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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말

‘홀리뱅’ 댄서 제인 ②

절박함이 기회가 되는 순간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제인
본명 장원진. 2017년 결성된 힙합댄스 크루 홀리뱅 댄서.
Mnet 댄스 서바이벌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연, 미션마다 폭풍 성장하며 독보적인 멤버로 자리매김했다.

#몸짓
절박함이 또 다른 기회의 장을 열었네요.

“방송이 저에게는 의미가 남달라요. 물론 프로그램에서 제가 차지하는 비중도 적고, 빠르게 돌아가는 시스템상 평소 무대를 준비할 때의 퀄리티보다 상당히 아쉽다고 느껴졌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 무대를 좋아하고 박수를 쳐주더라고요. 그런 응원이 얼떨떨하면서도 힘이 됐어요. 그러면서 성격도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이젠 남들 시선도 덜 신경 쓰게 됐고요. 저를 좋아해주는 분들이 제 자존감을 지켜줬어요.”


그룹 오마이걸 효정과는 동아대 방송연예학과 동기죠.
〈스우파〉 방영 중 효정이 SNS로 홀리뱅팀을 응원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효정처럼 연예계로 진출해볼 생각은 없었나요?


“당시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대학에 합격했어요. 보통은 춤과 노래 실력을 모두 확인하는데, 우리 기수에서 노래도 안 부르고 춤만으로 합격한 사람은 저 하나래요. 춤에 대해 확고해 보였나 봐요. 연예계 쪽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주변에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뭐랄까,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요.”


행복의 기준이 달랐던 걸까요? 제인 씨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이 나에게 대가를 가져다주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죠. 사실 요즘에야 댄서도 시안비나 연습비를 받지, 예전에는 사비를 털어 모든 일정을 소화했어요. 한 시간에 4만 원짜리 레슨도 하고. 모든 활동이 그랬어요. 그렇지만 대가가 없어서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춤추는 걸 멈추지 않고 여기까지 왔어요.

“그러게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웃음). 어려서부터 춤을 춰서 막상 이 일을 그만두라고 하면 인생의 한 막이 닫히는 기분이랄까요? 저를 힘들게 할 때가 더 많은데도 춤이 왜 좋은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다만, 무대에 선 그 느낌 때문에 지금까지 버티는 게 아닐까 해요. 짧으면 2~3분, 길면 10분 오르는 게 고작인데, 그 순간의 에너지가 저를 버티게 해줘요.”


춤추는 게 일상일 텐데요, 무대에 선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적은 연차가 아닌데 아직도 무대에 오를 땐 떨려요. 특히 처음 맞춰보는 퍼포먼스의 경우는 진짜 죽도록 떨리죠. 누군가에겐 설렘일 거고, 누군가에겐 걱정일 거고, 저는 반반이에요. 여기서 걱정은 ‘안무를 틀리거나 실수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아니에요. 틀리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 자체를 안 해요. 워낙 연습을 열심히 해둬서. 다만 무대에 오른 내 모습을 내가 만족하지 못할까 봐 고민이죠.”


결국 무대 위 나와의 싸움이군요.

“그러게요. 매번 옆 사람에게 ‘나 이상하지 않아?’라고 물어요. 하도 물어서 이젠 아무도 안 봐줘요(웃음). 걱정은 많지만 무대에 섰을 때 잘해낼 자신감, 나에 대한 자부심은 강한 편이에요.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했던 걱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일찍 만족했다면, 지금처럼 집요하게 임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한 살 한 살 나이 들며 오히려 ‘걱정이 많아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성격이 꼼꼼해서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요. 안무를 익히는 속도는 빠르지만, 잘해내는 데 시간이 걸리죠. 그런 시간들이 없었다면 사람들이 내 춤에 매력을 느꼈을까 싶어요.”


방송 전과 후의 나, 변화가 클 것 같아요. 알아보는 사람도 많을 거고.

“지금이 훨씬 좋죠. 기운도 나고. 뭐랄까, 댄서도 래퍼처럼 메이저로 올라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방송 덕분에 댄서들 일이 많이 늘었을 거예요. 이런 분위기에 감사하죠. 일이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건 사실 말이 안 돼요. 자만이죠.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서 못 하는 이들이 훨씬 많으니까. 어쨌든 저는 운이 좋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댄서가 됐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마음 변하지 않으려고 해요. 지금의 호황에 익숙해져버리면 거만해질 것 같은데, 그런 모습은 저답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답다’는 건 어떤 걸까요.

“저는 조심스럽고, 눈치도 많이 보고, 완벽주의자지만 사람 냄새 나는 사람? 매사에 솔직하고 꾸밈없는 사람이고 싶어요. 무대 위 제인과 무대 아래 장원진은 다르지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갑자기 멋있거나 도도한 척하지 않으려 해요. 억지스럽지 않고,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모습이 바로 저예요. 저는 제가 더 잘돼서 겁나게 성공한다고 해도 주변에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외롭잖아요. 혼자 하면.”


꾸준한 노력형과 타고난 천재형.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완전히 노력형이죠. 키도 큰데, 팔다리도 길고 게다가 발이 평발이에요. 턴 도는 것도 힘들어하고, 밸런스도 안 좋아요. 팔이 길다 보니 디테일이 조금만 이상해도 눈에 띄고요. 안 좋은 점투성이라 어렸을 때부터 약점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엄청 노력했어요. 그래서 센 척, 눈에 더 힘주고요(웃음). 다만 저는 무대가 재밌고, 무대에서 춤추는 순간을 즐겨요. 그건 아무나 못 하는 거라 생각해요. 진심으로 즐기기 때문에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아요. 그 부분 하나 정도는 천재형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무대 천재?”


이제 20대 후반, 제인이라는 나무도 성장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막 아기 티를 벗은 자그마한 나무 같아요. 클 일만 남았죠. 저의 계절은 아직 겨울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충족되지 않은 부분이 많고,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좀 더 노력하고 견뎌내며 봄이 오길 기다려야죠.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뿌리가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살다 보면 어려운 일도 있고 속상한 일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서 휘청거리지 않을 만큼 단단한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행복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오지 않을까요? 돌아봤을 때 어느새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죠.”


지금껏 살면서 제인은 “너밖에 안 보여”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한다. 부리부리한 눈, 큰 키, 튀는 외모에 춤을 추는 것만으로도 늘 주목받았다. 그런 그에게 “너밖에 안 보인다”는 말은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네가 네 몫을 잘 책임졌어’라는 자신감으로 작용했다. 요즘 그가 자주 듣는 말은 “자신감을 좀 가져, 걱정 그만 하고”이다. 그에게 ‘걱정’은 ‘내가 잘하고 있을까’에 대한 자가 검열이자 성장을 위한 동기 부여다. 이 말은 입에 쓴 약처럼 그를 굳건하게 다잡아준다. 찬바람을 견디며 봄을 향해가는 댄서 제인의 인생이 단단하게 뿌리 내려 가지로 뻗어나가고 있다.
  • 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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