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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손정기 ②

아무도 만나지 않는 고독한 시간 속에서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손정기
그림 그리기 전 드럼 연주자로 음악 활동을 했다.
군대에서 손을 다쳐 음악의 길을 잠시 멈춰야 했을 때 붓을 들었다.
자발적 침묵과 고독을 통해 내면을 탐구하고 그림을 매개로 물음을 던지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질문
A solitary walk(홀로 걷는 길 위에서 마주하는 자신), acrylic on panel, 117×91mm, 2022
문득 홀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어떨까 궁금해집니다.

“작업은 저에게도 사색의 시간이에요. 그 자체로 고독해요. 하루 종일 단 한 명도 만나지 않고 그림만 그려요. 처음에는 그 순간들이 힘들었어요. 프리랜서 작가는 ‘내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불안이 있어요. 하루 종일 홀로 남겨진 시간 속에서 작업해야 하니 외롭고 힘들죠.”


외롭고 힘든 순간을 고독한 사색으로 바꾸기까지 어떤 시간을 지냈을까요.

“명상을 하면서 달라진 것 같아요. 명상을 통해 나 자신을 좀 더 바라보고 생각하면서요. 고독이라는 시간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게 됐어요. 명상이라는 게 생각을 비우기보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받아들이고 알아채는 것에 가까워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알아차리고 돌아보려 노력하고, 그러면서 또 다른 생각으로 확장하고. 이제는 작업이 외로움과의 싸움이 아닌, 명상의 시간이 됐죠.”


명상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2019년에 10개월 정도 프랑스에 다녀왔어요.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는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손정기도 작가도 학생도 아닌 구석방에 사는 아시아인 정도의 존재.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데 고독감이 있었어요. 외로웠지만, 아무나 쉽게 느낄 수 없는 고독이죠. 그때 프랑스에서 만난 친구와 명상의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의 감정이 좋았어요. 돌아와서 제가 느낀 좋은 기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그림에 담게 됐고요.”


그 시기가 인생의 전환점이 됐겠네요.

“삶의 목표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게 됐죠. 그전에는 작품으로, 작가로, 잘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삶의 목표 자체를 커리어와 성취, 작가로서 명예에 목표를 뒀죠. 내 목표를 이루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더 큰 목표가 생기고, 그 이후에도 새로운 목표가 생겨나더라고요. 갈구할 수밖에 없는, 목이 마른 상태로 자꾸 나를 갉아먹게 됐고요. 목표를 이루고도 성취보다는 허무가 컸죠. 더 나은 삶을 좇게 되고.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게 원동력이 된 것 같은데,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졌어요.”


지금은요?

“삶에 충실할 것. 생의 한가운데 내 몸을 던지자.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삶에 충실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그림은 나를 살게 하는 수단이 됐어요. 잘돼야겠다는 강박도 사라지고, 잘 안 됐을 때에 대한 상실도 줄어들었어요. 나는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기만 하면 되니까 마음이 편해졌죠. 삶을 충실히 살려면 그림에 더 충실해야겠죠. 요즘 제 화두입니다. 행복으로 가는.”


‘고통은 마주하는 순간 고통이기를 멈춘다’는 작품명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순간이 많아요. 과거에 받은 상처, 아픈 감정에 묶여 있을 때가 있죠. 저도 그랬어요. 한창 마음이 힘들 때가 있었어요. 우울증도 심했고. 주변에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좋은 데 가자, 하며 나를 밖으로 끌어냈지만 이것들이 마음의 우울을 해결해주진 않았어요. 결국 제 우울을 풀어낸 건 그림이었어요. 그림은 내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고, 나를 투영시키는 과정입니다. 말로 풀어내기 어려웠던 마음이 시각적으로 표현됐어요. ‘아, 지금 내가 이런 상태에 놓여 있구나’ 하고. 시각적으로 보니 인지하게 되더군요. 또 인지하는 순간 해소가 되고요. 해결을 통한 해소가 아니라, 인지 자체로 해소되는. 그 과정에서 내 안의 고통이 멈추더라고요. 그런 의미가 담긴 작품이에요.”


그렇다면 지금, 성장 단계에 있는 걸까요.

“그림 부분에서는 이제야 시작하는 단계 같아요. 제 몸에 타투로 ‘grow silent’라는 문구를 새겼어요. 묵묵히 자라고 있다는 말이죠. 나도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는 사실 모르겠어요. 그저 묵묵히 생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거죠. 삶에 대한 질문에는 답이 없어요. 평생 해야 하는 것이고. 이걸 초월하면 신 혹은 깨달은 자가 되겠죠. 이런 고민과 사색의 여정 자체가 인생이라 생각하고 이 과정을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고요.”


Into the silent forest(숲의 고요 속으로), acrylic on panel, 117×91mm, 2022
그의 몸 곳곳에는 그림과 문자로 가득하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과 해답을 새긴 흔적이다. 머리와 심장을 잇는 목에는 자신의 작품 ‘Circle’을 그려넣었다. 무수한 선이 원을 이루는 그림이다. 그는 이 작품을 설명하며 “어쩌면 우리 삶은 반복되고 반복되는 원형적 삶의 한 부분을 이루는 선일지도 모른다. 그 원형의 한 부분에 내던져진 우리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불안정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라고 썼다.

실존하는 삶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진리다. 그렇기에 두 번 다시 없을 지금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역설한다.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집중이다. 그가 그림으로 순간을 붙잡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내면을 탐색하며 내일로 나아가는 이유다.
  • 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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