쾌하다. 아니 적어도 항상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 즐겁게 사는 것, 「웃다가 죽자가 아니라 죽어서도 웃자」가 인생 모토라는 그는 초상집에 가서도 고인 추모는 하지만 웃을거리를 찾는다. 고운봉, 황금심 등 선배가수 장례식에서 후배들이 고인들의 히트곡을 부르며 추도하는 장면을 보며 그는 「내가 죽으면 딜라일라는 좀 심하고 화개장터를 부를 텐데 너무 웃기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

얼마 전 한 저녁모임에서 어느 중년 독신남이 『난 4월까지 내복을 입는데 그게 좀 이상하고 여자를 만나는 데도 문제가 될까』라고 하자 그는 곧바로 답했다.

『당신이 내복 입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아. 우리에게 내복 입으라고 강제로 권하지도 않았고 남의 내복을 빼앗아 입지도 않았잖아. 문제는 봄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거지. 기껏 봄이 1년 만에 찾아왔는데 그걸 거부하고 4월까지 내복을 고집하면 봄의 입장은 뭐냐구. 또 여자 만날 때는 직전에 화장실에 가서 벗으면 되잖아』

「영원한 자유인」 「대한민국의 조르바」 등으로 불리는 그에게 『바가지 긁는 마누라도 없고, 항상 고상한 척 체면 의식할 필요 없이 정말 자유분방하게 사는 것 같다』고 부러워하면 그는 코웃음을 친다.

『내가 뭘 자유로워? 나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산다구. 내가 언제 발가벗고 거리에 나서기를 했어, 아니면 소리 지르며 데모를 했어? 그저 평범한 가정생활의 틀에 얽매여 있지 않다뿐이고 그걸 불행이 아니라 다행이라고는 생각해. 하지만 지금도 자다 깨서 화장실에 갈 때 넘어지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고 무대에 서면 떨리고, 혼자 사는 홀아비로 밤이 지겨우니까 나쁜 짓 안 하려고 열심히 그림을 그린 거라구. 덕분에 화가란 명성도 얻고 그림도 잘 팔려서 좋지. 세상에 공짜는 없어』■
  • 200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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