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나무의 말

‘어쩌다 나무농부’ 이광열

기자에서 3대째 나무농부로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이광열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지역 신문기자로 일했다. 이후 영농조합법인에 입사해 농산물 유통과 판매에 관한 시야를 넓혔다. 경북 경산시 하양면 상일농원에서 3대를 이어 묘목농사를 지으며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 〈어쩌다 나무농부〉를 운영하고 있다.

#이음
봄은 봄인데, 하루하루 볼에 닿는 바람의 기운이 다르다. 어떤 날은 이게 봄인가 싶을 정도로 바람이 차더니, 금세 정말 봄이다 싶게 볕이 따갑다. 같은 봄이라 해도 작물을 심는 일은 매일이 다르다. 날씨가 좋아졌다고 서둘러 씨앗을 심었다가는 꽃샘추위에 냉해를 입고, 따뜻할 때를 기다리며 늑장 부렸다가는 더 크게 자랄 수 있는 시기를 놓친다. 자연이 하는 일을 인간이 쉬이 알 리가 없기에, 농부의 일이란 하루도 쉽지 않다.

“사람도 비슷한 것 같아요. 빠르다고 자만하지 말고 느리다고 서두르지 말자는 걸 깨닫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을 연마하며 적당한 시기를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림)라는 사자성어처럼.”

유튜브에서 ‘어쩌다 나무농부’로 활동하는 이광열 씨에게 농부 인생은 적당한 때에 한 계절이 바뀌듯 찾아왔다. 나무농부인 그의 본업은 묘목업, 부업은 과수농사다. 어린 나무를 잘 키워 과수농가나 농업법인체에 판매하는 게 그의 일. 경북 경산에서 3대째 묘목농사를 지으며 사과·복숭아·체리 묘목 등 유실수를 전문으로 재배 중이다.

그가 몸담고 있는 상일농원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70년 역사의 묘목농장이다. 열일곱 살에 처음 접칼을 쥔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가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가업을 이어받아 농장을 가꿔왔다. 이광열씨가 농장에 뛰어든 건 한참 뒤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그는 한때 지역 신문기자로 일했다. 취재를 위해 농업 현장을 둘러보며 농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농산물 가공 분야를 염두에 두고 제과·제빵 기술을 익히기도 했다. 이후 영농조합법인에 취직해 농사와 제조, 유통 업무를 배우며 시야를 넓혀갔다. 가업인 묘목농사에 뛰어든 건 지난해 봄. 그가 서두르지 않고 스스로를 연마하며 기다려온 ‘때’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 농지네요.
하양면이 경산에서도 제법 큰 묘목농원 단지라고요.


“예전엔 이 지역에서 뽕나무를 많이 재배했다고 해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거주하면서 뽕나무 재배 기술을 전파시켰고요. 당시엔 옷감을 만들 누에고치 실을 뽑기 위해 뽕나무를 많이 키웠어요. 나일론이 들어오면서 점차 뽕나무 재배가 줄었고, 해방 이후엔 사과 같은 과실수를 키우다가 지금처럼 묘목농사를 짓게 됐죠.”


계절을 가장 먼저 느끼는 게 농부의 삶이라고 하지요.
이 봄,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요.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강아지들 밥 챙겨주고 밭에 나가 종일 일해요. 해 지면 집에 와서 다음 날 심을 묘목을 준비하고요. 매일 똑같은 일상은 아니에요. 어떤 날은 밭을 갈아 씨 뿌리고, 또 어떤 날은 묘목에 접을 붙여요. 지난 2월 뿌리째 나무를 캐내 올리는 굴취 작업을 끝냈고, 새로운 묘목을 키워내는 작업이 한창이에요.”


작물마다 씨 뿌리고 심는 시기가 다르듯, 묘목 재배에도 생장에 중요한 때가 있나요?

“지금이 묘목을 기르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예요. 어린 나무를 묘목이라 부르는데, 나무는 묘목일 때 심어야 농부가 원하는 형태로 수형을 잡을 수 있어요. 옆으로 가지를 뻗거나 위로 자라게 하는, 모든 형태가 이때 잡히죠. 과수농가가 묘목을 심기 시작하는 봄이 묘목을 판매하는 우리 농장에선 가장 바쁠 때죠. 지금 씨앗을 파종하거나 접붙인 나무를 이식해 키워내야 내년에 출하할 수 있거든요.”


말하자면, 한 해를 책임질 농사가 지금 이뤄지는 거네요.

“심는다고 다 자라는 게 아니에요. 2만 평(6만6000㎡) 땅에서 묘목농사를 짓는데, 그중 1만 평(3만3000㎡)은 이듬해에나 굴취(수확)할 수 있어요. 씨앗을 뿌리고 1, 2년 키워내야 묘목으로 자라는데, 그 사이 수형을 다듬고 접붙이는 과정에서 기술이 필요해요. 바람에 따라 나무가 휘어서 자라기도 해 줄로 묶어줘야 하고요. 전문 기술이 필요한 노동집약적 농업입니다. 묘목농사에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해요. 다른 농작물과 달리 묘목은 최소 2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니까요.”


나무 한 그루를 키우기 위해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드는군요.

“묘목농사는 주식과 비슷해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은 주식에만 존재하는 게 아녜요. 2년 뒤 묘목 시장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주식보다도 어려운 게 농사입니다. 한때 인기여서 농장마다 키우던 알 작은 사과(루비에스)가 수분수(꽃가루받이 식물)로 강등되는 것을 보면 그래요. 시세가 급락해 팔지 못한 묘목은 태우기도 하죠. 너무 아깝고 나무에게 미안해 따로 밭을 가꿔 심기도 해요. 나무는 생명이에요. 누군가에게는 희망이고요. 나무를 잘 가꿔서 식재하고 수확해 판매하면 이게 또 한 가정을 살리게 되고요. 고마운 존재입니다.”


나무가 틔워낸 생명의 위대함이네요.

“호두를 보세요. 딱딱한 껍데기 안에 있는 호두를 물에 적셔 흙에 심으면 껍질을 뚫고 나와 싹을 틔워내요. 생명이라는 게 대단해요. 자라서 나무가 되면 또 다른 열매를 맺어 생명을 피워낼 거고요. 나무는 쉽게 죽지 않아요. 뿌리가 많이 안 달려 있어도 흙 속에 심고 물을 주면 금세 살아나요. 대단한 생명력이죠.”



스스로를 ‘어쩌다 나무농부’라고 이름 붙였어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지역 신문기자로 일한 적 있다고요. 또 한때는 시골 카페 창업을 꿈꾸며 베이커리를 공부하기도 했고요. 정말 어쩌다, 나무농부가 됐나요.

“6년 전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을 접하고 꿈이 생겼어요. 건강한 지역 경제가 형성되고 내 삶의 안정을 찾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글을 쓰며 살아가는 것. 그게 20대 마지막 꿈이었어요. 저는 농사일보다는 농산물 가공에 더 관심을 뒀어요. 지역에서 나는 과채류로 디저트를 만드는 자그마한 시골 빵집을 꿈꿨죠. 그래서 제과·제빵 기술도 익혔고요. 이후에는 영농조합법인에 취업해 농사와 제조, 유통 업무를 배웠어요. 회사 생활을 하며 통장에도 제법 돈이 쌓였고, 배운 지식으로 창농을 하면 굶어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농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이광열 씨까지 3대째 묘목을 키우고 있어요.
가업을 잇겠다고 했을 때 가족의 반응이 궁금해요.


“아버지는 반대하셨어요. 농사가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게다가 덜렁대고 치밀하지 못한 저에게 농사는 맞지 않다고 하셨죠. 하지만 회사 다니면서 집안 농사일 거들고, 농장 매출을 올리며 농업 관련 자격증까지 받아오니 저를 믿어주시더라고요.”


이제 농부 2년 차. 그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나요. 밀레니얼 세대로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다져온 길과는 또 다른 길이 보일 것 같기도 합니다.

“낮에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옆에서 접목기술을 익혔고, 밤에는 농업 교육을 받았어요. 또 농민사관학교에서 과수 종묘 과정을 들으며 유실수 묘목에 대한 재배법이나 관리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접붙이기와 묘목 재배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방식을 전적으로 따르고요. 그분들의 베테랑 경력을 뛰어넘을 순 없죠. 다만 유통과 마케팅에서는 제가 잘하는 부분이 있어요. 제가 농장에 들어오면서부터 과수농가와 직거래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정원을 가꾸려는 이들도 늘고 있고 다품종 소량으로 과수원을 운영하는 농가도 있다 보니 서로 수요가 맞았던 거죠. 직거래 판로를 트기 위해 블로그 마케팅을 시작했고요.”


성과가 있었나요?

“SNS 판매로 수익을 꽤 거뒀어요. 이전에는 도매가 100%였다면, 지금은 30%까지 소매 비중을 끌어올렸죠. 묘목 하나를 팔아도 제값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요즘에는 한 분야의 고수다, 하면 그렇게 되기까지 과정을 공유하는 게 대세잖아요. 홍보에서도 큰 효과가 있고요.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은 제가 어떻게 묘목을 재배하고 키워내는지 알려주고 정보를 공유하는 장이에요.”


이광열 씨에게 나무는 어떤 존재일까요.

“할아버지가 묘목농사를 오래 지었어요. 제가 어릴 때 농장에서 멀리 떨어진 영천에 살았는데, 매번 장에 나오실 때마다 저를 보러 오셨어요. 저에게 나무는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예요. 애틋하면서도 든든한 버팀목 같은. 할아버지가 뿌리를 가진 대목이고, 아버지가 그곳에 접붙어 자란 가지라면, 저는 그 힘으로 피어난 여린 잎과 같아요.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묘목을 키우세요. 두 분은 제게 스승이에요. 생각해보면 두 분이 나무를 키우듯 저를 키우셨어요.”


나무에 달린 열매는 덜 익었을 때 따면 입에 떫고, 너무 많이 익으면 따기도 전에 땅에 떨어져 벌레가 들끓죠. 나무에게도 열매에게도 다 ‘때’가 있어요.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처럼.

“나무를 보듯 우리 인생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꽃이 졌다는 건 곧 열매가 열린다는 말이기도 해요. 새로운 희망이죠. 인생에서 우리는 지금 꽃인지 열매인지 몰라요. 그동안 수많은 도전을 했고 그 도전이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진 아무도 모르죠. 그래서 내일이 더 기대되기도 하고요. 씨앗이 뿌리 뻗어 나무로 자라듯, 단단해지고 싶어요.”
  • 2022년 05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